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항모[Varyag]의 중국명 스랑[施琅]은 누구인가?







중 항모[Varyag]의 중국명 스랑[施琅]은 누구인가?

 

 

                        중국 항모 -중국명 스
랑[施琅]-의 작전 상상도


중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위장 구입한 항모 바랴그[Varyg] 함의 개장 공사를 거의 끝내고 곧 취역 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항모에 붙은 중국 해군의 정식 명칭은 바랴그가 아니라 스랑[施琅]이다.


 

                                  스랑 [施琅, 1621年-1696年]


이 함명[艦名]의 유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 함명의 유래를 알게 되면 느껴지는 바가 크다.


말이 나온 김에 우선 '바랴그'라는 본 이름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고 지나가자.

바랴그는 러시아식 발음으로 와랴그이다. 8세기경 발틱해에서 현재 러시아 내륙으로 이동해온 무리들로 유명한 바이킹의 일족인데 그 이름을 딴 바랴그라는 이름을 가진 러시아함이 한반도 역사에서 얼굴을 내민적이 있다.

 


                                         바랴그 인들


 
유서 깊은 바랴그라는 이름은 1901년 미국 펜실바니아 주의 조선소에서 진수했던 러시아 순양함에게 처음으로 주어졌었다. 6,500톤인 이 순양함은 1904년 지금의 인천인 제물포 앞 바다에서 일본 해군 우류 제독이 지휘하는 일본 함대와 해전을 벌여 대파된 후 다시 제물포 항으로 돌아와 동료함 코레츠와 함께 자침(自沈)했다. 

 

 

                                            제물포 해전에서 자폭했던 바랴그 6,500톤


전후 일본은 침몰한 바랴그를 인양, 수리해서
소야라는 이름으로 일본 제국 함대에 편입시켰다가 1916년 러시아와 사이가 좋아진 후에 러시아에 다시 인계했고, 러시아는 영국 조선소에서 수리를 해서 북빙양에 배치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에 볼쉐비키 정권이 들어서자
영국 정부가 이를 나포하여 독일에 팔아버렸는데 1925년 바랴그는 좌초된 후 결국 고철로 처리되어 버렸다.


60 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바랴그라는 이름이
소련 해군에 다시 나타난다.

소련 공산 정권이 당시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에서 건조 중이던 항모에 바랴그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인데 이후 소련이 해체되면서 이 항모가 고철 가격으로 중국에 팔리게 된다.

소련은 이 바랴그라는 이름을 1983년 건조한
미사일 순양함에 다시 부여하기도 한다.

  

 

                            미사일 순양함 바랴그-11,490 톤


다시 중국 항모 스랑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해상 리조트 호텔을 한답시고 대리인을 내세워 미완성인 구 소련의 항모를
위장 구입한 중국 해군이 항모에 붙여준 이름 '스랑'은 다름아니라 1600년대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기치아래 끈질기게 청조에 저항했던 해상 세력 정지룡-정성공 부자 밑에 있던 심복 부하의 이름이다.

스랑은 항해에 비상한 능력이 있었고 해상전을 기가 막히게 잘 지휘해서 주변의 칭찬을 받았었는데 자기보다 두 살 아래인 정성공과 불화를 일으키고 만주족인
청조로 투항했었다.

정지룡은 당대에 중국 해안의 해상 세력을 손아귀에 넣을 만큼
능력이 뛰어났던 난세의 영웅으로 500-1,000척의 정크 선을 휘하에 두고 6만-8만정도의 중국인 무장 세력을 호령하였다.

정지룡의 무장 세력은 명나라에서 성행하던 왜구형 중국인 해적의
후기 조직으로 사무역과 해적질을 병행했었는데 정씨 부자는 명조(明朝)를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을 집어삼킨 만주족을 상대로 무력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정성공 활동 영역-붉은 지역은 그의 점령지역, 주황색 지역은 영향력 지역이다.


정지룡의 활동 무대는 중국 해안은 물론 일본에서부터 필리핀과 월남,
인도네시아까지의 광활한 지역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일본 규슈에 있던 히라도[平戶島]섬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때 다가와(田川)라는 일본인의 딸과 사랑에 빠져 아들을 낳았다.

후쿠마스[福松)라는 일본인 이름을 가지고 일곱 살까지 엄마와 살던 정지룡의
아들은 후에 복건성의 아버지 곁으로 보내져 '성공'이라는 이름을 얻고 교육도 잘 받으며 성장하여 아버지의 세력을 계승했는데 그 역시 문무에 능력이 탁월한 출중한 인물이었다.

