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공군의 총력기습 - 전투기 200기 대출격 (최종)

 

 

 

 

 

 

 

 

 

 

 

 

 이스라엘 공군의 총력기습 - 전투기 200기 대출격 (최종) 

 

 

 

 

훈련 비행을 위해서 활주로를 달리던 자키 준장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그는 후세인의 전투기가 이스라엘 미라주 전투기에 의해서 기총소사를 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훈련기 조종사들과 훈련생들은 모두 탈출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운이 없었다. 모두 다 활주로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말했다. “이스라엘은 이 기습을 몇 년간이나 맹렬히 준비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행사를 위한 행진 연습만 했왔을 따름이다. 연례적인 혁명절 행사 준비는 몇 주씩이나 걸리기도 했었다. 그런 것에는 귀한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면서도 정작 전쟁에 대한 준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편 이륙하여 비행 하다가 적 공격기들을 만난 아메르 원수는 후시트키 마무드가 묘사한바와 같이 이스라엘 전투기들의 숲에 봉착해 비행 기지에 착륙할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 공습후에 완전 파괴된 이집트 공군기들

 

그는 거의 90분이나 카이로 주변의 불타는 공군기지 상공을 배회했다. 그러다 가까스로 카이로 국제공항에 착륙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아메르의 전속 공군 연락장교 무하마드 아유브 대령이 권총을 빼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한 그는 아메르를 제거하기 위한 군사 쿠데타가 벌어진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는 아메르와 함께 내린 다른 장교들이 놀라서 권총을 빼들고 있는 것을 보고 외쳤다. “이 개새끼들아! 니들 원수 각하를 죽이려고 하고 있지?" 시드키 마무드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외쳤다. “바보같은 자식들 총 치워! 이스라엘이 습격해왔어!”

 

나세르와 이집트 조종사들

 

아메르가 비상착륙한 카이로 국제공항에는 그를 태워갈 군용차량이 없었다.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최고 사령부로 달려갔다. 그의 휘하에 있던 수많은 미그기 중 단 37기만이 온전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르는 애써 태연한척 하였다.

 

나세르와 아메르 두 사람은 1952년 파루크 왕조를 쓰러트린 쿠데타 동지들이었다.

 

그는 시드키 마무드에게 이집트 군대가 이스라엘의 해안선에 상륙 작전을 할 예정이니 공중 지원을 준비하라고 명령하였다. 이 작전은 레오파드 작전이라 불리며 이집트가 오랫동안 입안해온 반격작전이었다. (공군이 궤멸한 상황이었는데 실로 잠꼬대같은 소리였다.) 그는 이 작전에 소련으로부터 도입한 최신형 수호이 공격기를 출동시킬 것이며, 소련 군사고문단의 도움을 받겠다고 말하였다.

 

소련제 수호기 7 공격기

 

그리고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와 이라크를 불러 오랫동안 공동 입안했었던 이스라엘 협동 공격 작전인 라시드 작전-이스라엘 공군기지 폭격-을 즉각 실천에 옮기기를 간청하였다. 이라크는 즉각 응답하긴 했지만 기술적인 이유로 시간을 끌었다. 시리아 역시 폭격임무를 부여받은 편대들이 훈련중이라며 시간을 끌 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는 않았다.

 

동맹국의 비협조적인 행동에 실망감을 느낄 법 하지만, 이미 더 이상 나빠질래야 나빠질 것 없는 총사령부의 분위기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소련 무관 S.타라센코는 이집트 사령부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집트 장교들은 라디오를 듣거나 커피를 마시며 무표정한 얼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재앙이 닥쳐왔는데도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또 할 수 조차 없었다. 그저 그들이 할 수 있는건 의자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것 뿐이었다. 그런 사령부의 상황과 달리 거리는 쏟아져 나온 시민들로 물결치고 있었다. 습격으로 인해 이집트가 박살난 참패의 결과를 알 길이 없었던 이들은 타도 이스라엘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였다. 대공포가 간간히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시민들은 “이스라엘을 타도하자! 승리를 쟁취하자!” 며 거리를 휩쓸었다.

