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비들의 국군복장 위장 전술에 당한 경찰간부 -1-

 

 

 

 

 

 

 

 

 

 

 공비들의 국군복장 위장 전술에 당한 경찰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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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9대 원칙에 경계의 원칙이 있다. 군이 6.25때 당했듯이 잘 지키지 않으면  자칫 국가 붕괴의 화를 초래할 수 있는 중요한 원칙이다. 접적시 아군 지역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대상중의 하나가 아군의 군복을 입은 적의 침투다.

 

1944년 발지 전투 때 미군 복장을 한 독일군의 모략부대에게 미군이 크게 애를  먹은 것은 아마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적군으로 변장하고 적진에 침투하는 것은 아군, 적군 모두 함께 했었다. 1950년 8월 17일 낙동강 남쪽 고지에서 국군 복장을 하고 낙동강을 건너 침투하던 북한군에게 속아 미군 소대 31명이 모두 포로가 되었다가 사살된 참사(생존자는 4명)는 북한군 위장 침투의 성공적인 사례일 것이다.

 

왜관 낙동강 근처에서 북한군이 잔인하게 사살한 미군 포로를 위해 군목이 기도하고 있다.

 

반대로 국군의 대부대가 전원 북한군으로 위장하고 적진에 침투해서 성과를 거둔 일도 있었다. 1951년 2월 후에 월남전 사령관이 되었던 채명신 중령이 지휘하는 600여명의 백골 병단은 전원 부산의 피복 공장에서 만든 북한군의 누비옷을 입고 공산군 무기로 무장하고 적진에 침투하여 두 달 간 적진을 휘젓고 나왔다,

 

이 침투 작전에서 백골 병단의 북한 군복 위장에 속은 북한군 다수가 섬멸당했다. 후방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신병 90여명을 인솔하고 가는 북한군 장교들을 북한 군복의 백골 병단 부대가 검문하는 척하면서 이들을 모두 잡아 포로로 만들었다. 안타깝지만 유격 작전의 특성상 이들은 포로로 끌고 다닐 수 없어서 전원 사살했다.

 

적진 투입 2개월만에 살아돌아온 백골병단의 용사들-투입병력 600명중에 절반이나 전사했지만 대단한 성과를 올리고 귀환했다.

 

 

아래는 이용하씨가 쓴 ‘섬진강 별곡’에서 발췌한 글이다. 한국전 정전협정이 발효된 1945년 7월 27일 이후에도 남쪽 지리산 일대 공비들의 활동은 왕성했으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도 아직 생존해서 도주중에 있었다.

 

그 해 1951년 8월 12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지구에 위치하고 있는 서남 지구 전투 경찰대 제2연대 본부에 보고 된 바에 의하면 제1대대장 김동진 경감이 공비들의 습격을 받고 끌려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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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지구 전투 경찰대 사령부(약칭 서전사)는 준동하는 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전투 기동대와 지역 지서들을 통합 지휘하기 위해서 창설한 군대 체제의 전투 조직이다. 사령부 밑에 연대가 있었고 연대 아래에 대대와 중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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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장 차일혁 총경은 즉시 연대 본부 직할 수색대장 김 용식 경사에게 그 진상을 조사 보고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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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장 차 일혁 총경은 얼마 전 TV에도 기획물이 소개된 일이 있었던, 전투 경찰사의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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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경사의 수색대는 차일혁 총경이 임실 경찰서장으로 재직시에 조직한 수색대원 31명을 그대로 데리고 온 부대로서 이들은 지리산 지구 전투 사령부 직속 부대였었다. 이외에 서전사 직속 보아라 부대가 있었다. 보아라 부대란 지리산 지구 경찰 경찰전투 사령관이었던 신상묵 경무관이 창안한 역빨치산 부대로서 지리산 지구 전투 사령부가 서남지구 전투 사령부로 개편되면서 사찰 유격대로 개편한 것이다. (신상묵 경무관은 신기남의원의 아버지며 박정희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기생이다.)

 

이미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공비들은 목숨만 살려준다면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군경부대는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고, 곧 무장을 하고 연고지인 각급 경찰서 지서등에 배치되어 공비 토벌작전에 투입되었다. 실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격으로 같은 전투 대원으로서 적을 소탕하는데에 앞장섰다.

 

전투 경찰대 장비 - 수복후에는 무기가 없어서 지방 유지들에게서 성금을 거두어 미군들로 부터 M1총은 쌀 세가마니, 기관총은 쌀 열가마니, 로켓포는 30가마니를 주고 구입했었다.

 

이들은 3,40명 규모의 공비 전력자로서 산 생활에서 몸에 밴 은밀성, 인내성, 기동성을 발휘해 활동했으며, 작전시 공비들이 입었던 남루한 복색으로 위장하였고, 야생 동물과 같은 공비들의 후각을 피하기 위해 비누 치약등을 쓰지 않고 혹한의 산중에서 며칠씩 계속 잠복했다.

 

공비에서 전향했기에 누구보다도 공비들의 성질이나 활동의 특성을 잘 알고 있어 이들이 공비 토벌에서 올린 성과는 대단하였다. 그랬기에 상황에 따라 공비로 변장하여 적의 아지트에 깊숙이 파고 들어가 작전 계획을 수집 보고하기도 하였으며, 내부 공비들에게는 회유책을 써 자수를 권하거나 일부는 유인하여 사살하는 등 공비들과 함께 행동하면서 군경의 활동을 도왔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린다.

 

제2연대 수색대장 김용식 경사의 보고에 의하면 제1대대장 김동진 경감은 공비들과의 교전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작전 명령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진출 예정선을 벗어났다가 공비들의 속임수에 걸려 납치되어 생사를 가늠할 수가 없어 전사한 것으로 추측된다는 것이었다.

 

사건 발생 전 상황은 이러했다. 용강에 제1 대대를 주둔시키고 쌍계사에 주둔하고 있는 제618 부대가 용강에 진출할 때까지 예정선을 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는데 바로  제1 대대장 김동진 경감은 이를 어기고 무리하게 삼강 가까이 진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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