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꾸눈 군견 니모

 

 

 

 

 

 

 

 

 

미공군 애꾸눈 군견 니모

 

 

월남전에서도 많은 군견이 미군들에게 봉사하였다. 전사한 군견도 있었고 전투에 참가한 군견도 있었다.그런 군견중에서도 1966년 월남 사이공 근교 탄손누트 공항 주둔 미 공군의 군견팀 소속 니모라는 세파드 군견의 대 활약은 여기에 소개할만하다. 그의 주인 격인 군견병은 손버그 공군 일병이었다. 어느 날 손버그와 니모팀은 탄손누트 공항 활주로에서 400미터 정도 떨어진 한 오래된 베트남 공동묘지 근처를 순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순찰을 시작하자마자 니모는 묘소 주변에서 이상한 낌새를 채고 으르릉거리는 신호를 보냈다. 손버그는 긴급히 무선으로 본부에 보고하려고 했을 때 수상한 물체는 기습적인 사격을 해왔다. 손버그는 즉시 니모를 풀어주고 수상한 적에게 대응 사격을 했다. 하지만 적이 사격한 한 발이 니모의 오른쪽 눈을 뚫고 입안 쪽으로 빠져나갔다. 손버그 역시 어깨에 총격을 받고 땅에 쓰러졌다.

 

 


베트남에서 작전중인 군견과 군견병


 

 

 

총격을 받고 동시에 부상을 입은 군견병과 군견은 그자리에서 종말을 맺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믿을 수 없게도 중상을 입은 니모가 그대로 질주하여 총을 가진 베트콩에게 덤벼들었다. 총격을 가했던 베트콩은 무게가 85파운드나 되는 니모의 몸 박치기에 나가 떨어졌다.

 

그 틈을 타서 손버그는 적을 조준 사격으로 처치하고 본부에 상황 발생을 보고하고 즉시 증원군을 파견 해주도록 요청했다. 신속 대응 팀이 도착해서 현장을 수색했지만 별다른 적의 자취를 발견하지를 못했다. 하지만 다른 군견을 데리고 나타난 증원군은 정밀 수색을 하다가 베트콩 네 명을 추가로 발견하고 모두 사살했다.

 

더 많은 증원군과 더 많은 수색견이 도착하여 재차 정밀수색을 해보자 묘지 아래에 땅굴을 파놓고 숨어있던 베트콩 네 명을 발견하였고 역시 즉각적인사격으로 모두 사살했다. 베트콩들은 탄손누트 공항을 기습할 목적으로 땅굴을 파고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태평양 전쟁중 부겐빌에서의 군견 부대

 

 

 

상황이 전개되는 동안 눈에 관통상을 입고 피가 난자한 상태인데도 니모는 총격으로 쓰러진 주인 손버그에게 기어와서 쓰러진 그를 몸으로 감쌌다. 구조팀이 급히 달려와서 후송하려 했어도 부상당한 자기 주인에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힘들게 니모를 분리시킨 뒤 손버그와 니모는 기지 의무실로 급송 되었다. 기지 수의 장교 레이몬드 헛슨 중위는 니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니모가 생명을 건진 뒤에도 총격을 받은 니모의 얼굴을 정상으로 돌려 놓기 위해서 여러번의 피부이식 수술이 행해졌다. 하지만 니모는 한눈을 영원히 잃고 애꾸눈 군견이 되어야 했다.

 

몇 개월 뒤 수의 장교가 니모는 이제 완쾌 되었다고 진단하고 니모를 군견 부대에 돌려보냈다. 그리고 니모는 한 눈이 실명된 채로 기지 순찰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니모의 실명된 눈은 더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군견들이 수색과 정찰 임무에만 사용되지 않았다.벨기에 육군에서는 유명한 "프란더즈의 개" 파드라슈와 같은 견종인 프랑드르 부비에들은 우유 수레 대신 무거운수냉식 기관총을 운반했었다.

 

 

1967627. 기지 본부는 니모를 현역에서 은퇴 시키고 미국으로 귀환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눈으로 군견 임무를 계속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것이다.군견으로서는 최초의 명예 제대였다. 손버그 역시 일본 타치카와 병원으로 이송되어 가야만 했다.

 

군견병 손버그와 군견 니모는 서로 작별을 나누고 각자의 목적지로 떠났다. 손버그는 그 곳 다치카와에서 충분한 치료를 하고 완치된 몸으로 귀향하게 된다. 니모는 그를 호송하는 군견병 멜빈 w.브라이안트와 함께 지구를 반바퀴 도는 귀향길에올랐다.

 

 

2차 세계 대전중 유럽 전선에서 맹활약해서 유명해진 명견 칩스.적의 기관총 벙커에 뛰어 들어 사수를 물고 늘어져모두 포로가 되게 하는 큰 수훈을 세우기도 했다.

 

 

그들을 태운 수송기는 일본, 하와이를 거쳐 캘리포니아에 도착 하게 되었다. 각 기지에 착륙할 때마다 군 수의 장교가 찾아와서 니모의 신체 상태가 이상이 없는지를 체크하는 친절한 의료 영접을 받았다. 니모가 전쟁 영웅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 간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환대였다.

 

니모를 태운 미 공군 c-124기는 다시 비행하여 마지막 목적지인 텍사스 주 켈리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그날이 1967722일 이었다. 이곳 라크랜드에 있는 군견 훈련소의 책임자 로버트 M. 설리번 대위는 니모 귀환 환영 위원회의 회장이 되어 니모를 환영했다. 이 군견 훈련소가 이제부터 니모의 안식처가 될 예정이었다. 설리반 대위는 말했다.

 

"여기에 군견들이 많은데 훈련소 책임자인 내가 특정한 군견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훈련 수행에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삼가고 있는데 이 전쟁 영웅에게만은 어쩔 수가 없군요."

 

이 기지를 새 집으로 자리잡은 뒤 유명한 전쟁 영웅 군견은 설리반 대위와 함께 여러번 초청받은 국내 순회를 했었고 자기 소속인 공군의 신병 모집 캠페인 TV 광고에도 출연했다. 니모는 수의 사무실 가까운 곳에 자기 전용 견사가 주어졌고 깨끗이 단장된 견사 밖에는 영웅의 숙소답게 니모의 공적이 자세히 소개하는 글이 붙어 있었다.

 

 

 

니모의 안식처

 

 

 

훈련 센터에서 니모는 그 존재만으로도 군견 훈령병들에게 위험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 보호를 위해서 군견이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말없이 교육 시켜왔다. 한 눈만 가지고도 유유자적 살던 니모는 1972년 크리스마스 며칠 전 사망했다. 유체를 박제로 보존하려던 부대의 노력은 거부되어서 니모는 화장되었고, 1973315 일군견 전용 묘지에 영구히  안장되었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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