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속에서 논의 된 새로운 서울

 

 

 

 

 

 

 

 

 

서울은 6.25전쟁이 발발한지 불과 6개월 동안 적에게 두 번이나 피탈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특히 1950628일부터 928일 사이에 있었던 첫 번째 인공치하는 그동안 하나의 민족이었던 남북이 불구대천지 원수가 되도록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계급투쟁을 선동하며 백주 대낮에 거리낌 없이 테러를 가하는 공산주의자들의 행태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잔악한 인간들의 광기였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은 잔혹한 광기를 연출하였다.

 

따라서 1.4후퇴 당시에 서울 소개령이 내려졌을 때, 거동이 불가능한 이들을 제외 한 거의 모든 시민들이 북풍한설에도 불구하고 피난길에 올랐고 이때 가장 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하였다. 그만큼 매서운 겨울 추위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 지난 여름에 있었던 침략자들의 학정이었다. 그렇다보니 중공군이 14일 서울을 재점령하였을 때 마치 유령도시처럼 텅 빈 상태였다.

 

혹한에 수많은 이들이 피난길에 나섰을 만큼 침략자들이 저지른 폭력은 잔인하고 무서웠다.

 

이처럼 서울이 피탈, 탈환, 재피탈, 재탈환을 반복하며 전선의 중심에 계속하여 놓이다보니 엄청나게 파괴된 것은 불문가지였다. 신나게 서울에 무혈입성한 중공군이 추위를 피할 곳이 없어 쩔쩔맸을 만큼 그야말로 폐허 그 자체였다. 그러한 참담한 사실은 다시 부산으로 피난 간 대한민국 정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 한창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내에서 파괴된 서울의 재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였다.

 

서울은 극심하게 파괴되었고 재건이 논의 되었다.

 

곧바로 정부에 '수도재건위원회'가 결성되었고 195137일 부산에서 첫 회의를 가졌는데, 재미있는 점은 파괴된 도심을 재건하는 것보다 허허벌판에 새롭게 수도를 만드는 방법, 즉 신도시를 구상하였다는 점이다. 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서울이 무려 500년이나 된 고도(古都)다 보니 현대적인 도시로 변화시키는데 한계가 많다는 점을 언급하였고 이왕 전쟁으로 파괴된 김에 차라리 새로운 곳에 수도를 만들자는 의견이 많았다.

 

서울은 오래된 도시라 개발에 어려움이 많았다. (1957년의 모습)

 

이때 새로운 서울이 위치할 지역으로 한강 서쪽의 영등포에서 부평에 이르는 이른바 부평평야지역이 집중 거론되었다. 기존 서울은 역사적인 상징성이 큰 사대문 안만 복구하고 정치, 경제, 문화, 거주 관련 시설은 허허벌판에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이 좋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당시 자료를 살펴보면 거주 형태로 '아바트(아파트)'를 언급한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그만큼 당시에도 서울의 주택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51년 2월 16일 새로운 서울 건설에 대한 보도내용

 

하지만 1952년 이후 이와 관련한 후속 자료를 찾을 수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새로운 서울의 건설은 단지 논의로만 끝났던 것 같다. 전쟁이 한참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설령 계획이 수립되었어도 제대로 진행될 수 있었을지는 사실 의문이다. 더군다나 1960년대 이전 우리나라의 경제 여건을 고려한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신도시 개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65년 청계천 일대의 모습에서 보듯이 당시까지 경제 수준은 열악하였다.

 

그런데 영등포에서 부평에 이르는 지역의 개발 구상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1930년대에 일제가 이 일대를 동양의 맨체스터(Manchester)로 만들겠다며 대규모 공업 벨트 설계까지 마쳤고 부평 일대에는 실제로 많은 군수 공장들이 건설되기도 하였다. 비록 태평양전쟁으로 계획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으나 이후 당시까지 완공된 시설과 처음 계획된 설계를 기초로 해서 1960년대에 구로동에서 부평에 이르는 수출산업공단이 조성되었다.

 

새 서울의 중심이 될 수도 있었던 1954년 당시 부평공설시장

 

비록 야심만만했던 신수도 계획은 흐지부지 되었지만 그 만큼 부평평야 일대가 지리적 접근성이나 기존 도심과의 연계성에서 수도 예정지로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비록 당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최근 개통된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 일대인 중동, 상동, 삼산동, 부개동에 이르는 당시 신수도 예정지가 차례대로 대단위 신도시로 개발되게 된 것을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역사라 생각된다.

 

비록 신수도는 아니지만 1990년대 이후 대단위 신도시가 되었다.

 

비록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혼란스러운 전란의 와중에도 새로운 수도의 건설을 심각하게 고려하였을 만큼 당시에도 국가의 재건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만일 새로운 서울이 이곳에 건설되었다면 현재 서울의 주요 중심지역인 강남의 위치도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랬다면 싸이의 히트작인 강남스타일의 제목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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