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만든 이는 누구인가 [ 4 ]

기적을 만든 이는 누구인가 [ 4 ]

 

 

라이벌의 종말

 

 

삼소노프의 2군이 고립되어 무너져 내리고 있고 또한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였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1군은, 아니 사령관 레넨캄프는 사적인 감정 때문에 지원을 하지 않았다. 만화 같은 한심한 이야기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나름대로의 군사적 이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커다란 실수였고 이런 잘못된 사적 감정은 결국 레넨캄프 스스로의 운명도 재촉하는 지름길이 되었다.

 

 

 

항복하는 러시아 2군의 모습

 

전투가 끝났을 때 독일군은 1만 명의 손실을 입었지만 러시아군은 13만 명이 전사하고 9만 명이 포로가 되는 참담한 결과를 얻었다.

 

다시 말해 삼소노프의 러시아 2군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만큼 괴멸 되었고 독일 8군은 전쟁사에 길이 빛날 놀라운 대승을 거두었던 것인데 이를 전쟁사에서는 탄넨베르크 전투(Battle of Tannenberg)라고 한다.

 

그리고 참담한 패배를 당한 삼소노프는 굴욕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으로 자결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삼소노프는 패전의 굴욕을 견디지 못하고 자결하였다

 

 

이제 다음 차례는 굼비넨에서 애타게 구원을 요청하던 2군의 궤멸을 애써 모른척하고 방관하였던 레넨캄프의 1군이었다.

 

레넨캄프는 자신이 공격받을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였고 한심하게도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를 차치하고도 레넨캄프가 두고두고 비난 받아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2군에 대한 지원 거부와는 별개로 자신 스스로 방어할 준비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는 무능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레넨캄프는 무능의 극치를 연이어 연출하였다

 

 

독일 8군은 숨 쉴 틈 없이 레넨캄프의 1군을 마수리안 호수로 밀어붙여 다시 한 번 대 포위를 완성하였다.

 

탄넨베르크에서 러시아 2군이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였던 상황의 재방송이라 할 만큼 유사한 상황이었는데, 이때문에 러시아 1군의 패배가 더욱 한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도 러시아는 12만의 병력 손실과 6만의 포로, 500문의 대포를 잃는 엄청난 손실을 입고 붕괴되었다.

 

 

 

마수리안 전투 기록화

 

 

이를 1차 마수리안 전투(1st Battle of Masurian)라고 하는데 연달아 벌어진 탄넨베르크 전투와 이 전투로 인하여 러시아의 자랑이던 1집단군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보무도 당당히 전쟁에 뛰어들었던 러시아는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동원 병력의 반 가까이가 붕괴되는 참변을 겪었고, 당연히 진격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하였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제1차 대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포로가 된 러시아군의 비참한 모습

 

 

충분히 승리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아군의 도움을 외면하여 결국 전체의 몰락을 가져온 레넨캄프는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즉시 숙청되었다.

 

만일 레넨캄프가 삼소노프를 구원하였다면 러시아는 승리를 거두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삼소노프와 레넨캄프의 반목과 아집은 동반 몰락을 넘어 전쟁의 장기화와 이에 따른 러시아 제국의 붕괴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전투 종결 후 생포된 러시아군과 노획한 장비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탄넨베르크 전투와 관련하여 많이 알려진 내용이다. 삼소노프와 레넨캄프의 반목과 무능, 이와 반대로 힌덴부르크를 위시한 독일군의 뛰어남 등으로 전투가 이루어진 것으로 대부분의 전사는 기록하고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양측 합쳐 팔십여 만의 군대가 충돌한 이 전투의 결과를 이렇게 알려진 몇몇 사람의 책임으로만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일까?

 

 

 

 

탄넨베르크 전투는 깐나이 전투의 재판이라 불렸다

 

 

탄넨베르크 전투와 연이어 있었던 마수리안 전투는 2,200년 전 카르타고와 로마사이에 있었던 깐나이 전투(Battle of Cannae, 기원전 215년 한니발이 54,000의 군사로 87,000의 로마군을 포위하여 괴멸시킨 전투))의 완벽한 재현으로 불릴 만큼, 소수가 다수의 내부 약점을 간파한 후 기동전으로 포위섬멸 하여 격파한 전쟁사의 텍스트가 되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이러한 사실과는 별개로 우리가 이 전투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이 전투의 교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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