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일이 애창하는 일본 군가









김 정일이 애창하는 일본 군가

 

 

 

 
북한의 이중성[二重性]은 이미 역사가 깊다.

황 장엽이 북한에 있을 때 개발했다는 북한 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은 어디로 가고 세계 어디건 원조를 해주겠다는 국가를 찾아나서 국제 구걸을 하고 있는데 손을 벌리는 대상들이 모두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다. 특히 해방하겠다고 잔인한 폭력을 행사했던 한국에 벌리는 손은 뻔뻔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면서 권력층은 서방의 재벌들이 부럽지 않은 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

북한 절대 지배자들의 이중적인 본성 중 하나를 오늘 소개하려고 한다.

일본은 그들의 감성에 용납 못할 원수 국가다.
김일성이 10년간 10만회가 넘게 싸웠다는 철천지 원수 국가가 아닌가?

한국에 대해 거품 물고 비난할 때 입에 올리는
단골 메뉴 중 하나도 친일 매국노가 지배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들이 떠드는 반일적인 정서의 정도를 보면 북한에게 일본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없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다.

그런 그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웠다는 김 일성의
전공(戰功)을 그들의 치국의 이념으로 삼고 있는 그들에게서 한 치부를 발견했다.

북한의 지도자 동지가 일본 군가를 부르고 즐긴다는 사실인데
그들이 친일파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욕을 퍼붓는 남한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김 정일에게 초빙되어 13년간[1989-2001] 전속 요리사로 잘 대접 받고 결혼까지 하며
 살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북한을 탈출해서 썼던‘김 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에서 소개된 내용으로 [그의 책은 북한의 후계자 김 정은에 대해서 제일 많은 정보를 전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 책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

그가 김 정일의 연회에 참석한 기록이다.

연회석상에서는 놀랍게도 일본 군가를 부르는 일도 많았다. 그 중에는 내가 모르는 노래도 있었다. 보천보 전자 악단은 전자 오르간을 연주했다.

라바울 고우타[ラバウル 小唄]는 김 정일이 좋아하는
곡이라 늘 함께 불렀다. 처음 나는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고국 생각에 잠기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다.“

 

                                                              B-25 폭격대의 라바울 폭격

 
파푸아 뉴 기니아의 라바울은 태평양 전쟁 시 일본 육해군의 남양 공략의 거점 도시 이름이었다. 일본군이 강력하게 방어하고 있어서 미군은 이를 우회해서 북으로 전진했었다. 일본은 종전이 될 때까지 버티기는 했었지만 무지막지한 폭격에 시달렸었다.

이곳은 남방 최전선의 거점 항구였기에 최전선으로 가는
병사들이나 복귀하는 병사들을 실어 나르는 수송선이 분주히 드나 드는 곳이었으며 일본 언론에 최후 항전의 비장한 심벌로 보도되어 일본 국민들에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라바울 고우타 [작사: 若杉雄三郎, 작곡: 島口駒夫 ]"는
전쟁이 한창인 1943년 소개되었다. 최초 곡명은 남양 항로였지만 전후 라바울 고우타로 바뀌었다.

 

                     라바울 항내에서 직격탄을 맞은 일본 중순양함 치쿠마



전쟁중이라 일본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었고 전후에도 군대에 향수를 느끼던 올드 팬들에게 애창되었었다.

김 정일과 북한 지배층들이 자주 모여서 연회를 하고 이런 모임에서 남한의 노래를 부른다
는 사실은 북한에 납북되었다가[1978-1986] 탈출한 신 상옥 최 은희[영화 감독 배우 부부]씨의 책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김 정일이 최 은희에게 패티 김의 이별을 부르라고 했었고
자신도 서정적인 남한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잘 믿어지지 않았었는데 후지모토도 죽은 김 정일의 처 고 영희[김 정은의 어머니]가 심 수봉의 “그때 그 사람”을 불렀다고 한다.

 

                                           고 영희
북송된 재일 교포의 딸. 김 정철 김 정은의 어머니. 연애 시절 김정일과 밤새 차안에서 남한 노래를 들었다는 글이 있다.

북한 인민들은 남한의 가요 테이프나 CD만 가지고
있어도 호되게 처벌받는다는데 주민들이 이런 노래를 모임에서 불렀다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고 권력자라는 인간들은 자기들 스스로 미제의 식민지니 뭐니 하며 잡아먹을 듯이 욕을 퍼붓는‘적국’의 노래를 이렇게 버젓이 부르며 놀고 있다니 그 극치를 달리는 위선이 혐오스럽다.

그런데 후지모토의 책과 최 은희, 신 상옥 감독의 책을 비교해 보면
남한과 일본 노래를 부르고 노는 권력층의 심리에 미묘한 변화를 있음을 엿 볼 수가 있었다.

김 정일의 연회에 가끔 그 당시 인민 무력부장이었던 오 진우도
참석하는 일이 있었다.

 


                                                                             오진우
                                                16살 부터 김 일성 당번병으로
빨치산 활동을 했다.


오 진우는 10대부터 김 일성을 따라 다니는 졸개 빨치산이었는데
김 부자에게 충성을 다하여 폐암으로 죽을 때까지 호강을 누렸다. 그는 7,80 년대 무력 도발의 원흉으로 남한 국민의 미움을 많이 받았었다.

오 진우는 김 정일 부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아! 명령만 내리시면 남조선으로 진격하여 조국 통일을
완수하겠는데 - 어쩌구~~“



  

                                                                             김 명국 
                           한때 중장으로 강등당했다가
다시 대장이 되었다는데 무슨 연유가 있을 듯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남한 유행가와 일본 군가를 부르고 놀던
이들도 철이 든 모양이다.

다른 말이 나온다.

후지모토는 연회에 참석한 군 간부 중 한 명인 김 명국이
술에 취해 김 정일에게 이렇게 아첨했다고 전한다.

“ 장군님!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반드시
장군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지하실도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온도는 22도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김 명국은 김 정일이 총애하는 실세로서 현재 북 작전국장이다.
계급은 대장이다.]

즉, 오 진우는 ‘침략’을 말했는데 그 사이 ‘피신'을
이야기 할만큼 북한 지도층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아버지는‘라바울 고우타’를 부르고 어머니는 심수봉의
‘그 때 그 사람’을 부른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들, 김 정철[김 정은의 형]은 미국 기타리스트 에릭 클렙튼에 열광했다.



                                                싱가폴
에릭 클렙튼 연주회에 참석한 김 정철


또 김 정일의 손자 되는
김 한솔[김 정남의 아들]은 남한 가수 신 해철과 왁스에 심취해있다고 한다.

북한의 절대 군주 집안 3대가 몽땅 그들이 저주해 마지 않는 남한과
자본주의 국가들의 문화에 빠져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저런 속에서 성장한 김 정은이 앞으로 무슨 깜짝 카드를 내놓을지
궁금해 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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