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잠수함대의 해저 2만리 -제 3 편-




구(舊) 소련 잠수함대의 해저 2만리
-제 3 편-



한편 2주 전인 10월 25일 파나만 운하를 향해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L-15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여 대서양으로 들어섰다.

코마로프 함장은 미 해군으로부터 미국과 
샌프란시스코 해역에는 일본 잠수함들이 잠복해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를 받고 긴장했지만 무사히 파나마 운하에 도착할 수 있었다.

L-15 잠수함이 단독으로 간 항로를 네 척의 S급 잠수함이
두 척씩 짝이 되어 뒤 따라 항진해갔다. 두 척 구성의 팀들은 각각 한 척씩의 미 콜베트 함의 호위를 받았다.

11월 18일 S-56이 북부 멕시코 바자 캘리포니아 앞 바다를 지날 때
야간 견시를 보던 신호병 니에말체프가 갑자기 외쳤다.

“우측 50미터!”

함교의 야간 견시 장교 스코핀은 즉시 진로를
최대한 바꾸도록 명령했고 어뢰는 겨우 50미터의 차이를 두고 비껴갔다.

함장 슈체드린은 반사적으로 함교 위로 올라와 상황을 지켜보고 동행함 S- 56에 적 잠수함의 출현을 알렸으며 호위하던 미 콜베트 함이 의심 추적 구역에 달려가 폭뢰를 투하
했으나 적 잠수함은 도주해버렸다.

이 비상 조우를 빼놓고 S급 잠수함들은 선행했던 L-15와 같이
파나마 운하를 무사히 빠져나가 카리브 해의 미 해군기지 코코 솔로에 기항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소련 잠수함들은 태평양에서 겪었던 일본 잠수함의
위협보다 휠씬 크고 치명적인 독일 U 보트 함대가 득시글거리는 대서양을 횡단해야 했다.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12월 2일 네 척의 소련 잠수함들은 
코코 솔로 미 해군기지를 출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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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해군 기지에서 미래에 미국 대통령 후보가
되는 존 맥케인이 1936년 탄생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일생을 바다에서 보낸 해군 가문이며 맥케인도 해군 조종사로 월맹 상공에서 격추되어 5년간 포로 생활을 했었다.

그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민주당의 오바마와 대결했다가 실패하였다.


                         코코 솔로 해군 기지-1942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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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잠수함장들은 미 해군이 제공한 카리브 해의 자세한
지도를 가지고 항해에 나섰다. 이 카리브 해도에는 독일 U 보트들이 출현했던 곳들이 정확히 표시되어 있었다.

소련 잠수함들은 먼저 쿠바 섬의 동쪽 끝에 있는 미 해군
관타나모 기지에 들렀다가 다시 북상 미 동해안을 따라 캐나다의 노바 스코셔 섬의 하리팍스까지 가는 방향을 잡았다.

잠수함대 네 척은 두 척씩 짝을 진 함대형을
그대로 유지하여 선두에 S-51과 S-56 팀이 먼저 출항하고 며칠 간격을 두고 S-54와 S-55가 뒤따르기로 하였는데 미국은 계속 각각의 잠수함 그룹에 한 척 씩, 두 척의 콜베트 호위함을 동행시켜주었다.

12월 18일 소련의 S급 잠수함 네 척은 미리 배치 된 캐나다 해군의
호위함들과 만나 노바 스코셔의 하리팍스 항에 입항하였는데 이 하리팍스에서 2주 앞서 블라디보스톡을 먼저 떠났던 L-15 잠수함을 만날 수 있었다. 

                          


                        하리팍스 항이 있는 캐나다 노바 스코셔 섬
 


L-15는 나흘 먼저 도착해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L-15는 동료함인 L-16을 잃고 홀로 항해하여 이 곳까지 도착했기 때문에 S급 승무원들과 만나 반가운 해후를 했다.


1942년 12 월 28일. 이번에는
L-15와 S-51이 한 팀이 되어 먼저 하리팍스 항을 출항, 눈보라가 수시로 몰아치는 북대서양으로 향하였다. 그 뒤를 따라서 S급 잠수함들이 순차적으로 출항하였다. 12월 29일 S-54와 S-55가 뒤를 이어 출항했고 몇 시간 뒤에 마지막 함인 S-56이 홀로 뒤를 따랐다.

선두 팀인 L-15와 S-51은 북 대서양을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인 제일 북쪽의 항로를 택했다. 이들 두 척이 중간 목표 기항지로 정한 곳은 얼음이 둥둥 떠있는 그린랜드의 해협을 통과해서 항해해야 하는 아이스 랜드의 레이캬빅 항이었다.

다른 3척의 잠수함들은 모두 영국 해군 기지가 있는 북대서양 반대 편 스코트랜드의 레사이스 항을 목표로 항해했다.

최북방 항로를 항해한 L-15와 S-51은 그린랜드의
아이즈 캡 수역에 도착하였는데 이 곳은 독일 U 보트의 출현이 빈번한데다가 북빙양의 폭풍이 거세 항해하기가 힘든 곳이었다. 결국 L-15와 함께 출발한 S-51은 폭풍으로 동료함 L-15와 헤어지게 되었고 홀로 항해하여 1943년 1월 12일 아이스랜드의 레이캬빅에 기항하였다.

 


                                                  레이캬빅항이 있는 아이스랜드 섬


다른 세 척의 잠수함들은 목적지였던 스코트랜드의 레사이스의 영국 해군 기지에 무사 도착하였는데 이들이 레사이스 기지에 정박하고 있는 동안 한 만남이 있었다.

