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공수작전 -2- 운명의 섬

 

 

 

 

 

 

 

  크레타 공수작전[2]   

 

 

 

- 운명의 섬 -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1939년 이후 항상 그래왔던 패턴으로 독일 침공군은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로 쇄도하여 들어가 너무나도 빠르게 전쟁을 자기 뜻대로 진행하였다. 굽히지 않는 자존심 하나만을 믿고 결사항전을 외쳤던 이들 국가들이 폴란드나 프랑스의 뒤를 따르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독일이 발칸반도를 석권하는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실 1942년 이전 독일군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던 군대였다. 폴란드 공략 시에는 소련과 연합하여 전쟁을 벌였음에도 두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듬해 유럽 최강의 육군이라 자타가 공인하던 프랑스와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한 영국 연합군을 무너뜨리는데 불과 7주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발칸반도 공략은 더욱 빨랐다. 순식간에 유럽의 최강자로 등극하였다는 자부심은 그동안의 군사적 경험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독일 침공 후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5월 초, 유고슬라비아는 34만 명이 포로로 잡히는 망신을 당한 후 건국 된지 20년 만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유고슬라비아 코소보에 걸린 하켄크로이츠

 

독일과 타협하지 않았을 만큼 자존심이 강해 전쟁을 주도한 세르비아에는 독일의 사주를 받는 괴뢰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내부적으로 세르비아와 적대관계에 있던 크로아티아는 친 나치 정부를 수립하면서 새롭게 독립하는 등, 발칸반도의 거대 왕국 유고슬라비아는 사분오열되었다.

 

더불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22만 명이 생포 된 그리스도 함께 종말을 맞이하였고 발칸반도는 명실공히 독일의 앞마당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전광석화 같은 독일의 진격에도 살아남은 곳이 있었는데 바로 크레타(Crete)였다. 크레타는 고대 미키네 문명의 전설과 유적을 간직한 들의 고향으로써 에게 해(Aegean Sea)에 있는 그리스의 가장 큰 섬이다.

 

유럽문명의 고향인 그리스도 쉽게 점령당하고만다.

 

때문에 오로지 바다를 통해서만 점령이 가능한 곳이었다. 이곳에는 독일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그리스를 도우려 파견 된 영국원정대가 있었고 이들은 막강한 해군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리스 본토를 정복한 독일군 탱크들이 이곳으로 달려가 점령할 방법이 없었다. 마치 영불 해협에서 진격을 멈춘 프랑스 침공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또 흡사 세계 최강의 제국을 건설하고 있던 당대 최강국 몽골에 맞서 강화도로 피난을 떠나 장기간 항전한 고려와 같은 모습이었다. 바다에 가로막혀 영국 본토 공략에 좌절하였던 독일에게는 또 다시 강력한 해군을 버팀목 삼아 섬에서 항전의 의지를 불태우는 영국군이 눈에가시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크레타는 발칸반도와 중동,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요지다.

 

영국도 본토가 연일 독일의 맹폭격에 시달리면서도 이 작은 섬에 신경을 써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 크레타는 발칸반도에서 소아시아반도, 팔레스타인 및 북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에게 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섬이지만 전략적으로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중요하였다.

 

만일 이곳이 독일에 제압당한다면 독일은 제1차 대전 당시 동맹국이었던 터키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고 이를 발판으로 중동으로 진출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시리아나 팔레스타인 방향으로 진출한 독일군이 그 다음에 아르메니아를 거쳐 소련의 보물창고인 코카서스로 진격 할 수도 있었다.

 

롬멜의 DAK 는 리비아를 석권하고 있었는데 이때 독일이 팔레스타인마저 점령한다면 이집트의 영국군은 완전히 고립되어 지중해의 패권은 독일로 넘어갈 수도 있다.

 

반대로 팔레스타인에서 남진 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북아프리카에서 롬멜 아프리카군단(DAK)에게 연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이집트 주둔 영국군의 배후가 절단 될 가능성도 컸다. 이렇게 된다면 지중해가 독일의 수중에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될 가능성이 컸는데 거의 혼자 나치를 상대하고 있던 영국으로써는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였다.

 

비록 제해권을 영국이 가지고 있었지만 지중해 연안이 모두 독일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영국 해군도 어쩔 수 없이 작전 반경을 좁혀야 할 수밖에 없다. 영국의 입장에서 크레타와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있는 말타(Malta)는 지중해의 패권을 위해서 반드시 사수하여야 할 전략 거점이었고 이점은 독일도 잘 알고 있었다.

 

독일은 하늘을 통해 크레타를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해군력의 열세 때문에 영국 본토 상륙에 대한 생각을 접은 독일이었지만 크레타는 자신이 있었는데 바로 하늘 때문이었다. 영국은 하늘만을 통해 정복하기는 힘들었지만 크레타는 충분하다고 독일은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강력한 공군력 외에도 크레타를 충분히 점령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또 한 가지 비장의 전력이 독일에게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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