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 가족 탑승 월남 0-1기의 항모 착륙

 

 

 

 

 

 

1975년 항모 미드웨이에 착륙하는 7인 가족의 O-1기

 

한국 국민과 친밀한 군용 항공기가 있다. 많은 올드 팬들에게는 L-19로 기억되고있고, 후에는 0-1기로 개명한 2인승 단발 항공기다. 원래는 L-19(L-Liaison)라는 제식 명칭이 있었으나, 1964년 O-1(O-Observation)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전쟁 기념관의 O-1기

 

1950년에 미군에서 취역하여 1974년까지 육군, 공군, 해병대의 연락, 정찰, 관측, 포사격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명군용기다. 미국 외에도 20개국에서 이 작은 경비행기를 사용했다. O-1은 경항공기의 명문 세스나항공기사의 4인승 세스나 170을 군용기로 개조한 것이다.

  

세스나 170 - 5000기 이상 생산되었으며 명군용기 O-1기와 민간용 히트기 세스나 172의 모체가 되었다.

 

횡열로 배치된 좌석을 전후로 바꾸고 후방과 상공의 시야를 넓게해 군용으로 적합하도록 만들었다. 총 3,431기가 제작되었다.

 

1951년 1월 강추위속의 미 해병 L-19

 

한국 전쟁 때부터 전투에 투입되어 우리나라 국군도 사용하였는데, 한국 전쟁 때의 피해는 알 수 없으나 월남전 때는 미군 O-1기 중 총 464기가 손실되었다. 이 중에 3기가 월맹 상공을 날다가 월맹이 발사한 SAM-3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이를 소개한 미군 잡지를 보니 SAM 미사일의 값이 O-1기보다 몇 배 더 비싸다는 글에 월맹군 미사일 포대의 발사 의도를 한참 생각해보던 기억이 새롭다.   

 

O-1기는 많은 진기록을 세웠으나 월남 패망 때 2인승의 작은 기체에 일가족 7 명이 탑승하고 무작정 바다로 나왔다가 미 항모를 만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월남 공군의 한 조종사 이야기가 가장 특색있을 듯 해 여기에 소개한다.

   

1974년 4월 29일 남부 월남의 수도 사이곤시(현재의 호치민 시)가 함락 하루 전 월남 남부 콘손 섬에서 월남 공군 조종사 부앙 리 소령이 조종하는 O-1 기가 이륙했다. 연료는 가득 채웠지만 도착 목표는 어느 곳인지 정확히 모르는, 막연하고 위험한 출발이었다. 목표는 풍문 수준의 정보로, 월남 근해의 미 해군 항공모함이었다.

   

전쟁 기념관의 O-1기 뒷 좌석 - 창문이 더럽고 그림자까지 비쳐 화질이 안 좋지만 뒷 좌석의 크기를 짐작할 수는 있다.

 

이 막연한 탈출 비행에 그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섯 명의 자녀 등 총 7명이 동행하고 있었다. 소령 계급으로 보아 그는 아직 젊고 아이들도 어리고 작다고 생각되지만 앞 뒤 2인석인 O-1기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인원이 탑승했는지는 정말 불가사의하다. 

 

하여튼 해상으로 나오다가 월맹군의 대공사격까지 받은 이 0-1기는 해상에서 여러 시간을 헤매다가 미 항모 미드웨이함을 만났다. 부앙 소령은 항모 주위를 계속 맴돌았다.

 

항모 미드웨이 -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미 이 항모에는 월남에서 탈출한 월남군 후에이(UH-1) 헬기 여러대가 갑판에 주기[駐機]되어 있었다. 부앙 소령은 갑판 위를 두어 번 저공으로 스쳐가며 아이들이 가득 탄 기체 안을 항모의 함교 지휘관들이 보이게한 후 긴급 전통문을 투하했다.  

 

연료도 얼마 안 남았고 아이들도 많이 있으니 긴급 착륙하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항모 상공을 맴도는 O-1기에 많은 아이들이 탑승한 사실을 보고 놀랐던 함장 로렌스 챔버스 대령은 갑판에 여러 대 도착했던 후에이 헬리콥터 여러 대를 바다로 밀어 버리고 갑판위에 그가 착륙할 공간을 만들었다.

   

(미 함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었던 월남 공군기들도 있었던듯 하다. 미해군 함대로 도망친 월남 헬리콥터 한 대에 공군 참모총장이며 수상으로 정권 실세였던 구엔 카오 키 소장도 타고 있었다.[블루릿지 함에 착륙] 그는 며칠 전까지 월맹군의 맹공에 국외 탈출하는 사람이 많자 “도망하는 자들은 비겁자들이다” 고 호언하던 사람이라 빈축을 샀었다.)

