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폭격기와 호위기 [上]








전략폭격기와 호위기  [ 上 ]
  
 
폭격기가 본격적인 타격 수단으로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다. 특히 대형폭격기를 이용하여 적진 깊숙이 설치된 시설물을 공습하여 적의 전쟁 수행의지를 꺾으려는 이른바 전략폭격을 처음 시도 한 것은 미국이었다. 이 때문에 대형폭격기의 발달과 전술은 미국이 선도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전선에서 B-17의 대공습이나 태평양전선에서 B-29의 폭격은 한마디로 적들에게는 대재앙이었다.

 

                      독일의 전쟁 수행의지를 급격히 약화시킨 B-17 비행대의 출격 모습


요즘이야 Surgical Strike라고 불리울만큼 정밀 유도무기를 이용하여 목표물만 정확히 골라서 타격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타격 정밀도가 떨어진 당시의 폭격기들은 어쩔 수 없이 목표물이 포함 된 광범위한 면적을 무차별 융단폭격하는 방식으로 공격을 가하였다. 이런 이유로 폭격기는 한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을 만큼의 대용량 폭장 능력이 필요하였고 당연히 몸집이 클 수밖에 없었다.

                                       육중한 중폭격기들은 요격기의 밥이었다



폭격기들은 작전을 펼치려면 목표물까지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여야 했는데, 이처럼 기동력이 떨어지는 육중한 몸집으로 제공권이 확보되지 않은 적진 한가운데로 날아간다는 것은 사실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고사포에 의한 지상으로부터의 공격도 무서웠지만 날렵한 적전투기들의 요격은 폭격기 조종사들에게 상당한 공포를 안겨주었다.

 

                  폭격기편대가 목적지까지 접근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요격을 받아야 했다


비록 자위를 위해 나름대로 중무장은 하였지만 코끼리 같이 둔한 폭격기와 독수리같이 날렵한 전투기와의 공중전은 사실 그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그래서 폭격기가  적 요격 전투기의 위협에서 벗어나 목표지점까지 안전하게 날아가서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도록 장거리 순항능력과 전투능력이 있는 호위 전투기가 필연적으로 등장하였다.


                                   P-51은 B-17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서부 유럽 전선에서 B-17 비행대를 노리던 독일의 Me-109, Fw-190이나 Me-262 같은 요격기에 맞서 호위기로 출동한 P-47과 P-51은 눈부신 분투를 펼쳐 중폭격기 비행대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특히, 롤스로이스 엔진을 장착하고 등장한 P-51은 장거리 호위 전투기의 필요 목적과 전투기로써의 명성을 드높여 주었다. 한마디로 악어와 악어새의 찰떡궁합이었다.


            장거리 항속이 가능한 고성능 호위기의 등장으로 폭격작전은 보다 수월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 태평양전선에서 맹활약한 B-29는 한마디로 난공불락이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일본 요격기들이 B-29가 날아다니는 고공까지 올라가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면 미사일로 요격하겠지만 당시에는 근처까지 가서 공격하여야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이것 자체가 불가능하여 벌어진 결과였다. 한마디로 당시 일본은 B-29의 폭격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대책이 없었다.


                               전쟁 말기 등장한 B-29는 한마디로 접촉불가였다.
                               그래서인지 호위기의 고마움을 서서히 망각하였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미국은 전후 유럽 전선에서 활약하였던 호위 전투기의 효용성을 그새 망각하였고, 그 결과 B-29 같은 고성능 대형 폭격기로 고고도에서 폭격을 가하기만 하여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폭격기 만능론이 대두되었다.  B-17이 초기 출격 시 겪었던 어려움과 호위 전투기의 고마움을 까먹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자만도 얼마가지 않아 끝나고 코피가 터지는 일이 벌어졌다.



                                   B-29 편대의 융단폭격이 5년 만에 재현되었다

 
5년 만에 대규모 국제전이 발발하였는데 바로 한국전쟁이다. 이때 태평양전쟁의 왕자였던 B-29는 보무도 당당히 출격하여 5년 만에 무시무시한 융단폭격을 재현하였다. 비록 전사에는 폭격내용에 비해서 그 효과가 크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다부동을 정점으로 하는 낙동강 최후 방어선에서 북한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B-29는 역할을 다하였다.


 

                                        그냥 폭탄만 버리고 오는 수월한 임무였다

 

이 당시 제공권을 유엔군이 확보했기 때문에 일본 본토 폭격 당시처럼 B-29는 무주공산의 하늘에서 그냥 폭탄만 버리고 오는 상당히 단순한 임무였다. 이후 전세가 반전되어 더 이상의 융단폭격은 한 동안 없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의 후퇴가 이뤄지자 공산군의 보급로를 차단 할 목적으로 북한지역으로 날아가 대대적인 폭격작전을 재개하였다.

 

                     듣도 보도 못한 은색의 요격기들이 튀어 올라와 B-29를 위협하였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은색의 제트전투기들이 날아와 B-29들을 무차별 요격하기 시작했다. 바로 공포의 MiG-15였다. 한마디로 MiG-15는 제2차대전 당시의 프로펠러 전투기들처럼 B-29가 비행하는 고고도까지 올라오지 못해서 밑에서 헉헉거리던 그런 전투기가 아니었다. 차원이 달랐고 항공전사는 새롭게 쓰이게 되었다.

 

                        MiG-15의 건카메라에 잡힌 B-29의 모습. B-29는 방법이 없었다

 

감히 쫓아 갈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를 이용한 기습공격으로 폭격기들은 멍하니 날아가다가 격추를 당하였고 간신히 격추를 피한 B-29 조종사들은 그냥 자기의 비행기가 요격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대책이 없었다. 이후 폭격기 조종사들은 호위 전투기 없이 적진에 공습 나가는 것을 거부 할 정도가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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