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만 기억하는 세상?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 ?
 
 
2차대전 말기에 등장한 V-1, V-2 같이 당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무기들을 흔히 '나치의 비밀병기'라고 통칭한다. 그런데 독일과 자웅을 겨루던 당대 열강들도 이런 무기의 개발에 나름대로 박차를 가하고 있던 중이었다. 즉, 독일의 기술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뛰어나게 앞섰다기 보다는 전쟁 말기의 불리한 전황으로 인하여 비밀 병기들이 충분한 시험을 거치지 못하고 전쟁터에 먼저 등장하였을 뿐이다.

 

                                   V-2는 가장 대표적이었던 독일의 비밀병기였다

 

만일 독일이 극성기였다면 전쟁 자원 배분에 있어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던 V-1, V-2 같은 무기들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고, Me-163처럼 운용이 어려운 무기들을 제대로 된 실험이나 안정성 확인도 없이 제식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후대의 호사가들이 언급하는 대부분의 나치 비밀무기들은 구상단계로만 끝났고 제식화되어 전선에 투입된 일부 무기들도 그다지 인상적인 전과를 올리지는 못하였다.

 

                            BA-349 Natter(로켓요격기)는 미완으로 끝난 비밀병기였는데
                              이처럼 완성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난 경우가 더 많았다

 

다만 심리적인 효과가 컸을 뿐이었는데 그것은 낯설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독일 비밀무기들의 기술력이 당대를 훨씬 앞서갈 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비밀무기뿐만 아니고 독일의 무기들이 무조건 성능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보다 한 두 세대를 앞선 기술력을 보유한 무기가 있었다면 독일이 전쟁에서 패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독일의 주력 폭격기였던 He-111은 동시대 연합국 폭격기보다 뛰어나지 않았다.
                           이처럼 독일 무기라고 무조건 성능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지 먼저 역사에 등장하였다는 미세한 시간적 차이가 무기사에는 엄청난 격차를 불러오기도 한다. Me-262가 가장 대표적인 예인데, 이놈은 제트 전투기 역사에 있어 최초와 관련된 자랑스러운 대부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1944년 중반, 전선에 등장하여 2차대전에서 활약한 유일무이한 제트 전투기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다.

 

                                        세계 최초의 제트전투기인 Me-262

 

그런데 거의 비슷한 시기였던 1943년 3월 영국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Gloster Meteor(이하 Meteor) Mk1도 시험비행에 성공하고 이후 양산에 돌입하여 배치되기 시작하였지만 유럽 종전일인 1945년 5월까지 실전에 투입되지 않았다. Meteor의 실전 투입이 늦어지게 된 것은 선회력이나 엔진 등에서 문제가 있어서였다. 그런데 전선에서 맹활약 중이던 Me-262도 같은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영국 최초의 제트전투기인 Gloster Meteor

 

고속으로 선회하면 실속( )할 가능성이 커서 공대공 전투가 불가능하였고 영국제 보다 성능이 미흡한 Jumo엔진은 비행 신뢰성에 고민을 안겨주었다. 어차피 이긴 전쟁이었으므로 영국은 불안정한 전투기를 무턱대고 전선에 밀어 넣을 필요가 없었던 반면 독일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불안정한 전투기를 투입하였던 것이다. 항공 전사를 보면 연합군이 Me-262에 경악하였다고 되어 있지만 이처럼 대항마가 존재하고 있었다.

 

                                          제트엔진의 성능은 영국제가 좋았다
                                (Meteor의 Rolls-Royce W2B Welland 제트엔진)

 

Me-262는 패전으로 인해 사라졌지만 Meteor는 이후 개량을 거듭하며 영국과 영연방 국가에서 활약하였고 일부 기체는 196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하지만 Me-262는 최초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한 장을 찬란하게 장식한 반면 비슷한 성능을 보유한 Meteor는 그저 그런 전투기로만 남았다. Meteor가 처음 실전에 투입되었던 1950년 6.25전쟁에서 어느덧 구식 전투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호주 공군 소속의 Meteor Mk8

 
호주 공군 77전대(RAAF 77th SQ)가 한국전쟁에 투입되었을 때는 F-86과 MiG-15가 하늘의 주역으로 자리잡은 시점이었다. 따라서 호주 공군이 막상 Meteor를 인도받았을 때 조종사들은 상당히 암담해 하였을 정도였다. 결국 단지 제트 전투기라는 이름만 믿고 마음 놓고 하늘을 날을 수 없던 Meteor는 지상 공격기로 용도를 바꾸어야 했다. 불과 5년이라는 세월은 Meteor를 구닥다리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었다.

 

                                1등이 아니어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였던 Meteor

 

짧고 굵게 존재하였지만 무기사에 인상 깊은 흔적을 남긴 Me-262와 달리 거의 동시에 태어났지만 약간 늦게 등장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고 또한 뒤늦게 전쟁터에 등장해서 구닥다리 취급을 받은 Meteor를 보면 최초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게 취급받는 기준인지 알 것 같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는 말처럼 무기의 세계에도 이런 분명한 법칙이 존재하는 것 같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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