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지 않는 오뚜기 [3] -불을 뿜는 곡사포-

 

 

 

 

 

 

  쓰러지지 않는 오뚜기 [3]   

 

-불을 뿜는 곡사포-

 

 

1950625일 새벽 4, 아군 10연대 관측소가 있는 주문진 부근의 188고지에 1발의

포탄이 낙하되어 폭발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전쟁이 개시되었다. 포탄의 비에 최전방의

2대대는 순식간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아군의 최 일선 경비부대가 무너지고 포격이 멈추자 새벽 5시경 사전에 남침을 위해

증강되었던 북한군 38경비 제1여단이 남침을 개시해 왔다.

 

 

개전 초기 북한군의 모습

 

 

곧이어 제2제대였던 북한군 5사단 예하 제10연대가 뒤쫓아 내려오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강릉전투는 이처럼 남북의 10연대가 서전부터 맞상대하는 진기록을 전사에 남겼다.

이와 더불어 강릉 후방으로 적 766부대와 945육전대가 상륙하여 제2전선을 구축하여 버렸다.

이로써 아군 10연대는 전방이 무너짐과 동시에 배후가 차단되는 최악의 국면에 놓여졌다.

 

만주 봉천(奉天) 출신인 8사단장 이성가 대령은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칠도구분교장

(七道溝分校長)으로 독립군 양성에 힘쓴 우국지사 이관석(李寬錫)의 아들이었다.

국방부 발간 공식자료에 따르면 그는 남경(南京)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국민당군에서 소좌

(소령에 해당)로 복무하면서 대일 항전에 참전하였다. 일부에서는 군벌이었던 왕정위(汪精衛)

휘하에서 근무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이성가 사단장

 

 

그는 초반 상황이 너무 나쁘다는 것을 깨닫고 사전 계획에 의거 삼척에 주둔한 제21연대를

강릉방어에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8사단의 제일 목표는 38선을 현 수준에서 고수하여 강릉을 확보하는 것이었는데, 전쟁 개시와

더불어 육군본부와 통신이 단절되어 전체 상황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사전에 수립된 계획대로

단독작전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강릉으로 북상할 21연대의 이동로를 이미 북한군 766부대와 945육전대가 절단한

상황이어서 사단장은 21연대에게 임계-구산리로 우회하라고 지시하였다.

625일 당일의 상황은 아군 10연대와 사단 본부의 앞뒤가 적에게 갇힌 상태여서 21연대가

속히 증원되어야 전력을 보존하고 강릉을 사수 할 수 있었다.

 

 

사단 본부와 10연대가 고립되어 21연대가 우회하여 지원에 나섰다

 

 

어쨌든 21연대가 도착할 때까지 10연대는 혼자서 최대한 전선을 사수하여야 하였지만 적의

공세는 거셌다. 38선 경비를 담당하던 10연대 2대대가 개전 당일 아침에 붕괴 된 후 주문진

북쪽 북분리~어성전리를 연결하는 능선에 급편 설치한 방어진지도 오전 8시가 지날 무렵

돌파되었다. 결국 오후 8시에 연곡천으로 후퇴하여 방어선을 재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마저 돌파된다면 대관령 통로와 사단본부 및 비행기지가 있는 강릉의 방어 또한 장담 할 수

없었다거기에 더해 21연대가 우회 북상 중이므로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한마디로 의지만 가지고 4배 가까운 무력을 보유한 적의 공세를 막아내기는 힘들어 보였다.

바로 이때 방어의 최전방에 제18포병대대가 나서기 시작하였다.

 

 

 

제18포병대대가 방어전의 핵심이 되었다

 

 

당시 포병대대는 대대장 장경석 소령이 출장 중이었고 각 포대장들 또한 파견 교육 중이어서

지휘부가 사실상 공백상태였다. 하지만 10연대가 압도적인 북한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불리한 전황 소식에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선임대원들의 지도로 평소 훈련된 대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최대한 가까이 북쪽으로 올라가 포들을 방열하기 시작하였다.

 

방열이 완료 된 후 전방을 관측하자 전방에서 10연대가 밀려서 내려오는 안타까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들을 구원하기 위한 M-3견인곡사포의 사거리는 너무 짧았다.

압도적인 적의 병력에 육탄으로 맞서며 밀리고 있는 10연대를 18포병대대는 입술을 깨물며

지켜보고 있었다.

 

 

적들이 사거리 안에 들어오자 M-3 곡사포가 불을 뿜었다

 

 

드디어 오전 11시 관측장교 김용운 소위는 북한군 선두부대가 포 사정거리로 들어왔음을

확인하였다. 김 소위는 지체 없이 사격명령을 내렸고 방열되어 있던 M-3곡사포들은 분노의

불을 뿜기 시작하였다. 전쟁개시 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던 북한군은 주문진 남쪽에서

갑자기 날아온 엄청난 포 세례를 받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지형 여건상 종대로 일렬로 진격하던 북한군은 선두가 탄막에 갇히고 계속 포탄이 날라 오자

공격을 중단 할 수밖에 없었다. 이틈을 타서 10연대는 여유를 얻었고 강릉북방 연곡천에

주저항선을 구축하게 되었다.

 

급하게 불을 끈 18포병대대는 10연대가 방어선을 만드는데 성공하자 배후인 강릉 북쪽의

사천국민학교로 이동하여 포진지를 새롭게 구축하였다.

 

 

10연대는 전열을 정비하여 연곡천에 주저항선을 구축하였다

 

우리군의 갑작스런 반격에 놀라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북한군 38경비 1여단과 후속하여

내려온 5사단 10연대는 일단 연곡천 앞에서 전열 정비에 들어갔다. 이로써 개전 당일의 위기는

잠시 멈추었고 우리군은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부터 연곡천을 돌파하고자 하는 북한군의 맹공이 재개되었고 국군 10연대는

최선을 다하여 방어선을 지켜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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