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지 않는 오뚜기 [최종] -성공적인 철수로 막을 내린 전투-

 

 

 

 

 

 

  쓰러지지 않는 오뚜기 [최종]   

 

 

-성공적인 철수로 막을 내린 전투-

 

 

 

대관령 후퇴 결정은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38선에서 부산에 이르는 최단거리의 가도인 동해축선을 텅텅 비워

놓는 것과 같았다. 당시에 8사단을 대신하여 이곳 축선을 방어할 수 있는 아군 전력이라고는 부산에 긴급히

집결하던 제3사단 제23연대밖에 없었는데, 아무리 빨리 부대를 편성하여 북상하여도 포항이상의 선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기는 어려웠던 상태였다.

 

대관령으로 철수는 의외의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 8사단이 대관령을 넘어 내륙으로 후퇴하는 것은 강릉에서 포항까지 완전히 비워놓는 위험한 판단일 수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18포병대대의 분전에 힘입어 확보하고 있던

대관령으로 후퇴 한 8사단은 여기서 원주, 충주, 태백 등 여러 방향으로 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사실 다음 행로를 8사단 단독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적어도 인근 전선의 상태가 확인되어야 다음

행로를 결정할 수 있었는데 육군본부는 물론 인접 제6사단과도 통신이 두절된 상태였다.

 

이런 고민을 안고 대관령 일대에서 부대를 재편하던 이성가 사단장은 생각보다 부대가 양호한 상태고 부대원의

사기 또한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부대를 재편한 8사단은 반격에 나섰다.

 

이때 이성가 사단장은 아군을 몰아내고 승리감에 도취되어 방심하고 있을 북한군을 역습하면

강릉을 탈환 할 수 있겠다는 역발상을 하게 되었고 적정을 살피고자 즉시 정찰대를 파견하였다.

그 결과 예상했던 것처럼 북한군도 지난 3일간의 격전에 지쳐 휴식중이었는데 도심을 장악

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긴장이 풀려 경계가 흐트러진 상태임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반격 준비를 마친 오뚜기들은 628일 오전 8시 예하 21연대를

주축으로 강릉을 공격하여 경포대 부근까지 순식간 진출하였다.

 

이러한 반격은 강릉 점령에 도취되어 방심하고 있던 북한군 38경비 1여단과 5사단 10연대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꼴이었다.

 

 

오뚜기들은 경포대 인근까지 진격하여 적을 당황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바로 이때 육군본부와 통신이 연결되면서 서부전선의 서울이 함락됐다는 최악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따라서 선전하고 있던 인접 6사단도 춘천과 홍천을 포기하고 전선을 단축해야 되는

입장이었으므로 8사단의 강릉 탈환은 자칫 무의미한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많았다.

 

결국 전선의 단절을 우려한 육군본부의 철수 명령이 하달되자 많은 부대원들이 반발하였지만

사단장도 상부의 결정에 동의하였다.

 

8사단은 눈물을 머금고 강릉을 포기한 후 대관령을 넘어 서쪽으로 철수길에 오른다. 처음에

8사단은 원주로 철수할 예정이었으나, 630일 홍천이 적에게 점령되자 방향을 바꾸어 제천으로

이동하였다. 이로써 개전 초기에 동해축선의 용감했던 오뚜기들이 벌였던 강릉 방어전은 막을

내렸다.

 

쓰러지지 않는 오뚜기들은 후일을 기약하며 제천으로 철수 하였다.

 

그런데 오뚜기들의 끈질긴 대응에 북한군은 약이 올랐는지 아니면 그것이 원래 계획에 있었는지는

몰라도 북한의 전쟁지휘부는 상당히 엉뚱한 작전을 펼치게 되었는데 다행히 이런 후속 대응은

북한군 스스로를 붙잡아 놓는 덫이 되어 버렸다.

 

8사단이 제천으로 후퇴하자 북한은 5사단 10연대로 하여금 백두대간을 넘어 오뚜기부대를

추격하도록 하면서 동해축선의 전력을 분산시켜 버렸던 것이다.

 

더구나 제2전선을 구축하여 아군의 퇴로를 차단한 북한군 766부대와 945육전대는 무슨 일인지

상륙지점에서만 정체하고 있던 상태였다.

 

결국 북한은 빈 공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전력을 스스로 분산시켰고 그 사이 국군 3사단

23연대가 예상보다 훨씬 북쪽인 울진인근까지 북상하여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동해축선의 위기를

가까스로 틀어막았다.

 

강릉전투 전적비

 

8사단의 제천이동은 이후 중동부 전선에서 북한군 3개 사단을 홀로 막아내고 분전 하고 있던

국군 6사단의 부담을 덜어주는 전략적 효과를 가져왔다.

 

마치 어둠 속에 비추어진 한줄기 빛처럼 한국전쟁 초기의 후퇴 지연전에서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가면서 국군이 간간히 거두었던 승리의 대부분이 이곳 지역에서 벌어졌다.

 

때문에 한국전쟁사에서 공통적으로 국군 8사단의 제천철수는 가장 성공적이었고 모범적이었던

철수사례로 두고두고 언급될 만큼 훌륭한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러한 바탕에는 바로 놀라운

뒷심을 발휘하였던 강릉방어전의 선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쓰러지지 않는 오뚜기들이 벌였던 놀라운 분전은 서부전선의 암울하였던 전황과는 상반된 

자랑스러운 전과였다.

 

오뚜기 부대의 강릉전투는 민군의 힘으로 이룩한 성과다.

 

후퇴하지 않고 포진지내에서 육박전도 마다하지 않았던 18포병대대 장병들처럼 강릉전투에서

보여준 오뚜기들의 놀라운 뚝심은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한 지휘부이하 모든

장병들의 노력과 어려움에 처한 군을 돕기 위해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은 강릉시민들의 노고

때문이다. 바로 그들의 노력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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