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드문 미 해병의 전차 육탄 공격

 





미 해병의 전차 육탄 공격.


며칠 전 예일 대학의 법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오랫동안 변호사로 활동하신 이종언 박사님으로 부터 함경남도 장진호 호반에서 싸운 한국군 전투 경찰대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한국 전투 경찰들이 장진호에서 세계 최강 미 해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용감히 싸웠다는 사실은 한국 국방사에 안개 같이 떠돌았었다.

이 박사님은 고려대 2학년 때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투신하여 미 해병대에서 통역 장교로 근무하였는데 장진호까지 진격하는 해병 1사단 사령부에서 통역을 하면서 장진호 전투의 전모를 지켜보았다.

그분을 통해 한국 전투 경찰이 장진호 전역에서 최고로 치열했던
유담리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웠다는 전설 같은 전사를 반이나마 확인 할 수가 있었다.

진호의 전투 경찰 이야기를 듣기 앞서 장진호 입구 진흥리에서 어이없이 격파당한 북한 344전차대의 전투 일화도 청취했었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를 먼저 소개한다.

6.25전쟁 중 전차에 육탄 공격을 가한 것은 개전 초기 아무런 대전차 수단이 없던 국군만이 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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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전쟁 중 미군이 수류탄을 까들고 전차에 덤벼
육탄 공격을 한 일이 딱 한 번 있었다.

개전 초기 마왕 같은 존재로 국군을 몰아 부치던
북한 T-34 전차는 보병들에게 3.5 로케트 포가 지급되고 항공공격이 일반화 되자 웃음거리 수준으로 전락했다.

 

                               숨어 있다가 박살난 소제 T-34 전차


그런 상황이라 미군들이 목숨을 걸고 전차에
육탄 돌격을 할 이유는 없었는데 장진호 입구 진흥리에서 은폐한 전차에 우연히 올라간 해병이 전차에 수류탄을 까 넣었던 것이다.

미 해병이 북진하던 1950년 11월 초,
 미 해병은 장진호 입구 수동에서 중공군 124 사단을 대파시키고 계속 진격했다.


                                  대공 사격을 하는 중공군
                기관총은 장개석군이
중일전쟁에서 사용하던 체코제 7.92mm 기관총이다.


중공군 124 사단의 2개 연대는 장진 고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황초령으로 물러나 고지를 점령하고 진지를 구축했다. 수동 전투는 한반도에 침투한 중공군이 최초로 대패한 전투였었다.

수동 전투는 미 해병과 중공군의 대결이었는데
이 북쪽 지역에 난데없이 북한 전차가 얼굴을 내민다.

서울이 탈환되자 미 해병에게 저항하던 북한군 344 연대의 전차 4대가
의정부 방향으로 도주해서 (추정컨대) 철원-원산-함흥 쪽으로 이동하려다가 이 장진호 입구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가했던 것이다.

원래 전차는 궤도에 무리가
있어서 장거리 운행은 잘 안하는 법인데 기차로 운송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수동 전투에 참가한 북한 전차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었다. 
북한 전차들이 미군에게 상투적으로 하던 대로 야간에 맹목적으로 돌격해 들어와 포 몇 발을 쏘고 그냥 철수 해버렸을 따름이었다. 유일한 전과는 전차 궤도로 통신선을 절단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황초령이라는 고개는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고개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좁디좁은 고갯길이었다.


                             수동에서 전사한 중공군의 사체들


일제 시대에 장진호 건설이라는 큰 공사가 있었고, 그 목적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장진호 둑 바로 아래 하갈우리까지 협궤 철로도 개설되어 있었는데 왜 이렇게 좁은 길이 있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이종언 박사가 이 길이 좁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주었는데 황초령이 있는 산 자체가 거의 바위 덩어리라서 겨우 이 정도의 좁은 길 밖에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트럭은 그런대로 통과할 수가 있지만 전차의 통과는 무리였다.
미 해병 공병대가 이 길을 확장했는데 겨우 전차가 지나갈 정도로만 확장했다고 한다. 해병 공병대는 확장 공사에 폭약을 썼으리라고 본다.

북한군 전차대가 수 일 내에 도로 확장 공사를 하고
통과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결국 무리하게 진입한 전차 4량은 좁은 황초령의 고갯길을 통과하지 못하고 독안에 든 쥐꼴이 되자 고갯길 동네에 위장 잠복해 있었다.

수동 전투가 마무리 된 4일 아침 해병 7연대가 조심스럽게 진격을
개시하자 북한군 전차병들은 전차를 은폐 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다 동원해서 전차를 숨겼다.

해병 수색 정찰대는 삼거리 역을 통과, 3km 북쪽의
좁은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협궤의 시발점인 진흥리에 진입했다.

함흥에서 뻗은 보통 열차 철도는 이곳이 종점이었고 협궤가 바통을 이어
받아 좁은 협곡 사이로 장진호반 고토리까지 뻗어 있었다.



                        산맥 입구에 FUNCHILIN 이라고 써 있는 곳이 황초령이다.

