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話, 뒤집어 생각하기 [ 끝 ]









神話, 뒤집어 생각하기 [ 끝 ]

 

 

신화의 뒤편 


롬멜이 정치적 군인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정치권력에 안주하여 부귀영화를 누린 것은 아니었지만 보통의 군인들과는 시작이 달랐다. 우선 그가 독일군부 내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히틀러의 후원에 의해서였다. 우연한 기회에 히틀러와 관계를 맺은 그는 1940년 초까지 총통 경호대장으로 근무하였고 이후 군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직접 히틀러에게 기갑부대 지휘관 보직을 청원하여 희망을 관철하였다.

 


                                    히틀러는 롬멜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


어쩌면 이후에도 정식 계통을 무시하고 툭하면 총통을 직접 찾아가 의사를 피력한 그의 행동이 그를 시기하는 세력을 많이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7기갑사단장이 된 그는 프랑스 전역에서 야전 지휘관으로 능력을 선보였지만 당시에도 돌출적인 행동을 자주하여, 군부 내에서 신망이 높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 신사로 알려진 직속상관이었던 호트(Hermann Hoth)조차도 그를 좋게 평가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프랑스전역 당시 군단장 호트와 사단장 롬멜

 

아프리카에서 지침을 어기면서 이룬 초기의 빛나는 성공은 그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수단이 되었고 또 최연소 원수에 오르도록 만들었지만, 말년까지 이어진 그의 독단적인 행동은 상관은 물론 부하 지휘관들과도 마찰을 불러 왔을 정도로 매끄럽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프러시아 출신들이 공고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독일 군부를 고려할 때 아웃사이더였던 롬멜이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다는 동정론도 많다.
 

 

                           트리폴리 도착 직후 전차의 하역을 지켜보는 롬멜



그러나 이 또한 그리 신빙성 있는 주장이라 보기는 힘들다. 그를 가장 비난했던 인물들 중 하나였던 참모총장 할더(Franz Halder)가 바로 남부 독일의 바이에른(Bayern) 출신이었을 만큼, 능력에 따라서 많은 비(非)프러시아 출신 인물들도 독일 군부의 핵심까지 충분히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를 이끌어준 히틀러가 프러시아 출신이 아니었다.

 


               롬멜 면전에서 일개 사단장 그릇밖에 되지 않는다고 혹독하게 비난했던 클루게
 
                                     (좌에서 우로 클루게, 롬멜, 히틀러)


하지만 롬멜은 그를 발탁한 총통에 의해 제거되는 비극의 인물이기도 했다. 1944년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에 관여되었다는 혐의에 분노한 히틀러가 롬멜을 제거할 때도 그의 가족과 명예를 지켜주는 조건으로 자살을 강요하였다. 무소불위의 히틀러조차 국민들의 눈이 무서워 그를 반역자로 몰아 처단할 수 없었을 만큼 롬멜은 대중에게 업적이상으로 어필이 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히틀러도 공개적으로 단죄하지 못할 만큼 어느덧 롬멜의 위상은 커져 있었다
 
                                                            (사진은 롬멜의 장례식 모습)


당연히 그의 전성기에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독일 내에 없었고 패전 후에도 별다른 처벌이 없도록 만들었는데, 롬멜의 독단적인 행동과 그로 인한 인기는 결국 독일에 독이 되어 돌아왔다. 북아프리카 전선 초기 그의 공격이 비록 성공을 거두었다하더라도 항명한 사실에 대해 엄중히 문책하고 롬멜을 애초 계획한 작전만 수행하도록 조치하였다면 독일이 북아프리카 전선 때문에 골치가 아팠을 가능성은 줄어들었을 것이고, 그만큼 더 동부전선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전을 협의 중인 롬멜



다음은 롬멜의 승리가 독일군 전체에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예다. 롬멜이 대중적인 인기와 총통의 비호를 받는 점을 이용하여 상부의 지침을 어기고 오로지 그의 의지대로만 작전을 펼치는 돌출적인 행태를 보이자 이에 분노한 참모총장 할더가 당시 제1참모부장이었던 파울루스(Friedrich Paulus)를 북아프리카로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고 한다. - "어떻게 해서든 이 군인이 완전히 미치지 않도록 막으라!"

 

                      이 영웅이 평범하였다면 과연 어떠하였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전사에 길이 빛나는 승리를 이끈 롬멜이었지만 결국 패장이 되어 아프리카를 떠나야 했던 원인은 어쩌면 모두 그에게 귀결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물론 결론을 알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지만 롬멜이 만일 북아프리카에서 적극적 공세가 아닌 수세적인 방어로 일관하였다면 과연 어떠한 결과를 얻었을까? 아마 아주 유명하지 않은 보통 장군정도만로 알려졌겠지만 독일 입장에서는 어쩌면 그것이 좋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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