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해의 노스 케이프 해전 -1-

 

 

 

 

 

 

 

북극해의 노스 케이프 해전    

 

- 제 1 -

 

 

 

노스 케이프 해전은 2차 세계 대전 중인 1943122일 노르웨이 북쪽 북극해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독일 순양 전함 샤른호르스트가 연합국 측에서 소련으로 보내는 전쟁 지원 물자를 실은 수송 선단을

공격했다가 오히려 훨씬 큰 전함인 듀크 어브 요크 함[요크 공작]을 포함한 막강한 영국 함대의 작전에

말려들어 격침 된 해전이다.

 

대낮처럼 밝은 조명탄 아래 분전하는 샤른호르스트의 마지막 장면 영국 듀크 어브 요크함과 구축함들이 공격하고 있다.

 

독일 순양 전함에 이름을 남겨준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 [Gerhard Johann David von Scharnhorst

1755-1813]는 나폴레옹 시기 독일의 전신 프로이센의 군제(軍制)를 일신하여 강한 독일군의 기틀을 만든

군사 개혁자로서 독일 군인들에게 많은 추앙을 받는 사람이다.

 

독일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 1936년 진수. 32,100톤, 11인치 포 9문, 최대 속도 31노트

 

이 해전은 2차 세계 대전중 영국과 독일의 주력함 사이에 벌어진 마지막 해전이었고 전쟁 기간 영국 함대가

독일 함대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누려왔던 해상 군사력의 우월적 지위를 다시 한 번 확인한 해전이기도 하였다.

 

영국 전함 듀크 어브 요크. 42,076톤 14인치 주포 10문, 5.25인치 부포 16문. 최대 속도 28노트.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선공을 받아 고전했던 소련은 많은 전략물자를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지원 받았었다.

소련으로 보내진 전략물자들은 알라스카에서 항공편으로 시베리아로 보내지기도 했고 페르시아를 통해서

운송되기도 했었다.

 

영국에서 출발한 대 선단이 소련의 코라 반도에 있는 무르만스크 항으로 향하는 스칸디나비아 북쪽 북빙양

루트는 전쟁 물자량이 가장 많아서 북빙양 루트 중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또한 춥디 추운 바렌츠 해를

지나는 북빙양 루트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생사 갈림의 루트이기도 했다.

 

항상 부빙(浮氷)이 떠돌고 거친 눈 폭풍이 불고 높은 파도가 이는 세계 최악의 거친 바다였다. 겨울에는

영하 50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비일 비재했다. 바다에 빠지면 수 분 안에 죽었고 구조의 가능성도 그만큼

낮았다.

 

이 위험한 전략물자 공급의 태반을 담당하는 해상루트는 독일이 악착같이 공격하던 죽음의 항로이기도 했다.

바다에는 항상 유보트가 횡행하고 노르웨이에 기지를 둔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가 쉬지 않고 해상을 순시하며

상선단를 찾아 공격했다. 더불어, 노르웨이의 북쪽 기지에서 발진하는 막강한 화력의 독일 수상 함대도 가공할

존재였다. 북빙양에 배치된 독일 전투함들은 상선대를 호위하는 영국 호위함들보다 평균 연령이 젊고,

현대식이었으며, 무장이 더 잘 되어 있었다.

 

이 곳의 겨울은 폭풍이 부는 바다 위에 하루 종일 낮도 밤도 아닌 어두침침한 백야(白夜)가 계속되어

바다의 모습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하고 적함의 탐지나 유보트 발견을 힘들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영국으로 오는 대서양 항로보다 훨씬 위험한 이 죽음의 바다에서는 상선대에게 더 삼엄한 호위

함대가 붙지만 그렇다고 안전이 보장 된 것은 아니었다.

 

샤른호르스트의 격침 일 년전인 19427월 초, 영국 해군의 작전 착오로 적의 유보트와 항공 공격으로부터

대규모 상선단이 26척이나 격침되었다. 이 상선대의 대량 격침으로 연합국측이 소련으로 보내던 화물인 탱크

430척과 210기의 항공기가 수장되었고 3,350량의 군용차량도 바닷속에 잠겼다. 어지간한 대 전투가

아니고서야 이런 큰 피해를 당할 경우는 별로 없었다19421231일 영미의 화물선으로 구성 된 JW51B

선단은 독일 순양전함 루쪼와 경순양함 히페르에게 공격당했다.

