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의 미스터리 [ 끝 ]





 




덩케르크의 미스터리 [ 끝 ]


정답은 없다


히틀러가 5월 24일부터 3일간 진격을 멈춘 것에 대해서 그동안 많은 이야기가 있어 왔지만 사실 이에 대한 정답은 당연히 없다.

그리고 이 3일간의 공백이 연합군의 철수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것이 30만 명의 대병력이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던 결정적 사유 또한 아니다. (어쩌면 이 부분은 그 동안 인구에 회자되면서 과장되어 왔던 측면도 있다.)


                               [ 독일 육군의 3일간 공백이 대 탈주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 사유는 아니다 ]


왜냐하면 다이나모 작전이라 불리던 덩케르크에서의 해상 철수는 5월 26일에 시작 되어 6월 5일 종료 되었는데,
주지하다시피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멈추었던 독일의 재 진격이 5월 27일에 시작되었으니 독일 지상군의 공격이 멈춰서 연합군이 물리적으로 혜택을 보았던 시간은 단지 1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영-불 연합군은 오로지 후퇴에만 정신이 팔려 5월 24일 독일의 진격이 멈춘 사실도 몰랐고, 당연히 독일도 그러한 사실을 연합군 측에 통보하지 않았었다.

결론적으로 히틀러의 명령은 해안가로 도망치기에만 급급하여 정신이 나가 있던 연합군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한 셈이었고, 어쩌면 덩케르크에 고립된 연합군이 독일군의 진격이 잠시 멈춘 사실을 알았더라도 결과는 그다지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 연합군은 독일의 진격 중지도 모르고 오로지 바다를 향해 도망쳤다 ]


왜냐하면 독일군의 진격이 멈추었다고해서 당시 상황에서 연합군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그리 다르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급박한 상황에서 1일이라는 시간은 엄청나게 소중한 시간이지만 30만 명의 대병력이 탈출하기에 그리 충분한 시간도 아니다. 독일의 함락이 하루가 빨라졌다면 단순히 산술적으로 따져 그래도 27만은 탈출하였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전쟁을 이처럼 단순히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히틀러의 명령과 별개로 많은 연합군이 탈출하였을 가능성은 컸다.

후일 처칠이 회고록에서 "5만 명 정도 구출해내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서 영국 원정군 23만 명과 프랑스군 8만 명, 1만점의 장비가 무사히 영국으로 빠져나왔고 "이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다"고 기술하였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내려진 예측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처칠은 기적이라고 표현하였지만 영국은 이들을 탈출 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


패배한 연합국은 독일군의 능력을 당연히 과대평가하였지만 반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능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기적으로 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방 같은 영불 해협을 배경으로 처절한 사투를 벌였던 영국 해군과 필사의 출격을 마다하지 않은 영국 공군의 활약은 독일 육군의 진격과 루프트바페(독일 공군)의 공격을 상쇄 할 만큼 영웅적이었다.

당시 독일은 그들의 진격에 스스로 놀랐을 만큼 제대로 된 전쟁 준비를 마친 상태도 아니었고 외부에서 독일을 바라보았던 영국이나 프랑스 또한 독일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 개시 전 연합군은 객관적으로 나타난 전력에서 독일보다 우위에 있었다. 영국은 두말할 필요 없는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하였고 프랑스는 세계 최강의 육군 대국이었다. 다만 작전 능력에서 독일이 앞섰을 뿐이었다.



                                      [ 진격이 멈추지 않았어도 많은 병력이 탈출은 하였을 것이다 ]


후일 30만의 대병력이 안전하게 철수하도록 방임하였던 결과에 대해 두고두고 통탄하는 목소리가 독일 측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설령 당시 진격이 멈추지 않았어도 지금까지 설명한 이유 때문에 독일은 고립된 연합군을 절대로 섬멸까지는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니 최악의 경우였어도 20만 이상의 대 탈출은 이루어 졌을 것이라 감히 추정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다음에 벌어졌다. 다이나모 작전이 종결된 열흘 후에 이와 맞먹는 거대한 해상 탈출 작전이 브로타뉴(Bretagne) 반도 끝에서 다시 한 번 재현되었던 것이다.

이때 브로타뉴까지 밀려간 총 20 여 만의 마지막 영군 원정군이 6월 14일부터 6월 25일까지  이른바 아리엘 작전(Operation Ariel)으로 명명된 해상 철수를 시작하여  셀부르(Cherbourg)와 브레스트(Brest)를 통해 영국으로 안전하게 빠져나가는데 성공했다.



                                              [ 아리엘 작전 당시에 브로타뉴에서 탈출하는 연합군 ]


이때는 프랑스가 독일에게 항복하기 직전이라 히틀러의 정지 명령 같은 미스터리는 당연히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같은 수준의 대병력이 안전하게 해상 탈출에 성공하고 독일군이 이를 섬멸하지 못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였다는 점은 결국 덩케르크의 철수 당시에 미스터리하였던 히틀러의 공격 중지 명령이 연합군의 철수에 중요한 역할을 점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일부 자료에는 소련과의 일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히틀러가 영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고려하여 진격을 멈춘 것은 아니냐는 정치 외교적인 분석을 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진격을 멈춘 후 독일이 영국에 대해 정치적인 협상을 제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처음에 썼던 것처럼 히틀러가 자기 입으로 이야기 한 것이 없으므로 정답은 없다.


           [ 본인이 해명한 내용이 없어 미스터리가 되었지만
그도 승리하기 위해 명령을 내린 것임이 틀림없다 ]


다만 결과에 대한 추측만 있을 뿐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나간 역사에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마지막 일격을 날릴 수 있었던 자신의 군대에게 극적인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린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또한 승리를 달성하기 위한 방편 중의 하나로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히틀러 자신만큼 전쟁 개시에 적극적인 인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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