 

외국과의 국제 전화는 모두 차단되었다. 이집트 국민들이 전황에 대해서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집트 사령부에서 발표하는 거짓 투성이의 보도 뿐 이었다. “금일 오전 9시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아랍 형제국들에게 공습 침략을 개시하였다. 우리 공군은 즉각 출격하여 이들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

 

겨우 기습의 쇼크에서 헤어나온 이집트가 남은 전투기들을 동원해 공격하는 이스라엘 군들을 향해 반격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집트 공군은 한 기의 미군 폭격기를 포함해서 무려 86기의 이스라엘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발표하였다. 반면 이집트의 손실은 단 두 기에 그쳤다.  (이집트는 영미 공군이 이 공격에 합세했다고 조작 발표를 했다.)

 

슈페르 미스테르 기 - 미국의 F 100이나 소련의 미그 19와 비슷한 초음속기다.

 

이집트 방송은 계속 애국적인 군가나 행진곡을 방송하며 전과를 발표하였다. 이 기회에 팔레스타인을 찾고 텔 아비브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자고 하였다. 아메르는 암만에 있는 요르단 공군 사령관 리아드 장군에게 비록 이스라엘이 기습이 어느 정도 전과를 거두었지만 공군기의 75퍼센트를 잃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시나이에서 드디어 반격작전을 개시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는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집트를 치고 있을 때 최고 사령부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황이 그렇게 참담하게 돌아가는 줄을 몰랐다. 그는 이스라엘이 먼저 전쟁을 시작했다는 말을 반기며, 곧 이집트 군이 반격해 이스라엘 군이 퇴각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도 오전 10시쯤 이스라엘의 제 2 파 공격대가 이집트를 들이 닥쳤으나 이집트가 이스라엘 공군기를 무려 161기를 격추시켰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음에도 뭔가 잘못 돌아가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그는 아메르 원수와 통화하고자 했으나 되지가 않았다. 시드키 마무드도 접촉이 되지 않았다. 그에게 이집트의 비참한 패배의 진상을 알려줄만한 사람중에는 부통령 안와르 사다트만이 있었다. 그는 진상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 내용을 전하지 않았다.

 

부통령 안와르 사다트만은 그날 아침 외부와 접촉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비교적 객관적인 자세로 전황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사다트는 집을 나와 최고 사령부로 직행했다. 그는 이곳에서 주이집트 소련대사 포지디아프와 다른 소련 무관들로부터 이집트가 겪은 대참패의 진상을 제대로 들을 수가 있었다.

 

사다트는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가짜 정보가 전해준 승리감에 도취되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카이로 시민들의 행렬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집트 재앙의 그날 이집트 정부에서 오직 나세르만이 하루 종일 세상과 단절된 캄캄한 어둠 속에 남아 있었다. 

 

감히 어느 누구도 이집트가 당한 치욕적인 대패배를 정직하게 그에게 알려줄 수가 없었다. 다음날에도 카이로 방송은 계속적으로 “현재 이 시각에도 이집트의 전폭기와 미사일들이 이스라엘 전역을 목표로 두드리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1948년 이스라엘 독립으로 실추 된 위신과 품위를 찾았다." 는 거짓 선동 방송을 내보냈다.

 

이집트의 나세르가 티란 해협 봉쇄로 야기된 긴장이 전쟁으로 발전한 1967년 전쟁은 아랍권이 대패를 당해 시나이 반도를 잃고 시리아는 골란 고원을 잃었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가고 있던 이스라엘 공군의 기습성공은 긴 시간 동안의 치밀한 준비와 반복된 훈련 덕분이었다.

  

이집트의 아메르 원수는 자살을 했으며 나세르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사임하였다. 나중에 국민들의 ‘간청’으로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하였지만 몇 년 못살고 죽었다. 1967년에 당한 이 철저한 패배가 이스라엘군에게 기습을

허용하였기 때문에 당했다고 판단한 이집트와 시리아는 1973년 선제 공격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10월 전쟁(욤 키푸르 와)을 발발시켰지만 기습 충격에서 회복한 이스라엘의 맹렬한 반격으로 또 다시 좌절의 패배를 맛보아야만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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