 

 

북극해를 항해하는 함선들이 겪는 극한의 추위

 

 

로버트 셔부룩 대령이 지휘하는 영국 호위함대의 필사적인 반격과 무르만스크에서 함대를 마중 나오던

영국 순양함 쉐필드와 저메이카의 응원으로 상선대는 한 척도 격침되지 않고 무사히 무르만스크에 도착하였다.

 

나중에 바렌츠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이 해전에서  보여준 영국 해군들의 분전은 현재도 크게 평가 받고

있다. 적의 내습이라는 위험을 안고 있는 항로를 따라 소련으로 가는 선단은 영국 북방 스코트랜드 북쪽 해안

로크 어우에서 집결하여 함대를 편성한 뒤 아이스랜드 쪽으로 북상하여 호위 함대와 합류하여 북빙양으로

진입한다. 그 뒤 더 북상하여 얀 마엔 섬의 동쪽 해안을 지나서 일로 바렌츠 해를 지나 동쪽으로 항로를 돌린다.

 

여기서 부터는 영국 공군이나 소련 공군의 비행거리 밖이라서 아무런 항공 지원을 받을 수가 없다.

그리고 황량한 베어 섬을 지나서 동쪽으로 향한 황천(荒天) 항해를 재촉한다. 가능한 북쪽에 바짝 붙어서

노르웨이 북쪽 해안에 있는 독일군의 공군기지와 거리를 둔다. 그렇게 계속 며칠간 동쪽으로 항해하여

무르만스크항 정북방에 이르면 바로 남쪽으로 직각으로 항로를 꺾어 코라 반도의 무르만스크로 향한다.

독소 전쟁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무르만스크로 가는 전략 물자의 양도 덩달아 커지고 상선단의 파견도 잦아졌다.

 

 

북극해 항로

 

오스트 프론트 작전은 독일 해군 수뇌부가 북극해를 통해 소련으로 운행하는 연합국 선단을 격멸하기 위해서

기획하고 실행했던 작전이다. 이들이 작전을 기획하던 194312월 하순 북극해에는 두 개의 연합국 선단이

항해 중이었다.

 

영국에서 소련으로 가는 선단에는 JW 55B라는 운항 명칭이 붙어 있고 소련 항구에 화물을 내려놓고 영국으로

귀환하는 빈 선단의 운항 명칭은 RA 55A였다. 19431222 , 루프트바페[독일 공군]의 한 초계기가

북극해 상공을 초계하다가 영국에서 소련으로 향하고 있던 JW-55B 선단을 발견했다. 루프트바페는 계속

초계기를 보내 이 선단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사흘 뒤 인 1225일 독일 순양 전함 샤른호르스트는 독일 나르비급 구축함 Z-29, Z-30, Z-33, Z-34 그리고

Z-38을 거느리고 영국 선단 격멸을 목적으로 잠복해 있던 노르웨이의 알타 피요르드를 출발했다.

 

샤른호르스트는 자매함 그나이제나우와 합동 작전을 많이 했었다. 또 샤른호르스트는 영국 보조 순양함

라왈핀디와 경 항모 그로리우스를 격침한 전력이 있었다.

 

1940년 6월 5일 노르웨이 북쪽 바다에서 격침당한 영 항모 그로리우스. 25,000톤

 

피요르드는 빙하가 녹아 바다로 밀려가면서 만든 좁고 긴 만()이다. 마치 양쪽에 절벽을 가진 강으로 착각할

정도로 좁아서 노르웨이를 점령한 독일 해군들이 은신처로 자주 애용했었다.

 

이 운명의 오스트프론트 작전에 참가한 샤른호르스트의 함장은 프릿츠 힌쩨 대령이었고 공격 함대의 총사령관

에리히 베이 해군 소장이었다. 연합군 JW-55B 선단은 19척의 화물선과 두 척의 구축함, 세 척의 다른 함들의

호송을 받고 있었고 먼 원양에서 원격 호위를 하는 구축함 온스로[Onslow]가 기함인 8 척의 구축함대 호위가

있었다. JW-55B가 가고 있는 해역에는 소련에 짐을 뿌리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RA- 55A 선단도 통과 예정이었다.

 

RA- 55A 선단은 22척의 화물선으로 편성되었으며 역시 두 척의 구축함과 4척의 다른 전투함들의 호위를

받았고 영국에서 가까운 제한된 항로 부분에서는 6척의 본토 함대 구축함 마이른의 선도가 있었다.

 

각기 동서 반대 방향에서 출발한 두 선단은 서로 다가가는 형태였다. 이 차가운 북극해에서 독일 해군만 머리를

써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영국 해군도 같은 시기에 그런 독일 해군을 해치울 작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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