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話, 뒤집어 생각하기 [ 3 ]





 


神話, 뒤집어 생각하기 [ 3 ]
 
 
기막힌 전과
 
 
1941년 1월, 히틀러는 제5경사단과 제15기갑사단의 2개 기갑부대를 근간으로 하여 창설한 독일 아프리카군단(DAK)을 리비아에 파견하기로 결정하였고 이 부대의 지휘권을 롬멜에게 부여하였다. 이때 OKW(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는 롬멜에게 '패퇴 중인 이탈리아군을 도와 트리폴리를 방어' 하라는 지극히 단순한 명령만을 하달하였고, 이런 OKW의 결정에 군권을 놓고 경쟁하던 OKH(독일 육군 최고사령부)도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소련 침공준비 와중에도 병력을 북아프리카에 파견한다


독소전을 앞두고 전력을 분산한 히틀러의 결정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독일군 최고지휘부는 단지 소극적인 작전으로 전선을 현 상태로 묶어 놓고자 하였고 그것은 당연한 결정이었다. 비록 전체 독일군으로 보았을 때 아프리카군단은 1퍼센트 정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전력이었지만 소련과의 일전을 앞두고 원정군을 파견한 독일은 그들이 그렇게 피하고자 하였던 제2전선을 스스로 구축한 꼴이 되었다.

 

                                  독일은 아프리카에 스스로 제2전선을 구축하였다


리비아에서 석유가 발견된 것이 1950년대 중반이었으므로 당시에는 북아프리카가 독일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독일은 전략자원의 대부분을 소련에서 찾고자하였고 그것이 소련을 침공한 이유이기도 했다. 따라서 마지못해, 그것도 해군력이 약한 독일이 바다를 건너 북아프리카에 전선을 확대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자신들이 전선을 확대시키지 않으면 갈 길이 바쁜 영국도 굳이 확전할 것이라 판단되지 않았다.


 

                     독일이 현 전선을 고수하면 영국군의 대응도 소극적일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야심가였던 롬멜은 영국군을 궤멸시키기로 결심하였다. 더구나 한심하게 패배하였지만 그래도 현지 상황에 능통한 이탈리아군과의 공조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롬멜은 선발대와 함께 트리폴리에 도착하자마자 영국군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준비에 들어갔고 얼마안가 롬멜의 신화가 역사에 등장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방어에 전념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롬멜이 항명한 것과 다름없었다.

 

                                            롬멜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본진 도착 이전인 1941년 3월 24일, 롬멜은 엘 아게일라(El Agheila)까지 진출한 영국군을 공격함으로써 전사에 길이 남는 신화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때 롬멜이 동원 할 수 있던 부대는 제5경사단의 선발부대로 아프리카로 가장 먼저 건너온 제5전차연대, 단 한개 연대뿐이었다. 기상천외하게도 이처럼 소규모의 선발대만으로 독일은 과감히 선제공격을 가하였던 것이었다.

 

                               롬멜은 소수의 선도부대만 가지고 공격을 개시하였다


롬멜은 트리폴리에 도착한 독일군이 엄청난 전차를 보유한 대규모 기갑부대라고 과잉 선전하여 사전에 상대를 철저하게 기만시켜 놓는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이를 단지 본진이 도착하기 이전에 영국군의 공격을 막기 위한 소극적 의도로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롬멜은 영국군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 약점을 파고들었던 것이고 이를 이용하여 과감하게 선제공격에 나선 것이었다.

 

                              마타도어의 일환으로 트리폴리에서 벌어진 독일군 퍼레이드

 

1939년 이후 독일군은 패배를 모르는 군대였고 영국은 프랑스에서 비참하게 패배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 영국군은 독일군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고 독일군의 등장에 당연히 움츠러들 수밖에 없던 상태였다. 더불어 독일군의 마타도어에 속아 상대를 상상 이상으로 크게 여기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이탈리아군을 쓸어 담으며 장장 900킬로미터를 진격해와 보급로도 길어지고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다.


 

                                                    이집트 영국원정군

 
이런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있던 롬멜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가하였던 것이고 영국군은 석 달 전의 이탈리아군처럼 어설프게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불과 2주 만에 영국군은 장성 3명이 포로가 되는 전사에 길이 남는 치욕을 당하며 1,000킬로미터를 롬멜에게 쫓겨 후퇴하면서 붕괴되었다. 그것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제5전차연대가 일으킨 가짜 모래바람에 속아서 제풀에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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