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의 어뢰정을 격침한 일본 구축함장의 수기 -제 2 편-











케네디 어뢰정 격침한 일 구축함장  수기 -제 2 편-  



1943년 8월 1일 내가 지휘하는 제 4 구축대는 아마기리[천무]함이 선두에 선 단종진(單縱陣, 세로 방향으로 외줄로 친 진)으로 라바울 항을 출항했다. 하나부사 소좌가 지휘하는 선두함 아마기리는 함대의 선두에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며 정찰 임무를 맡았었다.



                                                                  경항모 류조 11,000톤


중요한 임무가 주어진 만큼 아마기리는 보급 화물을 적재하지 않았고, 다른 구축대 함들, 하기카제, 아라시, 시구레 등이 최전방에 충원할 병력 900명과 보급품 120톤을 만재하였다.

그간 내가 작전하지 못했던 사이 중부의 솔로몬 제도 해전에서 역전[歷戰]의 여러 일본 해군 구축함들이 격침되었었다.

가게로,구로시오, 오야시오 등은 다나카 제독이 지휘하던
사보 섬 해전에서 큰 전공을 세운 명구축함들이었으나 1943년 5월 8일 기뢰와 공습으로 해저로 사라졌다.


 

 B-17의 폭격을 기막힌 조함으로 회피하는 하라 함장의 아마츠카제.-침몰하는 항모 류조 승무원 구출 작업 중에 내습을 받고 도피하는 모습이다.  류조 함수의 다른 구축함 도키츠카제는 아직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  1942년 8월 24일 동 솔로몬 해전에서의 일이다.


나의 자바 해전 동료 함들이었던 나가쓰키와 니이쓰키 역시 7월에 같은 해역에서 격침되었다. 1942년 10월 사보해전의 주역이었던 하쓰스키는 부겐빌 근해에서 폭침하였다.

나는 어두워지는 바다를 내다보며 내가 출동하는 해역에서
사라진 아군함들을 떠올리며 불안한 생각에 함교 안을 서성거렸다. 나의 4구축대 네 척 중 과연 몇 척이나 살아서 돌아올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떠올랐다. 

 

                                          PT boat


밤이 깊어지자 해상의 시계가 아주 불량한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려지는 것을 보고 다소 안심이 되며 이 행운이 계속 되기를 희망했다.

함대는 코롬방가라 섬과 남서쪽으로 징검다리 형으로 놓인 세 개의
섬을 연결하는 좁은 브라켓 해협에 들어섰다. 이 위험한 해협은 그 양안에 산호초와 모래톱이 흩어져 있었다.

미리 예정한 목표 지점에 도착하자 우리는 엔진을 끄고
조용히 표류했다. 해안으로부터 열댓 척의 바지선들이 신속하게 접근해왔다. 곧 인원과 보급품을 옮겨 싣는 작업이 빠르게 실행되었고 그들은 단 20분만에 모든 작업을 완료하고 우리 함대에서 멀어져갔다.

마지막 작업이 행해지던 하기카제에서 작업 완료
신호가 점멸하자 나는 “자! 떠나자!” 하며 함수를 돌렸다. 올 때와 같이 아마기리가 선두로 나서며 스피드를 올렸고 나머지 세 척이 뒤를 따랐다.

5분내에 우리는 다시 암초의 위험 등이 가득찬
좁은 해협의 중앙을 빠르게 달렸다.

나는 시구레의 함교와 견시(見視)에게 사주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하였다. 적의 치밀한 해안 감시체계가 이 해협을 그물코처럼 덮고 있었고 적들이 우리의 출현을 이미 알고있을텐데 언제 어느 순간에서건 그늘진 해안에서 공격이 가해질지 몰랐다.

우리가 귀로에 들어선지 10분 만에 우리는 좁은 해협에서
30노트의 속도를 올렸다.

만약에 비상시가 아니고 평시라면 보통의 함선이
모든 조명등을 켜고도 이런 어두운 밤과 좁은 해협을 달리는 속도가 12노트 이상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진땀이 흘렀다. 어느 순간 어느 운 없는 구축함이 암초에 부딪히며 내는 굉음이 함대를 뒤 흔들어 놓을지 몰랐다.

우리는 아란델과 와나와나 앞 바다를 통과했다.
함대는 함 간격 500미터를 유지하며 선두의 아마기리를 속행했다. 만사를 운에 맡긴 맹목의 질주였다. 



아마기리의 다른 모습


구축대 4척이 어둠속을 질주하던 이 순간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 어둠에 적응이 잘 되어 있던 나의 눈에 1,500 미터 앞을 가던 아마기리의 우측에서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작은 물체가 보였다.