그 해군 기지에 폴란드 망명 정부의 잠수함 ORP Sokol이 기항해 있었다. ORP Sokol는 원래는 640톤 급의 영국 잠수함 HMS Urchin이었는데 1940년 진수와 동시에 폴란드 망명 정부에 대여된 잠수함이다.[1945년 영국에 다시 반환되었다.]
  


                                      영국이 폴란드 망명  정부에 대여해준 ORP Sokol
 

이 잠수함은 폴란드 해군에 활용되면서 19척의 적 함선을 격침하는 전과를 올렸였다.

ORP Sokol의 폴란드 함장과 장교들은 소련 잠수함대 사령관인
슈체드린과 브리타쉬코 등의 장교들이 주최한 만찬에 초대받는 기회를 가졌는데 이 회식에서 폴란드측 잠수함 장교 보구스라프 크라우칙 상위가 단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전에 폴란드 잠수함 ORP Wilk의 함장이었는데 1940년 6월 20-21일 사이 야간에 독일 U 보트를 충돌로 침몰시켰었다. [ORP Wilk는 1,250톤으로 1929년에 프랑스에서 진수한 비교적 구식함이며 기뢰 부설을 주 임무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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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U 보트 격침에는 여러 가지 이설이 있다.
독일 잠수함이 아니라 덴마크 잠수함이라던가 대형 부표라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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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사이스에 기항하는 동안 소련 수병들은 영국 해군이 나포한
독일 잠수함 U-570을 관람할 기회를 갖기도 하였는데 U-570은 1941년 8월 27일 아이스랜드 남쪽 해상에서 영국 허드슨 폭격기의 공습을 받고 표류하다가 영국 해군에게 나포된 잠수함으로 독일군 승조원 44명도 전사자 없이 모두 포로가 되었었다.



1945 1월 17일 아주 추운 일요일, 홀로 아이스랜드의
레이캬빅항에 입항하였던 소련 잠수함 S-51은 마지막 종착지인 소련의 무르만스크를 향하여 바다로 나갔다.

S-51은 도중에 소련으로 향하는 연합군의 상선단 JW-2의 옆을 지나가야 했는데
강력한 대잠 호위를 받는 이 선단의 옆을 지나 가다가 호위 함대로부터 오인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컸지만 다행히 무사히 통과 할 수 있었다.

S-51은 1월 21일 밤 북극해의 바렌츠 해로 들어섰고
1월 24일 먼 곳까지 마중을 나온 소련 구축함 라줌프즈와 상봉하여 무르만스크 부근 포라노즈에 위치한 에카체린 해군 기지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S-51은 극동을 떠난 6척의 태평양 함대 잠수함 중 두 개의
대양을 건너는 17,000 마일의 긴 회항(回航) 끝에 북극해의 항구로 들어온 최초의 잠수함이 되었다.

북방 함대의 부사령관 고로우코 소장은 시간을 내서 에카체린
기지로 와서 용감한 S-51과 그 뒤를 후속해서 며칠 뒤에 도착한 S-56의 승무원들을 열렬히 환영했었다.



스코트랜드 레사이스 해군 기지에 입항했던 세 척의 소련 잠수함들은
날씨 관계로 2월 초까지 정박하고
있었다.
            

 

                                소련 S급과 L급 잠수함들이 기항했던 스코트랜드 레사이스


이들은 정박하는 동안 영국 BBC 방송에서 스타린그라드에서 포위되어 있던 독일 폰 파우루스 원수의 6군(30만명)이 소련군에게 항복했다는 뉴스를 듣고 환호하기도 하였다.

한편 S-51과 동행해서 아이스랜드의 레이캬빅 항으로 가던 L-15는 거친
북해의 폭풍우로 대파되어 수리를 위해 함수를 돌려 스코트랜드 레사이스 해군기지로 입항하여야 했다. L-15는 그 곳에 기항하고 있던 다른 S급 잠수함들과 같이 정박하며 수리를 받았다.

스코트랜드 레사이스 기지를 떠난 S-54와 Sㅡ55는 3월 8일
무르만스크 부근 포라노즈에 입항하였고 수리를 마친 L-15는 제일 늦은 3월 28일에야 소련의 항으로 돌아왔다. 휴식과 정비를 한 잠수함들은 3월부터 바렌츠 해에서 작전을 시작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먼 극동에서 2개의 대양을 건너 17,000 마일 떨어진 북극해의
  무르만스크까지 항해해 와서 진눈깨비가 내리는 바렌츠 해를 누비며 작전을 개시한 태평양 함대의 운명은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1943년 12월, S-55가 초계 항해 중 실종되었고 1944년 3월에는 S-54가 같은 해역에서 침몰하였다. 일본 잠수함에게 격침당한 L-16을 포함해서 먼 길을 온 잠수함대의 1/2이 손실된 것이다.



                                              블라디보스톡 해군 기지에 전시 중인 S-56


단, 슈체드린 중령이 지휘하는 S-56만은 북빙양 활동에서 14척을 격침하는 큰 성공을 거두어서 국민적 영웅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이 잠수함은 현재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전시되어 있다.


소련의 잠수함대가 일본과 독일 잠수함들이 우글거리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통과하여 무사히 무르만스크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미국과 영국의 전폭적인 지원때문에 가능했었다.

그런 우호관계가 불과 5년도 안 되어 적대관계로 변해버린 것이
국제 관계가 얼마나 불투명한것임을 알 수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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