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한 결과 그러나 놀라운 용기[2] -이에는 이-

 

 

 

 

 

 

  미미한 결과 그러나 놀라운 용기 [2]   

 

 

-이에는 이-

 

 

 

9.11테러와 빈 라덴의 처형처럼 군사적인 보복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 틀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고민 끝에 미국이 찾아낸 방법이라는 것은 바로 '이에는 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이 진주만 기습을 당하여

충격을 받았다면 미국도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 폭격을 가하여 복수한다는 단순한 논리였다.

  

미국은 함무라비 방식으로 복수를 생각한다. (폭탄을 투하하는 미국의 함상 폭격기 SBD Dauntless)

 

그런데 작전을 구상하면서도 전술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미군 당국도 그리 신통한 결과를 얻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최대한 기습의 효과를 살려서 심리적인 전과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미국 태평양함대를 불구로 만들어버리는 엄청난 전략적 성과까지 이루었다. 하지만 이런 기습의 효과를

미국이 얻기는 힘들었다.

 

전쟁이 발발한 이상 일본은 미국의 역습에 대해 나름대로의 방어대책을 세워 놓았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미국이 일본에 폭격을 가한다 하더라도 치명적인 전과를 얻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보다도

당장 일본 본토를 폭격할 마땅한 장소와 장비가 없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였다.

 

전쟁이 개시되자 일본의 감시망이 강화되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군이 엄청난 피를 흘려가면서 이오지마(硫黄島)나 오키나와(沖縄)와 같은 섬을 탈취한

이유는 일본 본토를 폭격하기 위한 비행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전쟁 초기에 당연히 일본본토에 가까운

미군 비행장이 없었고 B-29처럼 장거리 항속이 가능한 폭격기도 데뷔하기도 전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진주만 기습 때의 일본처럼 미국 항공모함전력을 한곳에 모아 일본 본토까지 접근 시켜서

폭격을 한다는 것인데 이는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전쟁이 발발한 이상 일본의 해상 감시망을 뚫기도 힘들뿐

더러 설령 뚫었다하더라도 수적으로나 성능으로나 미군의 해군항공 전력이 하늘에서 제압당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전쟁말기 같은 전략 폭격은 엄두도 내지 못할 때였다. (B-29 비행대의 고베 맹폭장면)

 

그것보다 그나마 진주만 기습으로부터 기적적으로 보존 된 항공모함전력을 잃는다면 미국은 하와이까지 포기

할 지도 모를 위험에 닥칠 수 있었다. 비록 태평양이 거대한 바다지만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 밖에 없으므로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어선이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하와이가 포기되면 그 다음은 바로 미국 본토였다.

 

하지만 지체 할 수 없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을 비롯한 최고 권력자부터 뉴욕

할렘가의 빈민들 모두가 복수를 외치고 있었음에도 연이은 미군의 패전으로 미국 민과 미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할 자신은 있었으나 비록 소소하지만 당장의 패배는 앞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문제가 많았다.

 

진주만 급습에서 미국의 항모전력은 참화를 피했고 최대한 보존시켜야 했다.

 

미국은 어찌 되었든 반전을 위한 극적인 기회를 잡아야 했고 설령 그 효과가 보잘것 없다하더라도 일본을

응징하는 모양새는 보여야 했다. 이러던 중 해군성 작전참모인 프란시스 로우(Francis Low) 대령은 다음과

같은 구상을 하여 군 당국에 제안을 했다. 그의 제안 역시 결국은 항공모함이었지만, 사실 이를 대신할만한

현실적인 방법 또한 없었다.

 

"항공모함을 최대한 일본본토에 근접시켜 폭격작전을 하되 일본의 감시망 밖에서 폭격기를 이륙시키면

항공모함은 안전할 수 있고 폭격도 가능할 것이다. 항공모함에 탑재한 해군의 공격기들은 폭장량도 적고

항속거리가 짧기 때문에 육군이 보유한 장거리 폭격기들을 항공모함에 탑재하여 작전에 나서면된다."

 

 

미국은 상징적인 군사행동을 필요로 하였다.

 

육군항공대(현 공군)의 폭격기를 항공모함에 탑재하여 작전한다는 단순한 구상이었지만 의외로 지휘부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세부 실행구상 단계에 착수했다. 그런데 막상 작전계획을 짜다보니 미 육군이 보유한

폭격기들을 좁은 항공모함에서 이함 시키는 것이 한마디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더군다나 작전 후 귀환하여 착함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결론적으로 작전에

투입 될 병사들이 돌아올 수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인명 희생을 각오하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결국

한계에 다다른 해군은 평소부터 라이벌 의식이 강한 육군항공대를 찾아가 협조를 구했다.

 

아놀드 장군은 해군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였다.

 

비록 평시에는 자존심 경쟁에서 질수 없는 맞상대지만 국가의 위기 앞에서 육군은 이미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해군의 작전안을 들고 찾아온 로우대령 일행을 반갑게 맞은 미 육군 항공대 사령관 헨리 아놀드

(Henry Arnold) 장군은 묵묵히 제안을 듣고 짧게 그러나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 작전은 반드시 실행되어야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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