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 같던 조인(鳥人) -끝- "꺾이지 않은 의지"

 

 

 

 

루델은 전쟁 도중에 이미 독일의 영웅이 되어있었고 전후에는 신화의 반열에 올라갔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일견 극과 극인 측면이 있다. 찬양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재현이 불가능한 놀라운 전과 때문에 당연히 그는 위대한 군인이라고 주장한다. 단적으로 그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당사자 할 수 있는 소련이 독일의 항복 이전부터 이미 그를 전범으로 낙인찍어 놓았을 정도였다.

 

 

[ 업적과 별개로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

 

 

이런 사실을 알던 루델은 194558일 미군 점령지역으로 날아가 항복하였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소련이 그를 인도해 달라고 난리쳤을 정도였다. 하르트만처럼 소련으로 끌려가 장기간 고초를 겪은 독일 공군의 에이스들도 많았지만 루델은 운 좋게도 소련에 인도되지 않았고 석방된 후 1948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였다. 그만큼 그는 소련이 어떻게든 벌을 주고 싶어 하였던 거물이었다.

 

 

 

[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한 소련은 그를 몹시 증오하였다 ]

 

 

반면 루델을 혹평하는 부류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비난한다. 하나는 정치적인 이유인데 루델이 골수 나치라는 점이다. 비록 난민 학살 같은 범죄 행위에 가담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전후 이주한 아르헨티나가 나치 전범들의 최대 도피처였고, 1953년 독일로 귀국 후에 극우파 정당인 독일제국당(Socialist Reich Party)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던 사실로 보아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 그의 정치적 편향성은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다 ]

 

 

위에 언급한 하르트만을 비롯하여 루프트바페의 슈퍼 에이스들이었던 바크호른(Gerhard Barkhorn), (Gunther Rall)은 인류 역사상 1~3위 격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었는데, 이들은 전후 서독 공군 재건에 참여하여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서독은 전후 나치와의 단절에 상당히 엄격하였는데 그만큼 이들이 제2차 대전 참전과는 별개로 정치적이나 사상적으로는 자유로웠던 증거다.

 

 

 

 

[ 서독 공군 당시인 1957년에 촬영 된 전설의 슈퍼에이스들 좌로부터 바르크호른, 하르트만, 슈타인호프,

이들 4인의 에이스가 전쟁 중 거둔 격추 기록은 무려 1,104기다 ]

 

 

반면 이들을 능가하는 전과를 올린 루델에게는 전후 군 재건에 참가해 달라는 서독 정부의 어떠한 요청도 없었다. 그만큼 나치에 경도된 정치적인 편향성이 컸다. 그러나 루델이 혹평 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정치적인 성향보다 오히려 이기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자타가 모두 인정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루델은 너무 자기중심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 부대원들과 함께 한 루델 하지만 상당히 이기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

 

 

전쟁 중 루델의 편대를 엄호하기도 하였고 전후에는 프랑스에서 같이 수감 생활을 하였던 슈퍼 에이스 랄이 회고한 내용을 보면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루델이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었는데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고, 때문에 자신() 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들이 그의 능력과는 별개로 루델을 매우 싫어하였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 루델에 대해 혹평을 하였던 군터 랄. 그 또한 275기를 격추한 슈퍼에이스였다 ]

 

 

하지만 그의 투철한 군인 정신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작전 중 격추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적진 한가운데 착륙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 임무 도중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으나 깁스를 하고 즉시 임무에 복귀하였을 정도였다. 그 결정판이 패망이 가까워지던 19452,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커다란 부상을 당했으면서도 의족을 달고 다시 하늘로 날아간 것이었다.

 

 

[ 루델과 마지막 후방 사수였던 가더만 ]

 

 

격추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고 목숨이 위험하였던 루델을 현장에서 응급처치 후 마취도 시키지 않고 다리를 절단하여 목숨을 살려낸 사람이 그의 마지막 후방 사수였던 가더만(Ernst Gadermann)이었다. 전쟁 전 의대를 다녔던 가더만은 이후 의학 박사가 되어 1972년 뮌헨올림픽의 의무 분과의 책임자였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파였다. 어쩌면 루델은 운도 함께 따라다닌 불사조였던 것 같다.

 

 

 

[ 32차례나 죽음의 문턱을 다녀 온 루델의 말년 모습 ]

 

 

하지만 놀라운 전과이면에 루델이 무려 32차례나 피격 당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수십 차례의 피격도 하늘로 향한 그의 의지를 결코 꺾지 못하였는데, 쓰러져도 다시 서는 그의 의지가 바로 그를 불사조로 만들었던 것이다. 요즘 한두 차례의 실패만으로 지레짐작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전쟁 영웅도 32차례나 죽음직전까지 다녀왔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단지 몇 차례의 실패는 오히려 작다고 할 수 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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