            그 아래 이 전투의 무대가 되는 진흥리[Chinhung-ni]와 수동[Sudong]이 있다,


도로의 구부러진 곳을 돌다가 연대 행군 종대의 첨병 조원인
조셉 맥더모트 상병은 그가 나중에 나뭇가지와 건초를 쌓아 놓은 것 같다고 묘사했던, 주위의 지형지물과 어울리지 않은 물체를 발견했다.

과도한 위장은 오히려 노출 가능성을 높이는데 북한군은
그저 전차를 보이지 않게 하는데만 급급해서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듯하다.

조셉 맥더모트 상병은 월터 콜 일병을 대동하고 길 아래로
내려갔는데 돌들이 여기저기 쌓여있는 밭을 반쯤 지나서야 그것이 T-34전차인 것을 알아봤다. 놀란 그는 배기구가 있는 전차의 뒷 면으로 이동해 은폐용으로 사용한 잔가지를 치우고 전차 위로 올라갔다.

포탑의 해치를 열려고 시도해 본 후 소총으로
전차의 직사 조준경을 두드리듯 세게 밀자 조준경이 안으로 밀려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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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관해서는 다음 주 포스팅 하는 글을 보아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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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 조준경을 밀어 넣은 맥더모트는 조심스럽게 그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는 설마 그렇게 조용히 있는 전차 안에 승무원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는 않았던 것 같다. 패주한 북한군이 유기하고 도주한 전차라고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맥더모트는 하마터면 전차 안에서 쏘는 따발총탄에
얼굴을 맞을 뻔했다.

놀란 맥더머트는 가지고 있던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직사 조준경 구멍으로 떨어 뜨렸고 전차 내부에서 수류탄이 터지자 비명 소리가 섞인 뜨거운 공기가 조준경 구명을 통해 외부로 분출됐다.

그런데 폭발과 함께 갑자기 전차의 시동이 걸리더니
전차가 코끼리처럼 앞으로 맹렬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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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탄의 폭발로 포탑내의 전차장, 포수, 탄약수가 죽었거나
중상을 입었지만 다소 거리가 있었던 차체 앞부분의 조종수의 부상 정도가 약했던 것이다.

6.25 전쟁 중 중공군이 UN군 전차에 이런 방법으로
많이 붙었었는데 포탑을 좌우로 마구 회전해서 이들을 떨어 뜨리는 것이 적병 대처 방법이었다.

포탑 내 전차병들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포탑안의 승무원들이 수류탄 폭발로
죽거나 중상을 입은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중공군 임치량 - 대패한 후에 한반도에 다시 나타나지 않게 된 124 사장[사단장]


한 손으로 포탑에 매달린 채로 다른 손으로
탄대에 달린 수류탄을 꺼내려다가 실패한 맥더모트는
전차에서 뛰어 내려 빠르게 네 발로 기어 콜이 엄폐하고 있는 바위 뒤로 숨었다.

전차는 주위를 맴돌다가 두 사람이 숨어 있는 가까운
곳에 정지하였는데 이번에는 콜이 나섰다. 그는 수류탄을 빼들고 전차 위로 뛰어 올라가 아까 맥더머트가 만들어 놓은 조준경 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는 투척 후 화염과 연기가 전차 포탑 해치 사이와 조준경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기 전에 포탑 옆으로 숨었다. 폭발 후 전차는 몇 미터 더 움직이더니 정지했다.

도로 위에서 이 소동을 지켜보던 도날드 샤론 중위는
도로 옆의 촌가에서 느닷없이 T-34가 튀어 나와 행군하는 해병들에게 85mm 포를 겨누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 일대는 T-34들이 더 이상 황초령 고개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산개해서 은폐했던 장소였다.

해병들은 대전차 수단을 총 동원해서 전차들을 사냥했다.
3.5 로케트 포와 75mm 무반동총, 그리고 공군기의 공격에 북 344전차 연대의 마지막 전차가 화염에 휩싸였다.

황초령 입구에서 격파당한 4량의 T-34들은 10월 29일에 평북 정주에서
미 육군 89전차대대의 M4A3 전차들에게 격파당한 6량의 전차[자주포 1량 포함]와 함께 한반도 최북단에서 파괴된 전차들이다. 황초령이 더 북쪽이다.


                                   얼어붙은 장진호
생지옥이 될 뻔한 이곳에 들어 갔던 해병들은 세계 전사에 보기드문 전투력을 발휘해서 탈출, 흥남으로
귀환했다.


미 해병들에게 섬멸당한 북한 T-34 전차들은
그 후일담을 남기고 있다.

황초령 기슭에서 죽은 전차병들을 북한 평양의 군사 박물관에서
영웅으로 기리고 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전차를 버리지 않고 운명을 같이 했다는 것인데 상황을 다 알고 보면 무리가 있다.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상황에서 모든 것을 체념하고
해병대와 최후의 일전을 벌이다가 전원 전사했다면 모를까, 서투른 은폐에 급급하다가 저항도 제대로 못해보고 섬멸당한 이들이 추앙 받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전차가 통과도 못할 황초령 지역에서
지형 정찰도 해보지 않고 무리한 작전을 하여 부하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은
전차부대 지휘관에게 작전 실패의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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