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만에 돌아 온 전쟁 낙오병








28년만에 돌아 온 전쟁 낙오병


1972년 1월 괌 섬의 탈로포포라는 작은 강에 새우를 잡기위해서 통발을 설치했던 주민 지저스 두에플라스와 마누엘 가르시아는 통발에서 새우들이 없어지는 것을 자주 발견하였다.


                                      괌 섬의 탈로포포 강


그들은 감시하다가 통발에서 새우를 훔치는 괴한을 발견하고
그를 붙잡았다.

거지꼴을 한 그 나이 먹은 새우 도둑은 저항하다가
상처를 입고
강에서 끌려나왔다.


                       요코이가 숨어 살던 땅굴- 관광 명소가 되었다.
       
수직으로 1미터를 내려가 다시 2미터의 길이로 옆으로 파여 있는 ㄴ자 동굴이다.


두 사람은 그가 현지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괌 섬 언어인 차모로어를 전혀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은 제압당한 그를 지방 경찰서에 데려가 인계했다.





그는 1944년 그의 부대가 상륙한 미군을 공격했다가
오히려 전차로 반격하는 미군에게 쫓겨 부대는 섬멸당하고 밀림으로 숨어 들어서
28년간이나 은신했었던 일본군 하사 요코이 쇼이치였다.

그는 본국 일본에서 1965년 최종으로 전사 처리가 된
'서류상' 죽은 사람이었다.


                                                                   28년만의 커밍 아웃


그와 같이 밀림으로 숨어 들어갔던 일본군은
열 명이나 되었지만 다 흩어졌다.

그는 장기간 다른 두 명과 같이 살았지만 요쿄이는
이들과도
헤어져 따로 살았다.

요코이와 서로 왕래하면서 살던 다른 두 사람은 1964년경
은거지 땅굴에서 굶어 죽은 것으로 추측되었다.

두사람의 유골은 요코이 생환 후에 탐색 조사에 나선
괌 경찰이 발견하였다. 요코이만 그의 끈질긴 생존능력으로 살아남았다.


                               요코이의 땅굴에서 발견된 살림살이 - 연기에 모두 검게
그을려 있다.


그는 땅굴을 파고 숨어 살면서 밤에만 활동하고 낮에는
잠을 자는 부엉이 생활을 했다.

식량은 앞서 그가 붙잡힌 강에 통발로 잡은 작은 어류와 밀림에서
얻은 과일 등으로 충당했다.

옷도 재단공이었던 요코이가 나무껍질로 직접 짜입었다.
그가 커밍 아웃 할 때 어머니가 입대할 때 만들어 준, 무운장구를 비는 여러 사람의 자수가 놓인 복대와 군에 가지고 들어간 재봉 가위가 함께 발견 되었다.

그는 이 가위로 옷도 만들고 이발도 했다.
요코이 하사는 옷의 직조, 재단, 재봉등을 자기가 직접했다. 나무 껍질을 땅에 묻어 썪혀서 줄기를 얻고 이를 다시 다듬어 베를 짜기까지 근 일년이 걸렸다.


               그런 빈약한 식량 조달로 그가 28년을 살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요코이의 핸드 메이드 살림살이


그는 양복점을 경영하던 재단사로서 아버지도 재단사였다.
요코이는 1915년 생으로 1937년 군에 징집되어 2년간 수송병으로 군 생활을 하고 1939년 제대했었다.


                                     요코이의 군복차림.


고향에 돌아와 양복점을 개업하고 있다가 전황이 급박해지자 1941년 다시 재소집되어 괌 섬으로 보내졌다.[그가 상병이니 일병이니 하는 글들이 많은데 재소집 된 그는 종전시 계급이 오장, 즉 하사였다. 나이가 서른이나 되는 재소집 병이 일병일리가 없다.]

전황이 급박해지자 젊은 일본 후비병[예비군]들
다수가
재소집 되어 군복무를 다시 했었다.

그는 1945년 일본이 항복한 뒤에도 계속 낙오병 생활을 하다가
70년대에 커밍 아웃했던 세 명의 일본군 귀환자 중 최초의 귀환자로서 일본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다른 사람은 1975년에 필리핀에서 귀국했던 오노다 히로오 소위,
1980년에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나카무라 데루오이다. 그러나 나카무라는 일본 식민지였던 대만인(원주민 아미 족)-으로 일본이 아니라 대만으로 귀환하였다.]

요코이는 귀환한 후 수많은 환영 인파와 중계 TV를 지켜보는
일본인에게 눈물을 흘리며 살아 돌아와 부끄럽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낡은 99식 소총을 천황폐하에게 다시 봉납한다는 보고를 해서 또 일본인들을 감동[?]시켰다.

                     1972년 대대적인 환영 속에 귀국하는 요코이 하사


그는 귀국 후 고향 아이치 현에 자리를 잡고 장가도 들고 내핍 생활에 관한 전문가로 TV에도 자주 나왔었다.

그 무렵 일본에서는 오일 쇼크의 결과로 '아나바다' 운동 같은
내핍과 절약의 운동이 사회적 추세가 되어 있었다.

비록 낙선했지만 1974년 참의원 의원 선거에도
출마했었다.

그가 인기 몰이를 하자 그를 깎아 내리는
소리들도 나왔었다.

탈영병이었다느니 너무 나댄다느니
하는 이야기지만 하여튼 그는 그런대로 인기를 누렸었다.


                                       82살의 요코이


그는 1997년 82세의 나이에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고향 나고야에 그의 부인이 지키는 요코이 기념관이 있다.





Trackbacks 0 / Comments 0

댓글 남기기

블로그 인기 키워드

Tistory Cumulus Flash tag cloud by requires Flash Player 9 or better.

링크

re_footerlink.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