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에 안주하였던 결과 [下]







장벽에 안주하였던 결과 [ 下 ]


위협이 다가오자 독일은 대서양장벽의 건설과 보강에 좀 더 박차를 가하고, 연합군의 상륙이 있을 경우 효과적으로 방어에 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지휘관을 책임자로 임명하여 파견하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지휘관은 장벽을 수성하는 것보다 적의 장벽을 뚫는데 더 유능한 인물이었다. 바로 사막의 여우로 알려진 롬멜(Erwin Rommel)이었다.


                                     

                                    장벽을 담당할 수문장으로 롬멜이 부임하였다


1944년 초, 북부 프랑스 해안을 담당하는 B집단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롬멜은 부임하자마자 히틀러가 제3제국을 굳건히 지켜줄 것으로 믿고 있는 대서양장벽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대전차포를 비롯한 각종 방어 무기를 좀 더 촘촘히 설치하였고, 해안에는 이후 롬멜의 아스파라거스(Rommel's Asparagus)라고 불린 수많은 상륙저지용 장애물과 600만개의 지뢰를 매설하였다.

 

                                  롬멜은 단시간 내 방어선을 정비 완료하였다


하지만 롬멜은 공격자의 입장에서 장벽을 무력화시켰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장벽에만 의존하는 방어를 전적으로 믿지 않았고, 단지 수비군을 최 일선에서 보호하는 일시적인 장애물로만 생각하였다. 그는 장벽 배후에 기갑부대를 중심으로 기동타격 능력을 갖춘 강력한 예비대를 배치하여 방어의 중핵으로 삼고자 하였다.

 

                                                대서양장벽을 순시하는 롬멜


아프리카 전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공권이 확보되지 않은 기갑전은 극히 불리한 전술이라고 생각한 롬멜은 해안에 구축된 장애물로 적의 상륙을 최대한 저지하는 순간 배후에 대기 중인 강력한 기갑부대로 상륙군을 격멸하고자 하였던 것이었다. 상륙전의 특성상 공격자는 어쩔 수 없이 경무장의 상태로 축차투입 될 수밖에 없고, 이것은 반대로 방어하는 기갑부대가 쉽게 요리 할 수 있었다.

 

               롬멜은 방어의 중핵이 거대한 해안포가 아니라 강력한 기갑부대라고 판단하였다


특히 근접하여 전투가 벌어진다면 제공권을 장악한 연합군도 피아를 구별하여 폭격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롬멜의 구상은 상당히 뛰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연합군 주력을 내륙 깊숙이 끌어들여 독일 기갑부대로 한 번에 격멸하고자 하였던 서부전선 총사령관 룬트슈테트(Gerd von Rundstedt)를 비롯한 여타지휘관의 의견을 히틀러가 지지함으로써 롬멜의 구상은 좌절되었다.

 

                           기갑부대의 운용에 대해 이견을 보였던 룬트슈테트와 롬멜


결국 노르망디 상륙 작전 시 이미 설치해 놓은 각종 방어기구가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장벽 뒤에 숨은 독일군이 완강하게 저항하며 상륙부대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히기는 하였으나, 기갑부대의 후속지원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제공권의 상실과 대규모함포사격에 노르망디의 대서양 장벽은 돌파당하고, 연합군은 서부전선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독일의 패망은 가속화되었다.

 

                                  오늘날 대서양장벽은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150년 전의 나폴레옹처럼 히틀러는 장벽이라는 수단으로 대륙을 봉쇄하려 하였다. 나폴레옹이 대륙 봉쇄령을 어긴 러시아를 정벌하러 간 것처럼 비록 명분은 다르지만 히틀러는 장벽으로 대륙을 봉쇄하고 소련을 쳐들어갔다. 하지만 스스로를 안에다 가두어 놓고 러시아 평원으로 들어갔던 두 독재자는 결국 몰락으로 그 생을 마감하였고, 오늘날 대서양 장벽은 마지노선과 더불어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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