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공수작전 -4- 원대한 작전 그러나

 

 

 

 

 

 

 

 

 

  크레타 공수작전[4]   

 

 

 

- 원대한 작전 그러나 -

 

 

독일의 작전 개요는 다음과 같았다. 팔슈름야거를 공수 낙하시켜 크레타의 주요거점, 특히 공항을 확보한 이후 주력 후속부대를 항공편으로 속전속결 전개하여 최대한 빠른 시일 내 크레타를 완전 점령하는 것이었다. 사실 작전의 주요 목표는 지극히 단순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계획은 치밀하여야 했다.

 

제7공수사단은 팔슈름야거 중에서도 최고의 부대였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선발대로 선정된 부대가 독일 최초의 팔슈름야거 사단인 제7공수사단이었다. 3개 공수 연대로 구성 된 총 8,000여명의 최정예 제7공수사단은 크레타의 주요거점인 말레메(Maleme), 차니아(Chania), 리딤노(Rethymno), 헤라클리온(Heraklion)으로 각각 나뉘어 공수 낙하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공수 낙하 후 비행장과 목 지점을 신속히 확보한 후, 후속하여 항공편으로 들어올 제5산악사단이 안전하게 투입 될 수 있도록 최대한 교두보를 고수하여야 했다. 반면 독일의 침공을 방어할 연합군은 영국 제14여단, 영연방 뉴질랜드사단, 영연방 제19호주여단, 그리고 약간의 그리스군을 포함한 총 25,000여명으로 구성 되어 있었다.

 

3개 제대로 구분되어 각 거점에 공수 투입되기로 결정 되었다.

 

단지 병력면에서 본다면 이들 부대는 충분히 독일 침공군을 방어 할 만 하였다. 더구나 아무리 독일군이 난다 긴다 하여도 병력이 축차 투입될 수밖에 없어서 훨씬 유리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전 유럽을 순식간 석권하며 보여준 천하무적 독일군의 전투력에 대하여 막연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크레타로 오기 전에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추축국 군대와 싸웠던 경험이 있었다. 이탈리아는 가지고 놀았을 정도였지만 롬멜이 지휘하던 독일군은 전혀 달랐음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막강한 영국 해군이 보급로를 확보하여 주었지만 작은 섬인 크레타만 놓고 본다면 독일의 공군력은 영국군이 우위를 누리던 해군력의 이점을 상쇄시켰다.

 

영연방군 및 본토에서 패주하여 온 그리스군

 

그런 점에서 이번 작전의 핵심은 초전에 기습적으로 공수투입 될 제7공수사단이 얼마나 빨리 교두보를 확보하고 후속하여 주력이 투입될 때까지 영국의 저항을 물리치는가에 달려 있었다. 아무리 영국군이 독일군에 대해 두려움을 있다고 해도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항복할 그런 나약한 군대가 아님을 독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독일이 시도하려는 이러한 원대한 작전을 위한 참고자료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 이전에 어느 누구도 해보지 못한 사단 급의 부대를 공중강습 할 예정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이로 인하여 생각지 못한 여러 시행착오가 발생하였고, 이러한 준비부족은 아름다운 섬 크레타를 피로 얼룩지게 만드는 단초가 되었다.

 

작전의 성공은 얼마나 빨리 교두보를 확보하고 고수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독일은 제7공수사단을 수송하기 위해 제11항공군(Luftlotte)Ju-52 수송기 530기와 DFS-230 글라이더 70기를 동원하기로 예정하였지만, 문제는 이들이 이륙할 그리스의 비행장들이 좁아서 동시에 이륙시킬 능력이 되지 않았다. 수비군을 즉시 제압하기 위해 되도록이면 많은 병력이 동시 투입되어야 했는데 출발부터 그럴 여건이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제한으로 말미암아 독일은 어쩔 수 없이 제대 순서대로 축차투입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경무장의 공수부대가 소수로 나뉘어져 차례대로 투입되면 방어군에게 제압당할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아무리 팔슈름야거의 전투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적진 한가운데 소수의 제대로 나뉘어 뛰어드는 전술은 누가 보더라도 몹시 위험한 작전이었다.

 

Ju-52 수송기와 DFS-230 글라이더

 

더불어 되도록이면 방어자의 최초 공격거리 밖에 착지하여야 하는 것이 맞는데, 작은데다가 연합군이 요소요소에 촘촘히 배치 된 크레타는 구조상 어쩔 수 없이 방어 부대의 머리 위로 뛰어 내려야 하여야 했다. 한마디로 최초 투입 단계부터 대규모의 희생을 전제하지 않고는 작전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기술로는 심야에 기습적인 대규모 강습을 할 수 없었는데 이런 결과 벌건 대낮에 적의 배후도 아닌 방어군이 촘촘히 들어선 좁은 섬 한가운데서 작전을 벌여야 하는 위험을 제7공수사단은 처음부터 감수하여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기습의 효과를 달성 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투입 준비 중인 팔슈름야거, 그들은 앞으로의 비극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독일이 자랑하는 암호 체계가 뚫려 이미 영국은 독일이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어디로 공격할지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었다. 반면 그동안의 성과에 자만하였는지 몰라도 팔슈름야거를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뜨려야 한다는 참담한 사실을 독일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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