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깡통 전차들의 大돌격 -1942년. (제 4 편)







日 깡통 전차들의 大돌격 -1942년. (제 4 편)



                                 말라야 남단 싱가포르로 돌진하는 차량화 부대의 97식 기관총 사수

11 인도 사단은 막심한 타격을 받았고 엄청난 전사상자들이 발생했다. 그 중 일부는 후방으로 탈출하여 싱가폴 방어 전투에 참여하기도 하였지만 더 많은 병사들이 그대로 숲속에 숨어서 싱가폴 방어 사령관 퍼시발이 항복 할 때까지 버티기도 했었다.

린제이 로버슨과 그의 아르길 부대원 등 일부 병력은 끝까지 피해 다니며 후방 영국군 본대로 귀환하고자 했지만 대단히 빠른 일본군의 진격이 이를 가로 막았고, 대부분은 영국군 항복 후 일본군 수색과 소탕작전에 걸려 체포되었다. 로버슨은 1월 20일 전사했다.

본대로 귀환하지 못한 두 여단의 낙오자들은 전 말레이 반도에 흩어져 살길을 도모했었는데 아르길 대대의 일부는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일본군에게 붙잡히지 않고 정글에서 버티고 있었고, 구르카족 출신 하사관인 나익 나캄 구룽은 전쟁이 끝난지도 모르고 밀림에 숨어 살다가 말레이에 공산 반란이 창궐할 때인 1949년 10월 토벌대에게 발견되기도 하였다.



일본군은 전차뿐만 아니라 은륜 부대라는 자전거 부대도 투입해서 재미를 보았다. 북한군에도 이 자전거 부대가  있다.


12 여단은 사실 기능상 소멸되었고 28 여단은
단지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 스튜워드의 12여단은 430명의 생존자들을 긁어 모을 수가 있었다. 그중 94명이 아르길 부대의 장교였다. 셀비의 28여단은 상태가 나아서 759명이 살아남았다. 11사단은 3,2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재정비가 힘들 만큼 많은 장비들을 잃었다.

일본군 전차 부대는 당일 새벽부터 작전 완료 시점인 점심 시간까지 사단의 중앙을 칼로 자르듯 관통하여 19마일을 질주하면서 최소의 투자로 영국군에게 막심한 피해를 주었다.

영국 극동군 사령관 웨벨 장군은 스림 강 이북에서 탈출해온
전투 생존자들을 만나보고 영국군이 처한 환경이 극히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골병이 든 11사단의 전선 이탈과 후방 철수를 명하였다.

일본군의 전차대 공격에 당했던 영국군은 소극적 방어로
돌아서서 현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 룸푸르를 그냥 포기했고 일본군은 쿠아라 룸푸루에 무혈 입성 하였다.

웨벨 대장은 퍼시발 중장에게 중부 말라야를 포기하고
남부 말라야까지 후퇴해서 정예 호주군이 방어선을 치고 있는 남쪽 게멘샤 교량에서 일본군을 격파해버릴 기회를 노려보자고 제안했다. 퍼시발은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1942년 1월 18일 부터 22일까지 나흘간
호주군은 게멘샤 교량이 걸린 무아르 강에서 대단히 선전하며 일본군을 막아 냈다.

 


                                  호주군의 대전차 사격


이 전투에서 스림 강의 시마다 전차대 공격과 같은 대담한 전차대의
돌격이 있었다. 고탄다 시게오 대위가 지휘하는 95식 경전차 9량이 스림 강에서 성공했었던 시마다 전차대의 흉내를 내어 보병의 동행도 없이 기세 등등하게 돌진했었다.

그러나 호주군 두 문의 2 파운드 대전차포에
9량 전부가 전멸해 버리고 말았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도박은 두 번씩이나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호주군의 대전차 포격에 대파 된 일 95식 경전차. 전차병들은 탈출 하다가 호주 보병들의 사격에 전사했다.


호주군은 선전했지만 일본군의 장기인 측면 우회와
보급로 차단에 결국 후퇴해야 했다. 호주군의 선전은 전황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스림 강에서의 대패는 영국군 사령관 퍼시벌 중장에게 큰 심리적 쇼크를 주었었다. 퍼시벌은 말라야 본토에서 일본군을 막아 낸다는 초기 전략을 백지화하고 주력 부대들을 싱가폴까지 후퇴시켜 방어 시설이 더 견고한 싱가폴 주변에서 막아 낸다는 소극적인 전략 자세로 일관했다.

일본군은 싱가폴 죠호르 해협 건너 해안까지 몰려 와서
싱가폴의 섬에 무자비한 포격을 가했다.

