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세계 최대의 훈련 [ 下 ]

 

 

 

 

 

 

 

 

19591, 휴전 후 최대 규모의 기동훈련인 '눈 속의 용' 작전이 중부전선 일대에서 벌어졌다. 휴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긴장감이 높던 시점이어서 당시 각종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상황이 보도되었을 만큼 상당히 비중이 컸던 훈련이었다. 목적은 아군의 연합작전 능력 및 북한군 재침 시 침공로가 될 철원축선의 방어 능력 점검이었다.

 

1959년 1월 혹한 속에 실시 된 '눈 속의 용'작전

 

철원에서 의정부까지 이어지는 철원축선은 북에서 서울까지 내려오는 중요한 기동로로 6.25전쟁 때에도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주력이 돌파를 시도한 곳이다. 만일의 장차전에서도 대규모 기갑부대의 통과가 예상되는 천혜의 통로라 유사시를 대비한 훈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당연히 국군의 최정예 부대들이 엄중히 경계하고 있다.

 

종전 후 한미군의 연합훈련은 종종 있었으나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야전군 급 부대의 기동훈련은 이것이 최초인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에 국군 6군단, 1군단, 터키 1중대, 태국 1중대 등, 5만여 병력이 훈련에 참가하였는데 이는 당시까지 철수하지 않고 한국에 주둔하던 모든 유엔군 부대였다. 그 만큼 훈련의 중요성이 컸다.

 

 

주한미군 중 제일 먼저 철군을 단행한 미 45사단의 1954년 철군 행사 모습

 

19537월 휴전이 되었을 때, 국군은 55만의 대군으로 증강되어 있었지만 장비나 화력의 대부분을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였다. 그런데 1958년을 기점으로 참전하였던 대부분의 유엔군 부대들이 철수하였는데, 전쟁 기간 동안 9개 사단을 동원하여 그중 7개 사단을 항상 전선에 투입하며 유엔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미군도 마찬가지였다.

 

3개 군단으로 구성되었던 미 지상군도 제1기병사단과 제7사단으로 구성 된 제1군단을 제외한 모든 부대가 철군을 완료하였다. 따라서 1958년 이후 아군은 유엔군의 위임을 받은 미군이 계속하여 지휘는 하되 병력의 대부분은 국군이 담당하고 미군은 화력을 지원하는 형태로 체계가 서서히 바뀌었다.

 

눈 속의 용 작전 당시 사격 중인 국군 6군단 소속 M-4 전차

 

때문에 유사시 한미연합군을 효율적으로 지휘 통솔하기 위해 국군과 미군의 연합훈련이 필요하였다. 전시에 툭하면 지휘 혼선을 가져왔던 경험이 많아 이런 훈련은 상당히 중요하였다. 이에 따라 1959년부터 야전군 급 규모의 연합기동 훈련이 개시되었던 것이고 '눈 속의 용'작전은 그러한 거대한 노력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눈 속의 용'작전은 '팀 스피리트 OO'처럼 특별히 정해진 이름은 아니었고 1961'백호작전', 1965'롤 백(Roll Back) 작전' 처럼 그때마다 별도의 코드네임이 부여되었다. 때문에 겉으로는 이후 벌어진 훈련들과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것은 단지 이름의 상이함에서 오는 착각일 뿐이고 실질적으로 차이는 없었다.

 

'눈 속의 용'작전 당시 철원 축선을 따라 진격 하는 한미연합군

 

이처럼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의 재침 발생시 유엔군사령관의 지휘선 상에 있는 국군과 주한미군만으로 침략을 저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상비군 병력면에서 우리가 북한을 앞서고 있어 국군과 주한미군의 연합기동훈련은 외부 증원없이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한미 연합군간의 대규모 기동훈련 방법이 결정적으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이다. 정책적, 지리적인 이유로 주한미군의 베트남 이전 배치 움직임에 대한 논의가 공공연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는 자주국방 태세가 준비 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 우리 정부가 가장 우려하였던 점이었다.

 

월남전의 격화는 한반도 안보 환경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를 막고자 정부는 군단 급 규모의 국군을 월남에 파병하는 적극적인 대안도 실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 초, 7사단의 철군이 결정되자 정부는 한미동맹 준수를 위한 좀 더 확실한 대책을 미국에 요구하였다. 그러자 미국은 유사시 미 본토의 전력을 한국에 긴급 전개시키겠다는 전략을 제안하였고 이를 입증하고자 연례 기동 훈련이 결정되었다.

 

이때부터 실시 된 훈련이 앞글에서 언급한 '포커스 레티나' 였고, 1971'프리덤 볼트(Freedom Bolt)'로 변경 된 후 1976년 이후에는 '팀 스피리트'로 확대 발전하여 왔다. 현재는 주변 여건의 변화와 더불어 대규모 기동훈련은 대폭 축소되고 시뮬레이션 훈련으로 대체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2008년 초부터 실시 된 '키 리졸브(Key Resolve)'훈련이다.

 

자유세계 최대의 기동 훈련으로 평가되던 '팀 스피리트'

 

비록 포커스 레티나, 프리덤 볼트, 팀 스피리트 그리고 키 리졸브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이제는 국군이나 미군 내에서도 그 역사를 아는 이들도 많지 않지만 19591월 실시 된 '눈 속의 용'작전은 이후 자유세계 최대의 기동 훈련으로 발전한 한미연합 기동훈련 시리즈의 초석이었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그러한 밑거름이 있었기에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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