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세계 최대의 훈련 [ 上 ]

 

 

 

 

 

 

 

 

군은 언제 어디서라도 즉각 실전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교전 직전까지 훈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설령 수백 년간의 평화가 지속되고 있다하더라도 이러한 명제는 바뀌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당연히 승리하기 위해서인데, 부단히 훈련되어 있어야만 실전에서 최대한 시행착오를 막고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해 부단한 훈련이 필요하다.

 

창군 후 제대로 된 훈련이나 준비도 없이 6.25전쟁이라는 호된 경험을 당한 국군은 휴전이후 정예 강군으로 거듭나고자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 그러나 종전 직후는 나라도 깡통을 차고 있었을 만큼 가난하였고 군 또한 전쟁 중에 급속히 규모가 커졌음에도 워낙 기반 없이 빈약한 상태여서 자주국방 완수는 구호처럼 쉽게 이루어 질 수는 없었다.

 

휴전 협상이 개시되었을 때 우리가 가장 염려스러워 하였던 것은 유엔군의 철군이었다. 따라서 이를 염두에 두고 당시 미 8군 사령관이었던 밴 플리트의 주도로 1952년부터 국군의 전력 증강 사업이 순차적으로 실시되었는데, 이때 10개 사단이 차례대로 창설되었다. 일단 증강이 완료되면 유엔군이 철수하여도 상비 병력은 크게 문제없어 보였다.

 

전쟁을 거치며 국군은 양적으로 팽창하였으나 기반은 빈약하였다. (1953년 5월 국군 3군단 재창설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 부부)

 

하지만 이는 단지 병력만 늘인 것에 불과 하였다. 군비는 사람과 장비로 이루어지는데 이 모두가 경제적인 뒷받침 없이 유지하기에는 어렵다. 워낙 곤궁하였던 1960년대 이전 우리나라의 상황으로는 거대한 군대를 유지하고 자주국방에 충분한 무장 능력을 갖추기 어려웠다. 때문에 미국의 지원으로 북한의 도발을 겨우 억제 할 수 있었다.

 

이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현재도 공고한 한미 군사동맹은 우리 안보의 기반이 되고 있다. 조만간 국군이 전시작전권까지 완전 환수한다 하여도 한반도에 군사적인 충돌이 있을 경우 미국의 개입을 배제할 수 없을 만큼 관계가 긴밀하다. 때문에 군사적 공조와 이에 관련한 훈련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요구된다.

 

올 3월에 실시된 한미 해병의 쌍용훈련

 

전황이 위급하였던 1950714, 이승만 대통령이 서한으로 유엔군사령관에게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이양하면서 단일 지휘체계가 구축되었지만 전쟁 중 양국 부대 간에 문제가 발생한 적이 많았다. 비록 국군이 미국의 도움으로 창설 되었지만 양국군 간의 질적 차이가 너무 컸고 거기에다가 한 번도 연합훈련을 해 본적도 없었을 만큼 서로가 낯설었다.

 

처음에 미군은 국군의 입장을 고려하여 육군본부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국군에게 명령을 하달하는 형식으로 지휘하였으나 그렇다보니 전투 중에 종종 작전에 차질이 생겼다. 그러던 중 19515월에 있었던 치욕적인 현리전투 패전이후 미군이 국군을 직접 지휘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전황이 다급하자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작전권을 유엔군에 이양하였다.

  

이처럼 전쟁 당시의 시행착오와 휴전 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북한의 재침을 억제하기 위해서 한미 간의 긴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여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연합훈련이 당연히 요구되었다. 특히 휴전 후 미군이 대대적인 철군을 단행하여 병력 상으로 아군의 대부분을 국군이 차지하는 구조가 되면서 유사시를 대비한 훈련의 중요성은 더욱 대두되었다.

 

그렇다보니 한미 간 연합훈련은 시대와 목적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야전군 급 부대가 동원되는 대규모 기동훈련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보니 냉전시대 한미 연합훈련은 유럽에서의 나토(NATO) 기동훈련과 함께 자유세계 수호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따라서 전술적으로는 물론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였고 그 의의는 지금도 유효하다.

 

남한강 일대에서 연합 기동훈련 중인 모습

 

흔히 386이라 불리는 현재 40대 이상의 세대에서는 팀 스피리트(Team Spirit)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1976년 시작되어 1993년까지 실시되었던 군사 훈련으로 흔히 줄여서 TS라고 불렸다. 그런데 이 훈련은 국군, 주한미군, 미 본토에서 증원된 병력 외에 예비군 등 물경 20여 만이 참여하는 자유세계 최대 규모의 훈련이었다.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훈련이 펼쳐졌고 언론에서도 매일 상황을 소개하였을 만큼 팀 스피리트라는 단어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북한은 TS를 북침 준비라 선전하며 대대적인 대응 훈련을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많은 무리가 가면서 1990년대 경제 몰락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였다니 TS가 얼마만큼 거대한 훈련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69년 포커스 레티나 훈련 당시의 모습

 

그런데 대부분의 자료를 살펴보면 한미 간 연합훈련을 팀 스피리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포커스 레티나(Focus Retina)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도 한미 기동훈련의 핵심은 전시 미 본토 주둔 또는 동원 병력의 긴급 전개인데, 1969년 시작된 포커스 레티나 당시에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그러나 많이 알려진 것처럼 대규모의 한미연합 기동훈련은 포커스 레티나가 최초가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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