 

 

                                  싱가폴 죠호르 해협


결국 수도 공급 시설이 망가진 퍼시발은 1942년 2월 15일 야마시타를 만나 항복 교섭 회담을 했다. 사실 일본군도 포탄이 거의 다 떨어져 공격을 조만간 중단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맹장 야마시타는 초조함을 숨기고 오히려 배짱으로 회담에 임했다. 

퍼시발은 여러 항복 조건을 내걸며 시간을 끄는 자세를 보였지만 야마시타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며 협박했다.

“ 예스까? 노까? ”[예스냐 노냐?]

야마시타의 호통에 심약한 퍼시벌은 기어
들어가는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스였다.

 


퍼시벌을 협박하는 야마시타. 그는 일본 항복 전에 필리핀 방어군 사령관으로 부임해서 항복을 맞이 하였다. 그는 1946년 2월, 필리핀 미군 포로 학대 혐의로 교수형을 받았다.


그의 소극적인 지휘로 8만 명이나 되는 영국군과 주민들이
포로가 되어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으며 3년 6개월 동안 동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했다.



시마다 전차대가 참가했었던 스림 강 주변의 일본군 공격은
세계 전사에 스림 강 전투로 등록되어 있다.

스림 강의 전투는 전차가 야간에 공격했다는 것 외에
좁은 길을 종대로 기동해서 공격했다는 점에서 다른 특징이 있다. 여기에 무기력하게 붕괴된 인도 사단 처지를 더해서 생각해보면 6.25 침공 초반, 아무 준비가 없었다가 북의 전차대에게 당하기만 하던 국군의 사례가 생각난다.

1950년 6월 28일, 광릉의 임업 시험장 삼림을 뚫고 우회해서
서울 중심부로 침투 했었던 두 량의 T-34 와 일개 보병 소대에 놀라 한강교를 폭파하고 철수해버린 육군 본부 간부들이 상기 된다.

전차는 원칙적으로 주간 공격용 무기다.
6.25전쟁 중 북한군은 서울 공격의 성공에 고무되어 여러 번의 야간 전차 공격을 가했었지만 거의 실패 했었다.

북한 전차대가 감행한 야간 공격의 대표적 사례는 1950년 8월
다부동 전투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공격은 미리 준비하고 있던 미군들에게 철저히 분쇄 되고 말았다. 105 전차 사단은 다부동 전투에서 13량의 전차를 잃었었고 북한은 낙동강 전선에 더 이상 조직적인 대규모 전차 공격을 시도하지 못했다.

  


영국군은 싱가폴 항에 대한 위협이 바다로 부터 오리라고 예상하고 막강한 해안 포대 군을 구축했지만 일본군은  말라야에 상륙해서 배후를 찌르는 전략을 구사했기때문에 바다를 겨냥하고  있던 해안포들은 위기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영국군의 인도 사단이 약체 사단이고 대전차 지뢰나 대전차 무기도 변변치 않았을뿐더러 대전차 전투 훈련을 받지도 않은 것을 간파한 시마다 소좌가 과감하게 시도했던 도박이 성공했던 것으로 판단 된다.

스림 강의 전투에서 일 시마다 전차대가 했던 것처럼
전차들이 열을 지어 적중으로 뛰어드는 전술은 물론 오늘날 한반도에서는 가능해 보이지는 않다. 대전차 공격 무기와 대전차 지뢰 같은 방어 무기들이 비약적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림 강 전투에서 우리가 전차의 공격과 방어의
입장에서 배워야할 교훈은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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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전차들에게 당했던 쓰린 경험의 반응이랄까?
서울 이북에는 대전차 장애물들이 겹겹이 있다.

나는 현역 시절 여단 작전참모로 있던 분이 이 대전차
장애물 옆을 통과하며 하던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북괴 침공시 이 장애물들에 시급히 경계 병력을
배치 해야 할 것 같은데..."

" 왜요?“

"우리 군 철수 상황시에 북괴가 헬기 특공이나 간첩
 투입으로 장애물을 폭파시키면 북괴가 아니라 우리가 이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한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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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참모 분의 염려가 타당한지 아닌지 내가 판단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스림 강 전투에서 영국군의 의표를 찌르는 일본군 전차대의 기습을 연상시키는 기억이었다.


특공대의 기습과 같이 전차의 전술에서도 전술 사고(思考)의
허(虛)를 찌르는 적의‘창의적인 기습’이 가능할 수 있으며, 이는 우리의 전투 환경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점 특히 전차 방어 대책에서 폭 넓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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