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일본의 전쟁 [下]








독일과 일본의 전쟁 [ 下 ]


야비한 침략


후발 제국주의 국가였던 독일처럼 해외 식민지 확보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으로 대만을, 러일전쟁으로 조선과 사할린의 절반을 각각 차지하였지만 이것만 가지고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이 식민지를 더욱 차지하려면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기존 제국주의 국가와 경쟁을 했어야 했는데 당시의 국력으로 이들과 직접 대결 하기는 어려웠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군


일본은 러일전쟁으로 확보한 뤼순(旅順)을 발판으로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이미 대륙의 상당 지역은 일본이 상대하기 어려운 국가들이 선점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들 국가들은 러일전쟁 당시에 일본을 적극적으로 후원해준 나라들이었고 그들이 천신만고 끝에 격파한 러시아보다 강대국들이었다. 전통적으로 강한 자에는 한 없이 약하게 구는 것이 일본인지라 적극적으로 이들과의 대결은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에도 서양의 간섭에 의해 팽창이 좌절된 경험이 있었다 
                           (시모노세키 조약 당시에 간섭하기 위해 참가한 서양 열강) 


그러던 중 1914년,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한의 헤게모니 쟁탈 경쟁을 벌이던 서구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하였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틈을 타 그동안 중국 내륙으로 진출 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일본은 1902년 체결 된 영일동맹을 핑계로 전격적으로 연합군에 가담하고 1914년 8월 15일 자신들의 요구가 이뤄지지 않으면 전쟁을 하겠다고 독일에게 최후통첩을 하였다.

 

                                      제1차 대전에 참전을 결정 한 수상 오쿠마


그런데 최후통첩 내용이  우습게도 독일이 조차하고 있던 칭다오를 달라는 것이었다. 독일은 야비의 극치를 달리는 일본을 박살내고 싶었겠지만 유럽의 전쟁에 모든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관계로 지구 반대편에 멀리 떨어진 칭다오에 대해 사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이처럼 일본은 미국처럼 군대를 직접 유럽에 보내서 독일과 싸우려는 생각은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칭다오 전선의 일본군


1914년 8월 23일 일본은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뤼순에서 보하이(渤海)를 넘어 산둥반도에 상륙하여 반도를 가로질러 칭다오로 쳐들어갔다. 이로써 일본은 제1차 대전을 유럽만의 전쟁이 아닌 전 세계적인 전쟁으로 승격 시키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멀리 떨어진 본국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고 주변이 연합국 측 세력에 포위 된 독일군은 사실 싸움다운 싸움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본에게 칭다오를 내 줄 수밖에 없었다.

 

                                      칭다오로 향하는 일본군의 진격 모습


일본의 명분은 영일동맹조약을 이행한다는 것이었으나, 유럽의 전쟁을 틈타 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제국주의 국가 편에 붙어 이익을 차지하려한 파렴치한 강도짓이었을 뿐이었다. 물론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아시아에 대한 침략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되기 어렵고 비난받아야 할 나쁜 행위였지만, 이보다 한술 더 떠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연결하고자 즉시 뒤통수를 치는 일본의 야욕은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칭다오 전선에 참전한 일본군 야전병원 간호병의 모습


결국 제1차 대전 종전 후인 1922년, 이러한 일본의 행태가 너무 야비하다고 판단한 다른 전승국들이 압력을 행사하여 칭다오를 중국에 반환하는 것으로 모든 사건은 마무리 지어졌다. 하지만 이 당시까지도 국제사회는 일본의 야비함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 전쟁에 참여하여 어부지리로 승전국의 지위를 얻었다고 생각하였던 일본은 상당히 실망하였지만 그렇다고 야욕이 멈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침공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였다


일본은 이런 국제 사회의 조치에 반발하였고 대신 비겁하게 그들이 도발한 독일에게 접근하여 새로운 악의 축을 형성하였다. 결국 20년 후 미국 등 서방세계는 태평양 전체가 전쟁터로 변하고 코피가 한번 터져 본 후에나 일본의 집요한 침략 근성에 대해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일본의 이러한 침략 근성이 역사적으로 근현대사에만 국한되어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고, 그때마다 가장 먼저 피해를 당한 것은 우리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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