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에 폴란드 군 출신이 있었다.

 

 

 

 

 

 

 

국군에 폴란드군 출신이 있었다.

1945년도 125일 미군이 주도하여 그 창설을 주도한 국방 경비대는 정부 수립 후 공식으로 국군의 위치를 부여받고 국방의 근간이 되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치안 유지의 목적으로 무장 조직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군사 영어 학교라는 장교 양성소를 만들어 몇 달간 운영하면서 1946년에는 이 임시 조직을 문닫고 육군 사관학교를 설립했다.

 

 

건군 초기 과정에 과거 일본군이나 만주군은 물론 중국군등의 군사 경력자들을 뽑다보니 다채로운 외국군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군에 들어왔다. 그 중에는 아주 특수한 배경이나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 예를 보자면 6.25동란 때 동부 전선에서 잘 싸웠던 8사단장 이성가 장군을 들 수가 있다.

 

그는 중국군 출신이지만 다른 중국군 출신과 달리 일본이 중국 점령지에 왕조명을 수반으로 세운 괴뢰국의 국군 출신이었다. 이 괴뢰국은 불과 수년 지속되다가 사라져 버렸다. 이성가 장군은 이 단명한 괴뢰 국가에서 소좌까지 진급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6.25 전쟁에서 전투 지휘를 잘해 군단장까지 진급하고 육군 소장으로 퇴역하였다.

   

또 다른 인물을 말하자면 전두환 대통령의 장인인 이규동 장군을 들 수가 있다. 그는 만주군에서 경리 관계 군속이었는데 해방후 귀국, 서른 여덟 살에 육사에 들어가서 임관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나이가 들어 임관했지만 경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나중에 장군까지 되었다.

 

 

강화린 씨라는 분은 청산리 전투에 참전해서 일선 지휘관을 했는데 군에 들어와서 대령으로 퇴역했다. 그 분 생전에 청산리 전투에 관한 일화를 충분히 채집했더라면 아주 좋은 자료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 또 한분 전성호라는 분도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이 분은 만주 간도 지방에서 반공 투쟁을 하던 분이었었다. 그래서 현재의 연변 지방에서 출판되는 동포들의 역사서에는 그가 아주 안 좋은 친일파로 그려져 있었다. 그는 6.25발발 첫날 개성을 방어하던 1사단 12연대장이었는데 북한군 침공과 함께 머리에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중국의 동포 역사에 밝은 연변 대학교의 한 교수분과 이야기 하다가 이 분이 국군에서 근무했다고 하자 아니! 그 사람이 한국으로 갔나?" 하고 놀라는 것이었다. 그 곳 역사학계에서는 연변 지방이 공산화되자 그의 행적이 불명하여 그가 죽었다고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이색 경력자는 원용덕 장군을 들 수가 있다. 이 분은 국군 여단장도 하고 헌병 사령관도 했지만 원래는 만주군 군의관이었다. 세브란스 의전을 나왔고 만주에 가서 군의관이 되었다. 만주군의 조선인중에 가장 계급이 높은 중교(중령)까지 진급했던 분이었다. 왜 의무계통에서 일하거나 개업해서 돈을 벌지 않았는가 궁금하지만 그 분은 전투 부대 지휘관을 고집해 중장까지 진급하였다.

 

그리고 기타 법무관이나 헌병 업무를 위해서 변호사나 경찰 출신들이 군에 합류하기도 했었다. 특수 경력자로서 하와이 교민으로 태어나 일본군 소위가 되었다가 국군에 들어왔던 김동영씨도 있다그는 일본군 경력으로 군사 영어 학교에 들어와 중령까지 진급하여 육본 군수 국장을 하다가 6.25 전쟁 전에 퇴역했다.

 

어떻게 하와이 교민이 일본군이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교포들이 미일(美日)간에 긴장이 높아지자 일본으로 돌아와서 군인이 된 사람들이 있었던만큼 그런 경우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이들 젊은이들은 백인들의 차별에 평소 분개하는 마음이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김동영 씨는 나중에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한국전쟁중에 미군 사병으로 징집되어 한국 전선으로 보내졌다그의 군사 영어학교 동기생이 보니 그가 참전 미군 장교의 찦차 운전병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들 중 최고로 특수한 배경을 가진 장교가 한 분 있었다. 지금 국제화 시대의 감각으로 보아도 그 경력이 아주 이채롭다. 이분은 육사 특3기 출신인 김상겸(金 相謙)씨다. 폴란드 군의 대령이었고 한국에 데리고 들어온 부인도 폴랜드 여자였다김상겸 씨를 일본의 한국전사가 사사키 하루다카 교수가 쓴 한국 전사 책에서 발견한 후에 그 분의 신원이 궁금했었는데 얼마 전에 이치업 장군의 자서전에서 그 분의 약력이 짧게 소개되어 있었다.

 

김상겸씨는 1898년 원산 출신이니까 그가 국군에 발을 들여놨을 때인 1947년에 그의 나이는 이미 50대에 접어들고 있었다그는 제정 러시아때 하르곰 육군 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913육군 사관 소위로 임관하였다. 소위에 임관하였다는 나이가 한국 나이로 16살이니 그때의 러시아 육군 사관학교는 꽤나 어린 나이에도 생도들을 졸업시켰나 보다. 1923년 제정 러시아 군의 무장해제와 해체에 따라 중령으로 제대했다. .

  

 

그리고 그가 26세에 제정 러시아의 중령이 되었다는 것은 소위로 임관하고 10년도 되지 않았을 때의 상황이니 조금 의심이 간다소위 임관에서 중령까지 10년도 안되었다는 것은 백인국가의 군대에서 동양인으로서 파격적인 승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군대가 해산하자 그는 1924년 폴란드로 가서 군의 대령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폴란드 군에 대령으로서 근무하다가 1929년에 제대했다. 폴랜드 군을 떠난 그가 어느 곳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김상겸씨는 아마도 당시 인사권을 좌지우지 하던 미군에 접촉해서 국군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하여튼 위의 미심쩍은 경력을 그대로 인정받고 국군에서 초대 경비대 총참모장에 취임했다그러나 젊은 장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경비대에서 이런 생소한 군대에서 쌓은 의심스런 경력 소유자가 나이까지 많으니 곱게 보였을 리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순 사건 때 지휘관으로 출동했다가 무능함이 발견되어 해임되고 제주도 토벌군 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그 뒤의 김상겸씨에 대한 정보는 아직도 찾지를 못했다. 그가 그냥 한국에 살았는지 다시 외국으로 나갔는지는 미지수다. 그는 하지만 어수선한 창군의 초기, 잡동사니같은 인간들도 슬쩍 끼어들기도 했던 그 시절이었지만 하여튼 그런 경력을 가졌다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은 흥미론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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