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2년) 최전선 연평도를 지켜야 할 이유

 

 

 

 

 

 

6.25전쟁은 발발 4개월 만에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쟁을 시작한 북한과 응전에 나선 대한민국 대신에 어느덧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주도하게 된 것이었다. 양측 모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공세를 번갈아 실시하며 한때 전선의 주도권을 잡기도 하였으나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는데 실패하였고 결국 휴전을 도모하게 되었다.

 

휴전을 논의하기 위해 1951년 7월 8일 최초 성사된 예비회담

 

그런데 전쟁 발발 1년이 경과한 19517월에 처음 회담이 시작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 어느 누구도 전쟁을 앞으로 2년이나 더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양측이 밀고 당긴 휴전 협상은 또 하나의 전쟁과 다름없을 만큼 치열하였다. 195364, 마침내 전쟁 포로 처리에 관한 마지막 쟁점이 타결되자 휴전은 조만간 기정사실화되었다.

 

엄청난 피를 흘렸지만 통일을 이루지 못한 상태로 총성이 멈춘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정부와 국민은 분노하였지만 전쟁을 주도한 미국과 중국 모두 지쳐 있었다. 따라서 그동안 발목을 잡아오던 문제가 해결되자 서둘러 휴전 조인식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2년 동안의 협상을 통해 전쟁을 간신히 끝냈음에도 모든 쟁점 사항이 완벽히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2년의 협상 끝에 휴전이 되었지만 모든 쟁점 사항이 완벽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미처 언급하지 못한 여러 부차적인 문제들도 휴전을 막지는 못하였을 만큼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든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의지가 컸다. 그렇다보니 휴전 협정의 발효이후 문구로 정확히 명기되지 않았어도 통보와 묵시적 동의에 의해 세부적 사항이 정해진 내용이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NLL(북방한계선)이다.

 

유엔군사령부는 군사분계선(DML)과 비무장지대(DMZ)와 달리 휴전 당시에 별도의 논의가 없었던 해상 분계선과 관련하여 NLL을 선포하고 즉시 북한에 통보하였다. 아군은 군사분계선을 연장하여 아군이 장악한 도서 인근 바다에 NLL을 설정하였는데, 한강하구에서 연평도를 거쳐 백령도에 이르는 선이었다. 우리는 이를 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다.

 

군사분계선을 연장하여 NLL을 선정하고 북에 통보하였다.

  

아군의 통보에 대해 당시 북한은 아무런 반대도 표시하지 않았다. NLL의 선포로 인하여 북한이 당장 얻은 이익이 컸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NLL의 설정은 휴전당시 북쪽에 아군이 확보하고 수많은 도서들을 우리가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선언한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전쟁 당시 제해권을 확보하고 있던 아군은 북한 동서해의 주요 도서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었다. 이는 전쟁 내내 뒤통수가 간지러웠을 만큼 북한에게 가시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중에는 평양으로 가는 길목인 대동강 하구의 석도와 초도도 있었는데 이곳 부근은 현재 북한 해군의 전진 기지가 있을 만큼 전략적 요충지다.

 

대동강 하구를 감시할 수 있는 초도와 석도를 휴전 직전까지 아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당시 주둔한 아군 병력이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섬들의 위치가 언제든지 내륙으로 진격할 교두보가 될 수 있어 군사적으로 중요하였다. 따라서 휴전 당시 확보한 도서를 기준으로 그대로 NLL을 책정했다면 서한만 일대까지 현재 우리 관할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백령도까지만 관할 지역으로 정하고 그 이북의 도서를 포기하였으니 북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반가웠던 것이었다.

 

따라서 NLL을 다행스럽게 생각한 북한은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를 철저히 준수하였다. 그런데 1973년부터 북한이 NLL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긴장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는데 미 7사단이 철수하는 등 주변정세가 급변하였던 이유도 있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국력에서 북한이 대한민국에 뒤처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북한 체제에 이상이 생겨 체제 결속이 요구될 때 NLL 침범이 노골화 되었다.

 

경쟁에서 뒤지기 시작하고 점차 그 격차가 커질 것으로 판단한 북한은 체제 결속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계속 분쟁거리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경우에 따라 국지전이 가능한 서해 NLL은 좋은 공작 대상이 되었던 것이었고 이후 북한 체제에 변고가 있을 경우 이곳에 대한 도발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최근에도 수시로 민간 어선을 남하시키는 것처럼 NLL 일대에 긴장을 유발하고 있지만 지난 201011월에 있었던 북한의 기습적인 연평도 포격은 가장 대표적인 도발 사건이었다. 그 이후 1년 만에 북한 정권에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은 도발 당시에 이미 북한 체제 내부에서 상당한 위기 상황이 조성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0년에 있었던 연평도 포격 당시 즉시 대응이 이루어졌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선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부족하였다는 사실이 공개되었고 그 만큼 열악하고 부족한 환경에서 해병대가 고군부투하고 있다는 점도 알려졌다. 최근 적진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스파이크 미사일이 조만간 배치 될 것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전력 증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실 만시지탄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해안포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스파이크 미사일 배치 소식이 전해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마지막 사례가 되기를 기원한다. (스웨덴군이 해안 경비용으로 사용 중인 스파이크-ER)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NLL은 우리가 휴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그어진 최소한의 방어선이고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 5도는 자유라는 숭고한 이념과 가치를 지키는 교두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있더라도 사수하여야 할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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