 

 

 

                                     정성공[1624 -1662]


명이 망한 뒤 두 부자는 줄기차게 대청 투쟁을 하며 청의 신흥 왕조에 애를 먹였다. 정성공은
아버지(정성룡)가 청에 항복하여 연금을 당한 처지에도 끝까지 저항했는데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17만 명의 대 군세로 양자강의 주요 도시였던 남경을 공격하기도 했다.

정성공이 계속 저항하자 청은 연금하고 있던 정지룡을 죽여 버렸다.
그러나 아들 정 성공은 오불관언(吾不關焉, 나는 상관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저항을 계속했다.

그 후 세력의 근거지 마련을 위해 당시40년간 타이완을 점령하고 있던
네델란드 세력과 격렬한 투쟁을 벌인 끝에 네델란드 군을 쫓아내고 타이완을 점령했다. 네덜란드는 지금의 타이난인 곳에 구축한 네델란드 식 제란디아 성에서 9개월간 저항했지만 정성공의 줄기찬 공격으로 굴복하고 자바섬으로 물러났다 .

 

 

 제란디아-현재의 타이난 시. 정성공은 9개월간 공격해서 네델란드 군을 내쫓고 이를 점령했다.


네델란드를 타이완에서 내쫓은 정성공은 중국 대륙 복건성에서 땅없는 농민들을
대거 불러들여 타이완을 크게 개발했다.

오늘날 중일(中日) 혼혈아인 정성공은 대만의 개조(改組)인 동시에
서양 세력을 격파한 위대한 인물로 대만에서 존경받고 있다.


그러면 스랑은 어떤 일을 했던가?
 정성공이 젊은 나이인 39세에 죽고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손자 등으로 세력이 이어졌지만 내분과 청의 교묘한 조종으로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만주족인 청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뜻)의 전략으로서 항해에 능숙했던
스랑으로 하여금 정씨 일족을 멸망시키고 타이완을 중국 본토에 편입시켰다. 그러니까 스랑은 대만을 중국 대륙의 영토로 편입시킨 공적을 세운 것이다.

그 후에도 복건성 중국 농민의 타이완 이주는 계속되어 오늘날의 타이완이 되었다.


중국이 바랴그에 그런 배경을 가진 인물인
스랑의 이름을 따서 명명 한 것을 보니 신경이 쓰인다. 일본인의 피가 절반 섞인 정성공 가문을 폐족시키고 또 타이완을 중국에 편입시킨 스랑이라는 인물의 이름이 중국 항모에 붙여진 사실에 일본의 네티즌들이나 타이완 네티즌들도 불쾌감을 표하고 있다.



1974년 중국은 미국이 남부 월남에서 완전히 손을 뗀 시기에 남부 월남의 영토였던 서사군도에 함대를 보내서 큰 섬들을 점령하고 비행장 활주로 까지 만들었다. 월남은 더 작은 섬들 몇개만 겨우 지킬 수가 있었는데 중국의 이 마구잡이식 점령은 나중에 월남과 영토 분쟁의 불씨를 만들었다.


                                           서사군도 


 

한국은 제주도 서남방에 있는 해중 암초에 이어도 종합 해양 관측소를 세우고 여러 해양 관측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설의 섬 이어도로 알려져 있지만 소코트라 해중 암초로서 해도에 기록되어 있고 오랫동안 우리 어선들이 당연한 한국 영해로 알고 인근 해역에서 조업을 해왔다.

[이어도는 1900년 영국 상선인 소코트라(socotra)호가 처음 발견했다. 선박의 이름을 따서 국제적으로는‘소코트라 암초’라고 불렸다.]

그런데 중국은 오래전부터 이 암초가 자국 영해인 중국 대륙붕에 세워진 것이라며 불만을 표시했었고 정찰기까지 동원해서 상공을 비행하기도 했었다.

국방력 증강을 과시하며 여러 방면에서 외교적으로 도발적인 언사를
해대는 중국이 행여 이 스랑 함을
몰고 와서 여기에 영토 분쟁의
트집을 잡을 것인지 서사군도의 사례를 생각해보면서 신경이 쓰인다.

Trackbacks 0 / Comments 0

댓글 남기기

블로그 인기 키워드

Tistory Cumulus Flash tag cloud by requires Flash Player 9 or better.

링크

re_footerlink.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