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지 않는 오뚜기 [4] -살신성인-

 

 

 

 

 

 

 

  쓰러지지 않는 오뚜기 [4]   

 

-살신성인(殺身成仁)-

 

연곡천 전투에서도 빛을 발한 것은 10연대 배후에서 포탄을 날리던 18포병대대였다. 포병대대의 M-3곡사포들

전방 관측자가 알려온 위치에 정확하게 포탄을 날려 보내 적들을 타격하였다.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사기가 오른 10연대는 전선을 38선으로 밀어올리기 위해 121고지를 탈취하는 반격전을

벌여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연곡천 전투에서도 포병대대의 M-3 곡사포는 불을 토했다

 

 

국군 화력의 주축인 18포병대대는 전방의 지원요구에 부응하여 포신이 붉게 달아오를 만큼 쉼 없는 지원사격을

가하였다. 비록 탄약소대의 차량이 쉴 새 없이 포탄을 나르고 강릉시민들이 병사들을 도와 탄약과 각종 식음료

지원해 주고 있었으나 포병대대의 분전이 계속 될수록 포탄의 소모량이 많아 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 1편에 썼던 것처럼 탄약관 이석권 상사가 사단으로 달려가 사단장 이성가 대령에게 직접 포탄운반차량

지원  요청하였고, 드디어 14시 이상사가 확보한 많은 차량이 오자 탄약소대원들과 강릉시민들은 만세를

불렀다. 이제 충분한 포탄 운반이 가능하여 포병들은 마음껏 적을 강타 할 수 있게 되었다.

 

민군의 일체된 노력으로 적을 강타할 수 있었다

 

차량 수배에 관한 이야기를 작은 에피소드로 소개하였지만 당시에 제공된 차량이 없었다면 강릉은 아마 6

26적에게 함락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당시 사료를 살펴보면 10연대도 불굴의 의지로 적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18포병대대의 효과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연곡천을 방어하기 역부족인 상황이었기 대문이었다.

 

이러한 민군(民軍)이 하나가 되어 분전한 18포병대대의 활약으로 10연대는 연곡천 방어선을 수호 할 수

있었고, 이날 저녁 삼척에서 북상하여 증원하러 올라온 21연대가 드디어 강릉외곽에 도착하여 힘든 방어전을

수행하고 있던 10연대를 지원 했다.하지만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던 북한군도 더 이상 연곡천에서 지체

할 수 없었다.

 

 

제18포병대대가 고군분투하였지만 전황이 좋지는 않았다

 

 

만일 이곳을 도하하지 못하여 강릉을 조기 점령하지 못한다면 북한군 남침전략 전반에 커다란 차질을 가져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계획상 개전 첫날에 강릉을 함락시켜야 했는데 벌써 이틀이 지났기 때문에

상당히 초조한 상태였다.

 

627일 새벽 4, 대대적인 포격을 시작으로 전날 연곡천을 넘지 못해 초조해진 적의 대규모 공격이 시작

되었다. 어렵게 121고지를 탈환하였던 아군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려오는 포탄에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고 이틈을 타서 적의 선봉이 연곡천을 도하하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전선의 단절을 우려한 지휘부의 판단으로 10연대는 연곡천을 포기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10연대의 후퇴로 최전방에서 화력지원을 펴던 18포병대대의 포진지도 적에게 노출되었다.

 

 

준비를 마친 적들이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하였다

 

전방 100미터까지 적들이 도달하자 대대원들은 수평으로 포신을 낮추어 적을 타격하였다.자신만만하게

참전한 미군 선도 부대인 스미스특임대의 포병대가 전방을 돌파하여 포진지 앞에 갑자기 등장한 북한군

T-34전차에 놀라 곡사포를 내팽겨 치고 도망 다니기에 급급하였던 것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확연히

비교되는 분전이었다.

 

18포병대대는 포들을 후퇴시킴과 동시에 포진지로 난입한 북한군과 치열한 백병전에 돌입하였다. 이런

와중에 2문의 곡사포가 밭에 빠져 철수 시키지 못할 상황에 놓이자 병사들은 견인포의 타이어를 터뜨리고

폐쇄기의 공이를 빼내어 적들이 포를 노획하여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 후 후퇴를 감행하였다.

 

 

포진지 내에서 백병전이 벌어질 만큼 치열하였다

 

2번 포차 운전병 심우택 이병은 폐쇄기를 안은 채 산화하였고, 통신소대 선임하사 최서종 중사는 와이어

드럼을 회수하려 적진으로 뛰어들어 돌아오지 못하였다. 또한 관측반 한명화 하사는 끝까지 관측소에 남아

임무를 수행하다 순국하였다. 이처럼 18포병대대의 분전은 개전 당일 강릉을 점령하려던 북한의 계획을

무려 3일이나 지체시킬 수 있는 힘이었다.

 

연곡천이 무너지자 강릉의 함락은 불가피해 보였다. 사전에 수립된 후퇴계획에 의하면 동해축선의 남쪽인

삼척방향으로 내려가는 것이 올바른 전술이었다.

 

그러나 이미 이곳에는 개전 당일 상륙에 성공한 연대급 규모의 북한군 766부대와 945육전대가 현지에서

암약하던 무장공비들과 연합하여 제2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현재 18포병대대는 노도부대에 배속되어 있는데 순국 3용사의 전설은 오뚜기부대와 노도부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사실 이들은 경무장이었으므로 국군 제8사단이 마음을 먹었다면 충분히 돌파가 가능할 수는

있었겠지만, 뒤 쫓아 오는 북한군 주력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결코 올바른 후퇴 방법이 아니었다.

이성가 사단장은 제21연대가 긴급 이동 전개하면서 확보한 대관령을 후퇴로로 이용하기로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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