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4 폭풍지뢰가 잡은 간첩들

 

 

 

 

 

 

    

M-14 폭풍지뢰는 5cm X 4cm의 작은 크기에 100g 밖에 되지 않는다. 적군 살해 목적보다도 상해 목적이 커, 밟으면 발의 일부분만 날아간다. 일부 이론가들은 적을 전사 시키는 것보다도 부상시키는 것이 적에게 더 부담을 준다는 냉정한 개발 논리가 적용된 대표적인 무기라고 한다.

 

M-14 폭풍지뢰의 대부분이 프라스틱으로 이뤄져서 자기감응을 응용해 탐지하는 지뢰탐지기로는 감지하기가 힘들다.

 

M-14 폭풍지뢰는1955년부터 미군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군 시절을 전방에서 보낸 나로서도 폭풍 지뢰에 대한 기억은 별로 좋지 않다. 피해를 입은 장병들이 많아서 우리끼리 “저 놈은 간첩이 아니라 우리 잡으려고 생긴 것 아니냐” 고 투덜대기도 했었다.

   

내가 들었던 가장 비극적인 사고는 전방 보병사단에서 발생했다. 순찰에 나선 한개 분대의 선두가 폭풍 지뢰를 잘못 밟았다. 그는 발 뒤꿈치가 날아가 평생 불구가 되었고 뒤에서 따라가던 분대원은 폭풍지뢰의 간접피해였는데도 불구하고 후폭풍에 의해 날아든 모래에 양쪽 눈 각막들이 손상되어 시력 장애자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사고만 일으킬 것 같은 이 골치덩어리의 지뢰가 간첩들을 잡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서부 전선 임진강 유역을 미군들이 담당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간첩들은 침투 지역으로서 미군 지역을 국군 지역보다도 더 선호했었다. 미군들이 경계 의식이 국군보다도 느슨했었고 또 일단 야간에 침투하면 여기저기에 산재한 미군 캠프들의 조명이 휘황찬란해 야간 독도법이 아주 쉬웠기 때문이었다.

 

정말인지 과장된 것인지 몰라도 그 지역 어르신들께 들었던 이야기 중에 1950년대에는 미군 경계가 하도 엉망이서 개성의 북한군 간부들이 보낸 간첩이 문산에 와서 장을 봐갔다고 했다. ‘설마'라는 생각이 들지만 김신조 부대가 침투한 곳이 바로 미군 부대 지역이었고, 그 때 미군 경계병이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다가 뚫렸다는 사실을 되돌아보면 ‘혹시?’ 라는 생각이 들기도하다.

 

60년대에 들어오자 간첩들은 미군 지역을 드나들었을 뿐 아니라 미군들을 공격해 죽이거나 납치해 가기도 하였다. 견디다 못한 미군들은 한국에서 최초로 철책선을 설치하고 폭풍지뢰를 대량으로 설치했다. 지금은 낯익은 존재가 되어버린 철책선은 서부전선 미군 사단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지역 어르신들에게 듣기로는 미군들은 간첩들의 기습이 자주 자행되던 도로변에는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폭풍지뢰를 ‘살포’했다고 한다.

 

아래는 이 폭풍지뢰 지대에 남파 간첩 3인조가 잘못 들어갔다가 몽땅 당한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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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7월 6일 경찰은 경기도 장단군 진동면 아곡동에서 북한 노동당 연락국 소속 2인조 간첩들을 검거했다고 발표하였다. 이들이 체포 된 지점을 더 상세하게 말한다면 미 1 기병사단이 지키는 임진강 건너 휴전선 남방 민간인 출입지역이었다. 이들은 침투 중 폭풍지뢰에 발목이 날아가 기절했다가 미군들에게 체포되어 당국에 인계 된 것이었다.

 

3 인조로 침투했던 그들 중 다른 1명도 역시 지뢰에 부상당했지만 북으로 탈출했다. 2인조 중 한 명은 노동당 연락국 소속 대남 공작원 김원태(35), 또 한 명은 민족 보위성 정찰과 소속의 황철수(35)였다.

 

폭풍지뢰는 이렇게 깊이 파지 않아도 되고 낙엽으로 덮어놓아도 설치가 가능하다.

 

공작원 김원태는 1962년 6월 29일 평양역에서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목적지인 개성시를 향해 기차로 출발하였다. 이날 오전 6시경 개성에 도착한 김원태는 즉시 개성시 자남동 소재 대기소로 안내되어 2일간 대기하였다.

   

7월 1일 오후 평양에서 동행한 안내원의 안내로 칠수강에서 도강및 산타기 연습을 한 김원태는 개성시 제명동 소재 민족 보위성 정찰과로 안내되어 다시 대기했다. 이날 21시 30분경 안내조장 상위 김청송(30세), 안내원 중위 황철수와 함께 정찰과 사무실을 출발하였다. (북한 공작원들은 평양에서 단독으로 출발, 개성에 도착하여 대기하다가 안내원 2명을 만나 남파 안내를 받게 되어있었다. 이 경우도 전례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경기도 장단군 운곡 100고지 아곡동을 경유, 계속 남하해 7월4일 21시경 장단군 진동면 하동리 임진강변에 도착했다. 도착 후 즉시 수영으로 임진강을 도하하던 중 아군들이 고무 보트 2척에 분승해서 미행함을 목격하고 파주군 파주면 금파리 강변으로 도피 도강했으나 미행하던 아군들이 포위코자 했으므로 더 이상 남하 할 것을 단념하고 도강 지점 부근에 잠시 잠복했다가 임진강을 되건너 북상했다.

  

그러나 북상하던 중 같은 날 23시 30분경 장단군 진동면 아곡동 196고지 부근 산중턱에서 지뢰 폭발로 김원태의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어 안내원 황철수가 업고 약 10 분간 북상하다가 재차 지뢰가 폭발하였다. 이번에는 김원태를 업고가던 안내원 황철수의 왼쪽 다리가 절단되었으므로 즉시 응급 치료를 하고 조장 김청송에게 물을 좀 떠다 먹여 달라고 부탁했는데 물을 뜨러간 조장 역시 지뢰를 밟아 안면과 양팔에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

  

3명이 같이 헤매다가는 모두 피살, 또는 체포될지 모르니 한 사람이라도 살아서 입북해서 당에 상황을 보고해야했기에 조장은 지체 않고 입북해야 한다고 논의한 끝에 그는 입북하고 그 후부터 공작원 김원태와 안내원 황철수는 부상을 안고 방향없이 헤매다 의식을 잃고 아곡동에서 미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위에서 말한 지뢰는 폭풍지뢰다. 그리고 폭풍지뢰는 이 내용을 담은 경찰 보고서가 만들어진 1962년도에는 한국 경찰에 생소했었기 때문에 그냥 지뢰라고 언급한 듯하다. 간첩 안내원이라면 아군의 지뢰지대는 손금 들여보듯 자세히 알고 있었을텐데 이렇게 당한 것을 보면 손쉽게 설치할 수있는 폭풍지뢰가 대량으로 설치되기 시작했던 시기라서 미처 파악을 못했던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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