 

구엔 카오 키 - 말년에 베트남에 돌아와 살다가 2011년에 사망했다.

 

O-1기가 비록 경비행기지만 항모에 착륙하도록 설계 된 것도 아니고 부앙 소령조차 항모에 착륙하는 훈련을 받은 일이 한번도 없었지만 기체는 기적적으로 안전하게 착륙했다. 덕분에 아이들 다섯 명과 부부는 무사히 미국으로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적의 O-1기도 미국으로 왔다. 현재 플로리다 주에 있는 펜사콜라 해군 기지에 있는 국립 해군 항공 박물관에 전시중이다. 우리나라 국군에도 O-1기에 대한 일화는 많은데, 위와 같이 인명구조 사례는 내가 아직 들은바없다. 우리나라 일화 중 50년대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전할까 한다.

 

한국 한 육군 조종사가 양심을 버린채 0-1기를 몰고 대한 해협을 건너다가 일본 산악지대에 불시착했다. 그는 0-1기의 무전기를 뜯어 마을로 내려와 팔려고 하다가 경찰에 체포 되었다. 당시 살기 힘든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밀항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는 바로 항공 밀항을 시도한 것이었다.

 

한국으로 강제 송환이 확실시 되자 그는 조총련을 통해 월북해버렸다. 그러나 몇 년 뒤 밀봉교육을 받고 남파되었다가 결국은 체포되었다.

 

주월 맹호부대 비행대 O-1기

 

그 작은 기체를 보고 나는 저것이 정말 제주도까지 갈수 있을까 궁금해 군단 집체교육 때 만난 항공 장교에게 그 가능성을 물어보았더니 “갈 수야 있을 것 같지만 위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기를 '이 경비행기는 한반도 내외나 돌아다니겠구나' 했더니 알고 보니 비행 가능 거리가 무려 800킬로가 넘었다.

 

경비행기 치고 항속거리가 무척 길어 현해탄 정도야 가볍게 건널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탄생한지가 60년이 넘는 명기 O-1기는 군에서 물러난 뒤에도 민간에 불하된 300여기가 아직도 미국 민간 항공계에서 스포츠기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Trackbacks 0 / Comments 2

  • David 2015.06.02 05:58

    L-19( O-1) 기 는 현재 미국 에서 민간 사이에( 물론 군 에서 퇴역 한진 오래지요) 9-12 만 불( 약 1-1.3 억원) 사이 에 거래 되고 잇습니다. 전시 모습을 흉내 낼려고(?) 날개 밑에 로켓 포드 도 달고, 뭐 어른 장난감 이죠! 당시 어른 2 명 에, 애들 5 명이 탓다 하는데, 추측 컨데 탑승인원 총 중량이 약 600 파운드 미만 엿쓸거 같습니다. 그러면 미군 애 들 2 명 탑승 한거 보다 그저 한 100 파운드 남짓( or less) 더 나간건데, 이 정도면 이륙이 얼마든 가능 하다 봅니다. Ferry flight( 장거리 도양 비행, 주로 뱅기 배달을 위한, 화와이 에서 호주 간, 등등..) 경우 소형 뱅기 들( L-19 과 유사한) 이 6-700 파운드 오버 해서 연료 싵고 가는게 보통이니, 다만 이륙거리가 좀 길어지죠. 당시 그 월남 조종사는 항모에 착륙시 좀 부담을 느꼇겟죠. 끽 해야 항모 착륙갑판 길이 가 500 피드 남짓 엿쓸 거구 늘 고정된 할주로( 지상 활주로) 에서만 착륙 하다 움직이는 바다위에 물체에 착륙 할려니, 심적 부담감 등, 허나 또한 항모가 바람 을 향해 항진 하니, 착륙 을 위해, 즉 맛 바람이 강하게 오니 착륙거리가 급격히 줄어 드니 아마 착륙 후, 그 월남 조종사, 맘 속으로, " 항모 착륙도 할만 하네" 햇쓸 겁니다. 또한 경뱅기라 해도 왠 만한 기종은 4-500 노티컬 마일( n.m) ( 7-900 킬로) 정도는 나갑니다. 저도 돈 생기면 몰고 싶은게 이 기종이지요, 차 로 치면 앤틱 같은 거죠....

  • rho123ks 2017.01.21 01:12

    1974년 4월 29일이 아니라
    1975년 4월 29일이 맞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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