국군이 구출해 낸 전장의 여성들 -2-

국군이 구출해낸 전장의 '여성'들 -2-

 

나는 대학 시절 6사단 7연대 1대대 중대장으로 북진의 선봉에 서서 압록강에 도달했었던 이대용 장군의 수기를 읽은 일이 있었다.


26세의 중대장 이 대용 대위



최강 7연대는 개전 때 춘천 전투로부터 낙동강 신녕까지 옮겨 다니며 잘 싸우고 북진의 선두에서 달려 압록강에 일착으로 도착했다.

 

그러나 직후 철수하다가 중공군의 차단과 매복에 걸려 거의 옥쇄하다시피 붕괴되었다. 1대대 1중대장 이대용 대위의 중대는 종군 민간인 포함 160명이었는데 이 중 전투에서 40명을 잃고 120명의 부하를 데리고 바다 같은 중공군의 포위망를 헤쳐 나오며 적군과 무수한 총격전을 해야 했었다.


[이대용 중대의 탈출로 - 약 1천리가 된다]



열흘 만에 이대용 대위가 인솔, 구출해낸 중대원은 단 22명, 이 중에 북진할 때 구출한 납북 간호 여고생 두 명이 있었다.

 

이 탈출기를 보면 그 불가능에 가까운 위기의 돌파와 무수한 장병의 전사, 초인적인 탈출의 노력들이 미국의 레인저 유격 훈련 과정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나는 이 이대용 장군의 탈출기를 수십 번을 읽었는데 중대원들이 대거 전사하거나 낙오하고 포로가 된 이 죽음의 탈출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구출해낸 두 명의 여고생들의 존재를 의심했었다.

 

그 힘들고 위험했었던 순간들은 나약한 어린 여고생들이 탈출할 수 있을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는 이대용 장군이 자기의 중공군 탈출기를 극적으로 미화하기 위해서 이 두 명의 간호 여고생을 허구의 인물로서 설정하지 않았었나 의심했었다.

 

그러나 몇 년 전 이대용 장군을 만나 뵙고 말씀을 들어보니 두 분 다 살아계셨고 이대용 장군과 아직도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다.

 

두 적십자 간호 고등학교의 3학년 재학생들인 박태숙과 정정훈 두 사람은 6.25 적침시에 적십자 병원에서 실습하다가 북한군에게 병원에 강제 구금되었다. 석 달간 이렇게 구금되었다가 9.28 수복이 되기 직전 간호사들과 함께 납북되었다.

 

한 달 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북으로 끌려가던 간호 고등학생들과 간호사들은 평북 순천에서 전방 숙천에 미군 낙하산 부대가 낙하하자 북한군 호송 감시인들이 이들을 놔두고 도망치는 바람에 이대용 대위의 1중대에 구출을 받았다

 

12명의 간호사와 학생들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목욕도 못해서 차림부터 엉망이었다. 이대용 대위는 3열로 정렬된 이들을 신원을 점검하고 약속부터 하였다. 이들 간호사들이 자발적으로 북한군에게 부역하거나 스스로

북행을 하다가 자기에게 체포되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 여러분 나는 국군 7연대 1대대 1 중대장 이대용입니다. 여러분의 생명과 처녀의 순결성은 이 허리에 찬 권총에 맹세하여 보호하겠습니다.“ 

조사를 해보고 설사 대한민국에 배반하는 반역 행위를 한 사실이 들어나도 즉결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약속이었다. 


잠깐 조사를 한 결과, 이들 모두가 부역자들이 아니라 단순 납북자들이라는 것이 드러나서 중대 병력과 함께 순천에 설치된 1대대 본부로 데리고 갔었다.

 

여러 명의 처녀들은 데리고 순천 시가를 행진해가다가 순천 우체국을 지날 때였었다. 거기 병력을 배치하고 있던 같은 대대 김 모 대위가 이죽거리며 접근했다.

“ 야 ! 이 대위 뿅코 많이 잡았구나. 몇 마리 양보하지.”

 

뿅코라는 것은 군을 상대로 하는 윤락녀를 뜻하는 일본군의 은어다. 김 모 대위는 일본군 출신이었다. 용감하기는 했지만 일본군의 악습을 그대로 보일 때도 많았었다.

 

이 대위는 경멸의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고 대대 본부로 계속 행군해갔다. 그 김 모 대위는 단념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자기 부하들이나 이 대위의 부대원들이 있었음에도 치근치근한 수작을 계속하였다.

“ 야- 이 대위! 엉큼하구나. 욕심이 너무 많아 !”

 

이 대위는 간호사들을 모두 데리고 대대장 김용배 대대장에게 보고하고 이들은 부역자들이 아니니 순천과 평양의 도로가 안전하게 개통되면 바로 적십자 병원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김용배 장군



김용배 대대장은 길이 뚫리는 대로 즉시 이들을 돌려보내 부모님들의 걱정을 덜어드리라고 명령하였다. 김용배 대대장은 전투에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명 지휘관이며 문경의 선비 집안 아들로서 역시 범인(凡人)이 가지지 못한 높은 인격으로 부하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이 대위는 나중에 틈이 날 때 김용배 대대장에게 김 모 대위가 이 간호사들을 뿅코라고 부르며 수작을 걸었다는 말을 했었다. 김용배 대대장은 고개를 내저으며 법도를 모르는 김 대위의 호색함에 불쾌감을 표시하였다

“ 이 간호사들이 어느 외국의 여인들도 아니고 정조를 생명으로 아는 같은 동포들인데 그 버릇 참 못 버리는군!“ (계속)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0 / Comments 1

  • 팔성 2016.04.26 12:39

    한달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어떻게 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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