“온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어느 순간이라도
대폭음이 들릴듯한 두려움에 몸이 움츠려들었다. 접근하던 물체는 어둠속으로 흡수 된 듯이 사라졌는데 아무런 폭발이나 폭음도 없었다.정말 미스테리였다.

찰라후, 아마기리 함상이 분주해지는 기척이 보이더니
신호등이 점멸 신호를 보내왔다.

“ 적 어뢰정 출현! 충돌 격침!”

아마기리의 후방에서 항해하던 하기카제와 아라시의 기관포들이
예고없이 불을 뿜었다. 나는 예광탄의 불줄기들이 우측 해상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불줄기는 두 척의 불붙은 어뢰정들에 집중되고 있었다.
나는 시구레의 포원들에게 즉시 사격 명령을 내렸다. 긴장속에 완전한 사격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은 즉시 반응했다.

불붙은 두 척의 어뢰정은 마치 도깨비 불처럼 해면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격침이었다.

계속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는 4 구축대 각함에서
기쁨의 환성이 일시에 터져 나왔고 나 또한 수병들의 기쁨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아마기리 함장 하나미 고헤이 [花見 弘平]중좌


우리가 당했을지도 모르는 죽음의 가능성이 간발의 차이로 비꼈다고 상상해보니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만약에 이 어뢰정들이 우리보다 몇 분 만 먼저 우리 함대를 발견했었다면 그 좁은 곳에서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작년 1942년 12월 미 어뢰정에게 당했었던 구축함
데루쯔키의 비극이 우리에게도 닥쳐 왔을지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3,470톤의 신예 구축함은 단 50톤도 안 되는 두 척의 미 어뢰정이 발사한 어뢰들에 의해서 격침되었었다.

벨라 만 외해에 와서야 우리는 비로소 속도를 늦추고 항해를 계속해서 라바울로 귀항했다.

함대 수병들은 간밤에 거둔 승리로 여전히 즐겁게 들뜬 상태였다.
나는 함대 사령부에 보고 차 들렀다가 비극적 소식을 듣고 놀랐다.

30 구축대 소속 미카즈키와 27 구축대의 아리아케가 뉴 브리테인의 투루부에 보급 작전차 출동한 7월 27일, 야간 항해 중에 케이프 그로스터 앞 얕은 바다에 좌초되었지만 이를 벗어나지못하고 다음날 미 육군 항공대의 B-25 편대에게 공습 당해 격침당했다는 것이었다.

 

 

                                                                          B-25 경폭격기


그 전날 밤 나의 함대가 전속으로 도처에 암초와 모래톱이 깔린 좁은 해협을 빠져 나오며 억누르던 공포가 결코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우울한 기분으로 시구레로 돌아와서 밤이 늦도록
너덧 병의 정종을 비웠다. 전쟁의 소모가 너무 극심했었다. 나의 함대도 언젠가는 저런 꼴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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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109 케네디 측은 어떻게 사고가 발생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02:30 왼쪽 3OO 미터 지점에서 갑자기 검은 물체가 나타났다. PT-109는 그 것을 다른 동료 PT함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 히비키 급의 구축함이며
미 PT-109정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게되었다.

어뢰정은 좌현으로 30도로 방향을 틀며 어뢰를 발사하려고
했지만 아마기리의 선수가 어뢰정을 들이 받아 선체가 대파 되었고, 10분 뒤에 어뢰정은 두 쪽이 나며 휘발유에서 분출된 화재가 두동강이난 PT를 불붙게 만들었다.

3명의 승무원들이 실종되었지만 인근 무인도로 헤엄쳐간 케네디와
승조원들은 나중에 구출되었다.


 

                                                         PT-109 승무원 - 맨 우측이 케네디 중위.


위 글에서 보다시피 1,500미터 후방에 있던 일 구축함 시구레에서 PT-109를 목격할 수 있었던 시계에서 PT-109가 훨씬 더 큰 일 구축함 아마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처럼 근접했다가 충돌한 것을 보면 분명 PT-109의  경계 태세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충돌 당시 케네디가 지휘하던 어뢰정의 조타병이 졸고 있었고, 케네디는 자고있었다는 주장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전후 케네디는 47년 하원의원에 출마해 성공적으로 정계에 데뷔하였고
민주당 대표로 대통령까지 출마했었다.

한 에피소드가 있다.
PT-109를 박치기 한 아마기리 함장 하나미는 선거 때 그의 행운을 빈다는 편지를 보내 케네디의 캠페인을 크게 도왔고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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