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공수작전 -1- 독일, 발칸을 제압하다

 

 

 

 

 

 

 

  크레타 공수작전[1]   

 

 

 

- 독일, 발칸을 제압하다-

 

 

 

자기분수를 모르는 바보 무솔리니는 알바니아와 에디오피아의 점령에도 만족하지 않고 대외 침략을 재촉 하였다. 로마제국의 부활을 노래하며 제2의 시이저가 될 것으로 착각한 이 과대망상증 환자는 제 분수도 모르고 북아프리카와 발칸반도로 진출을 시도하였는데, 어처구니없이 코피가 터지고 머리에 혹이 나는 망신을 당하였다.

 

그리스군에게 무참히 격퇴당하는 이탈리아군. 제2차대전 내내 이탈리아는 허접군대의 대명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얼간이가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독일의 콧수염 친구였다. 무솔리니의 유일한 친구와 다름없는 독일의 히틀러는 무지막지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전쟁 개시 불과 1년 만에 유럽을 거의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는 프랑스를 단 7주 만에 무릎 꿇렸고 영국군을 서유럽에서 몰아내어 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놀라운 전쟁 지휘 능력을 선보인 히틀러도 조금 모자란 구석이 있어서 무솔리니가 우는 소리만 하면 도와주려고 달려들었다. 독일도 여러 군데 벌려놓은 것이 많아서 제 코가 석자였지만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외에는 그다지 마음을 터놓고 지낼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도울 수 밖에 없었다고 보는게 낫겠다.

 

마땅한 친구가 없어서인지 히틀러는 미덥지 않은 무솔리니를 잘 도와주었다.

 

북아프리카에서 엄청나게 이탈리아가 영국에게 깨지고 있을 때 독일이 번개같이 뛰어들어 이들을 구원하였다. 사실 처음에 히틀러가 아프리카 원정군을 파견하였을 때까지만 해도 그 정도의 승리까지는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롬멜이 이끄는 독일 원정군은 놀랄만한 대승을 연이어 이끌었다.

 

그러자 지난 194011월에 있었던 그리스 침공전에서 패하여 망신을 당한 이탈리아는 이 당시에 당한 굴욕을 복수해 달라고 독일에게 부탁하였다. 이번에도 독일은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고 독일은 멍청한 친구 이탈리아를 대신하여 1941년 발칸반도로 진격하여 들어갔다. 비록 이탈리아를 대신하였지만 사실 히틀러도 나름대로 꿍꿍이가 있었다.

 

독일은 이탈리아를 대신하여 발칸반도를 석권하였다.

 

첫째, 루마니아의 유전 때문이었다. 해상이 봉쇄당한 독일이 계속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석유가 절실히 필요한데 루마니아의 석유자원은 독일이 당연히 이유 불문하고 확보하여야 할 전략물자였다. 현재까지는 루마니아가 독일 편이지만 앞으로도 그럴것이라 판단할 수 없어 전략적인 접근로를 미리 확보해 놓아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소련 때문이었다. 히틀러만큼 잔인한 독재자인 라이벌 스탈린이 통치하는 소련은 히틀러가 일생을 바쳐서 반드시 처단하여야 할 악의 제국이었다. 그렇다고 히틀러의 제3제국이 선의 제국이라는 말은 당연히 아니지만 이 둘은 이념적으로 결코 가까이 상종할 수 없던 관계였다.

 

소련침공을 위해 발칸반도를 사전에 평정할 필요가 있었다.

 

공개적으로 수시로 언급할 만큼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은 나치 독일이 반드시 격멸하여야 할 원수였다. 비록 1939년에 밀약을 맺어 폴란드를 사이좋게 갈라먹은 사이지만 그것은 순간의 필요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어쨌든 이 소련과 일전을 겨루기 위해서 독일은 사전에 발칸반도를 먼저 제압 할 필요가 있었다.

 

발칸반도를 독일의 수중에 두지 않고 소련으로 진격한다면 상대적으로 국토가 작은 독일은 효과적이고 다양한 대 소련 진격로를 사전에 확보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 대립이 제1차 대전의 원인중 하나였을 만큼 민족 간의 갈등이 첨예한 발칸반도를 사전에 정지 하여야 독일은 마음 놓고 소련과 일전을 벌일 수 있었다.

 

발칸반도는 지금도 유럽의 화약고다. (발칸전쟁 당시 불가리아 군)

 

히틀러는 발칸반도의 국가들에 대하여 강온 양면책을 구사하였다.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는 현실적으로 독일의 힘을 이용하고자 자발적으로 혹은 독일의 힘에 눌려 반강제적으로 추축국의 일원이 되었다. 특히 헝가리와 루마니아는 많은 자국군을 동원하여 소련 침공전에 주도적으로 앞장서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러한 협박이나 회유에도 불구하고 범슬라브주의의 온상이었던 세르비아를 계승한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정교의 본산인 그리스가 반기를 들고 나섰다. 폴란드 때도 그랬지만 협박으로 굴복하지 않으면 히틀러는 두말없이 무력을 동원 하였다. 당시 히틀러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망설이지 않고 꺼내들 만큼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협박에 굴하지 않자 군말 없이 침공을 개시하였다.

 

불가리아가 19413월에 추축국에 가담하자 그 다음 달 독일은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를 전격적으로 침공하였다. 여담으로 지금도 유럽에서 고래힘줄 성격을 가진 민족으로 폴란드인, 세르비아인, 그리스인을 손꼽는데, 이렇게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옹고집이 히틀러로부터 이들이 무참히 도륙을 당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을 정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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