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의 마지막 혈전 -끝-

 

 

 

 

 

 

 

독재자의 광기

 

194412, 독일군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다. 첫째, 공세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예비대가 절대 부족하였다. 1선의 돌파를 담당한 디트리히와 만토이펠의 부대 외에 사실상 후속하여 전선을 인계받을 부대들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 공격 도중 최전선의 돌격부대가 소모되면 이를 대체하거나 충원 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인데, 사실 이런 점은 작전이전부터 독일군 지휘부가 가장 염려하던 것이었다.

 

최전선의 정예들도 예비대의 지원이 없으면 공격력이 둔화 될 수밖에 없다.

 

둘째, 심각한 연료부족 때문에 독일군의 특기인 저돌적인 기동이 제한을 받고 있었다. 독일의 중전차는 돌파의 핵이었지만, 기름 먹는 하마들었는데 독일에게는 이들을 먹여 살릴 충분한 연료가 없었다. 독일은 1주일 정도 공격을 유지 할 만큼의 비축 분밖에 없었고 결국 작전시간의 경과는 독일에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계획에는 미군 유류를 탈취하기로 예정되었지만 미군은 미리 이를 파괴하여 노획을 차단하였다.

 

많은 수가 연료부족으로 유기되었다.

 

셋째, 미군의 대응전략이다. 미군은 1940년 허무하게 종말을 고한 프랑스와 영국 원정대의 전철을 되밟지 않았다. 미군은 충분한 예비가 있었고 상황에 맞게 즉응태세를 갖추어 부대의 이동전개에 들어갔다. 콜린스가 지휘한 북부의 미 7군단이 뮤즈강 동쪽으로 신속히 전개하여 위기에 처한 미 18군단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이것도 무려 700킬로미터를 달려온 패튼이 지휘한 미 제3군의 이동 전개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돌파구를 틀어막기 위한 미군의 응전과 기동은 눈부셨다.

 

특히 전략요충지 바스토뉴를 사수하며 보여준 미 101공수사단의 분투는 포위만 당하면 쉽게 항복하던 이전의 프랑스, 영국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군대였다. 결국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독일의 진격은 둔화되고 시간은 흘러갔다. 이제 히틀러는 초조해졌고 돌파의 주역이었던 독일군 기갑부대도 미군이 후퇴 할 때 미처 유기하지 못한 기름에 겨우 의지할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

 

미군의 결사적인 응전에 독일은 놀랐다.

 

1223일이 되자 저기압이 물러가고 안개가 걷히며 하늘은 쾌청해졌다. 또한 좋아진 시계와 더불어 찬바람과 함께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땅바닥은 단단하게 굳어져 버렸다. 연합군은 이날부터 27일까지 하루에 무려 5,000소티 이상의 항공기를 동원해 독일군에게 폭탄의 비를 퍼부었다. 26일에 패튼이 101공수사단을 구출해내었고 오히려 앞으로 깊숙이 진격한 만토이펠의 부대가 절단 될 위기에 빠져버렸다.

 

독일은 하늘에서 불벼락을 맞았다.

 

194515, 선두에 서있어서 이제는 역으로 고립 될 위기에 처한 만토이펠의 제5기갑군은 전략적 후퇴를 단행하였고 이로써 독일군의 돌출부는 붕괴되었으며 히틀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독일은 전차 600, 항공기 1,600기를 잃거나 유기 할 수밖에 없었고 7만 명의 사상자와 5만 명이 포로로 잡히는 참패를 당했는데 중요한 것은 이것은 그 당시 독일이 가졌던 마지막 전력이었다.

 

독일은 한 달 동안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결국 패망을 앞당겼다.

 

독일이 이러한 무모한 마지막 도박으로 얻은 것은 연합군이 원래 계획한 독일 본토로의 진격을 6주 정도 연기시켰다는 점이라고는 하나, 가용자원을 단 한 번의 도박에 몽땅 날려버려 오히려 패망을 6개월 앞당기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즉 히틀러가 마지막 도박으로 도박을 벌였든 아니면 쓸데없는 만용을 부렸든 결과는 사실 처음부터 달라질 것은 없었다.

 

전쟁터에서 서로를 구호하는 이런 낭만적인 모습을 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오히려 이 기간 중 포로학살과 같은 범죄행위도 스스럼없이 벌어졌다.

 

분명히 패전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정치적으로 전쟁을 종결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아 국민과 국가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길을 외면하고 히틀러 자신의 자존심만을 위하여 쓸데없는 확전을 전개함으로써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마치 빛에 몰린 가장이 회생제도를 신청하여 가정을 일으킬 생각은 하지 않고 애기들 돼지저금통까지 들고 도박장으로 달려간 꼴과 같다.

 

결국 역사에는 고집불통 독재자의 무모한 도박으로 기록되어졌다.

 

사실 유사 이래 국민들이 나서서 전쟁을 반겼던 적은 없었다. 대부분의 전쟁은 소수의 위정자의 의지에 의해 개시되고 판을 벌려왔지만 고통은 항상 보통 국민들의 몫일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키고 판을 키울 줄만 알았지, 자신을 희생하면서 전쟁을 종결하지는 못한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역사에는 영원히 악인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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