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지 않는 오뚜기 [1]

 

 

 

 

 

 

 

쓰러지지 않는 오뚜기 [ 1 ]

 

 

사단장에게 대든 하사관

 

 

한 포병대대 탄약관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사단본부에 도착했다. 본부 앞 연병장은 각종 문서와 장비를 적재하기 위해서 대기 중인 차량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전날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지휘에 열중이던 사단장을 발견한 상사는 곧바로 달려가 거수경례를 붙이고 다짜고짜 다음과 같이 외쳤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였다

 

 

 

"사단장님전쟁이 나면 북진을 한다고 하시더니 왜 후퇴준비만 하십니까공격은 언제 하실 것입니까그리고 저것은 또 무엇입니까문서가 그리 중요 합니까문서로 전쟁을 합니까포탄이 있어야 전쟁을 합니다저희 포병대대는 포탄을 실어 나를 운반차가 부족합니다. 저차들을 저에게 주십시오."

 

이때 사단장 옆에 있던 참모들이 "말단 일개 하사관(부사관)이 어찌 사단장에게 이런 무례한 언동을 할 수가 있나" 분개하며 즉결 처분하기 위해 헌병들로 하여금 이 당돌한 하사관을 체포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출몰한 상사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사단장이 참모들의 행동을 제지한 후 "네 말이 옳다!"고 대답하며 불원천리 달려 온 탄약관에게 충분한 운반차를 지원해 주라고 명령을 내렸다.

 

 

 

 

차량들이 포탄 수송을 위해 전용되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문서를 적재하기 위해서 연병장에 줄서 있던 차량들은 서류뭉치를 내려놓고 포병대대 지원에 나섰다.

 

이때 탄약관을 체포하려던 헌병대장이 "무슨 용기로 전시에 총살당할 수도 있을 만한 행동을 할 수 있는가?"하고 묻자그는 "사단이 북진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라고 답하면서 차량들을 지휘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였다.

 

사단장과 참모들은 이와 같은 당당한 그의 태도와 애국심에 깊은 감명을 받아 포병대대를 지원하기 위한 충분한 차량을 배당하여 주었고 사단 본부 인력으로 포탄운반을 돕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이 당돌한 하사관은 제18포병대대 탄약관 이석권 상사였고, 말단의 건의를 현장에서 수용하여 즉시 지시를 하달한 사단장은 국군 제8사단장 이성가 대령이었다.

 

 

 

 

8사단장이었던 이성가 대령

 

 

 

1950625,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나라가 위기에 몰렸을 당시 동해축선의 초기 방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이후 피 말리는 지연전과 낙동강전선의 영천에서 벌어진 대회전에서 승리의 주역이 되었던 오뚜기부대의 신화는 말단 하사관을 비롯한 모든 장병들의 분투와 일선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여 아낌없는 배려를 하였던 지휘부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위에 설명한 일화는 1950626, 적의 남진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8사단 사령부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얼마나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갔으면 말단 하사관이 사단장을 찾아가 면전에서 소리를 지르며 직접 건의를 하였을까?

 

다음에 소개할 내용은 전쟁 초기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선전을 다한 오뚜기부대와 제18포병대대의 영웅담이다.

 

 

 

강릉전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오뚜기부대

 

 

 

한반도의 척추라 할 수 있는 백두대간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은 동해축선은 지형적 여건으로 인해 백두대간 서측의 전선과는 분리되어 별개로 운용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것은 한국전쟁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남침 당시 북한은 백두대간 동측의 38선을 38경비 제1여단이 전담하여 경비하고 있었고 그 배후에는 제5사단 일부가 배치되어 있었다.

 

전쟁 발발 직전에 북한의 무력은 내무성 소속인 38경비여단들이 38선을 경비하고 있었고, 바로 뒤에 민족보위부(우리의 국방부)소속의 정규군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는 흔히 구 소련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이 채택한 전형적인 국경인근 전력 배치구조라 할 수 있다

 

 

 

최초 설정 당시 38선의 모습

 

 

38경비여단들은 경무장이었지만 전쟁 직전 끊이지 않던 국지전 때문에 실전 경험이 풍부하였고, 38선 인근 지형에 익숙하였으므로 개전 직후 곧바로 강력한 정규군에 편입되어 남침의 선봉대로 활약하였다.

 

그런데 다른 전선과 달리 동해축선의 경우는 정규군이었던 5사단보다 38경비 1여단이 남침의 주역으로 활약한 특징이 있다. 그 이유는 당시 5사단의 어정쩡한 배치구조와 더불어 개전 즉시 다수의 특작부대를 우회침투 시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한군 5사단은 만여 명의 조선족을 주축으로 구성되었던 중공군 164사단이 그 전신이었는데, 국공내전(國共內戰) 등을 통해 얻은 풍부한 실전경험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1949823, 이미 완편 된 상태로 함경북도 나남으로 입북하였기 때문에 단지 북한군 군복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부대편성이 끝난 것과 다름 없었던 정예사단이었다.

 

 

 

남침 전 열병식을 벌이는 북한군

 

 

 

이들은 이미 사단급 전술훈련도 마쳤고 62338선 바로 이북인 양양 일대로 은밀히 전개를 완료한 상태였다.

 

예전에는 이들이 동해축선 돌파를 전담한 부대로 알려졌는데, 최근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개전 초기에 5사단이 담당한 지역은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넓었고 그 때문에 분산 배치되었던 것으로 최근 확인되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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