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철교의 굴곡사

 

 

 

 

 

 

 

 

 

6.25전쟁 초기에 너무나 서둘러 한강의 다리들(현 철교와 한강대교)을 폭파시켰다. 하지만 엄청난 인명 피해에도 불구하고 정작 적의 남침 속도를 지연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이 사건은 후세의 사가들로부터 두고두고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아군의 반격이 개시되자 끓어진 다리들은 오히려 진격을 더디게 하는 장애물로 바뀌었다. 서울을 수복하고 반격에 나선 아군에게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서울 수복 직후인 노량진에서 촬영된 파괴된 한강철교의 모습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하였지만 당시 UN군의 보급로는 상당히 한정되어 있었다. 기간 교통망인 경부선 철도는 단기간에 복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곳곳이 파괴되었고 국도는 지도에 길이 표기되어는 있었지만 실제로는 간신히 차 한 대가 지나갈 만한 소작로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이런 교통망을 이용하여 부산에서 38선 이북까지 엄청난 보급 물품을 원활히 공급하기는 상당히 힘들었다.

 

교통망의 파괴가 심각하여 보급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다.

 

따라서 UN군은 한반도의 허리 부근인 인천항에 물품을 하역하여 육로를 이용하여 보급품을 전선으로 보내는 루트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한강이북으로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한강을 도강하여야 했다. 비록 부교를 설치하였지만 용량이 부족하였고 중량의 장비를 신속히 도하시키는데 많은 문제가 있었다. 보급이 지체될수록 북으로 달려가던 전투 부대들은 문제가 커졌다.

 

부교를 이용하여 장비와 병력을 도강시키는 모습

 

결국 서둘러 한강 철교를 복구하기로 결정 하였는데 시간이 없다보니 폭파로 끓어진 기존 교량의 복구와는 별개로 옆에 임시 철교와 부교를 놓아 군용으로 우선 이용하고자 하였다. 일사천리로 공사가 진행된 결과 19501019일 미 제62공병단이 가설재를 이용하여 제작한 임시 철교가 용산과 노량진 사이에 놓임으로써 4개월 만에 한강을 가로 질러 다시 열차가 운행 할 수 있게 되었다.

 

대통령도 참석한 임시 철교의 개통식

 

임시 철교의 개통식은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직접 참석하였을 정도로 감격적인 행사였고 이제는 38선 이북으로 진격하여 적을 격멸하고 통일을 달성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즐거운 상상도 얼마안가 일장춘몽으로 바뀌고 다시 서울을 포기하기로 결정되자 임시로 응급 복구하여 놓은 철교는 물론 옆에서 한강을 가로지르던 부교들의 운명도 순식간 바뀌었다.

 

1.4 후퇴 당시 한강에 설치된 부교의 폭파장면

 

중공군의 대규모 참전으로 195114일 아군은 서울을 다시 적에게 내주고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후퇴하여야 했다. 교량을 이용할 수 있는 우선순위에서 밀린 피난민들도 도강을 신속히 완료 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강이 동결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한강에는 가설 교량들을 파괴하는 폭발음과 섬광이 울려 퍼졌는데 6개월 전과 달랐던 점은 안전하게 아군과 피난민이 후퇴를 완료한 상태여서 참혹한 피해는 재현되지 않았다.

 

 

결빙된 한강을 건너 피난 가는 피난민들의 모습

 

물론 이번에도 다리를 파괴하였다고 공산군의 진격이 멈춘 것은 아니었고 다만 조금 지연시켰을 뿐이었다. 하지만 후퇴 시에 이런 작은 시간도 전열 정비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평택까지 밀려났던 아군은 반격에 나서 314일 서울을 재탈환하였고 이후 전선은 19537월 휴전 때까지 현재의 DMZ을 중심으로 소강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강철교의 복구가 시작되었다.

 

1951월 6월 12일 두 번째로 착공된 한강 임시 철교의 개통식

 

미 제453건설공병단에 의해 또 다시 임시 철교가 놓이면서 전쟁 발발 1년만인 1951612일 밴 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을 비롯한 고위층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되었다. 그리고 총 3개의 교량으로 이루어진 한강철교들은 이듬해부터 차례대로 정식 복구에 나섰고 휴전 후인 1957년 마지막으로 C교가 개통되면서 모든 복구가 완료되어 전쟁의 흔적을 간신히 치유하였다.

 

복구되어 현재도 사용 중인 한강철교들은 아픈 역사의 증인들이다.

 

오늘날 하루 평균 1,300여회의 열차가 왕복하는 한강철교는 강 상류부터 완공 순서대로 B, A, D, C교의 4개의 다리로 이루어졌는데 1995년 완공된 D교를 제외하고 모두 6.25전쟁 당시에 처참하게 파괴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제 이들 철교들을 건너면서 그러한 과거를 아는 이들도 많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잊어서는 곤란하다. 오늘날 평화스러운 일상도 그런 아픈 과거를 극복하였기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Trackbacks 0 / Comments 1

댓글 남기기

블로그 인기 키워드

Tistory Cumulus Flash tag cloud by requires Flash Player 9 or better.

링크

re_footerlink.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