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독이라 불린 장군 -2- "빠른 참전, 부족한 준비"

 

 

 

 

 

한국전쟁 발발 당시, 일본에 주둔 하고 있던 미 8군은 제 1기병, 7, 24, 25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 가장 전투력이 좋다고 평가되던 24사단에서 차출하여 급편 된 스미스 특임대(Task Force Smith's)1950630일 한국에 전격 투입되었고, 동시에 워커 중장을 비롯한 미 8군 지휘부가 77일 대구로 사령부를 즉각 이전했다. 요즘은 재현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조치였다.

 

한국으로 이동하기 위해 수송기에 오르는 스미스 특임대 이처럼 미군의 참전은 모두가 놀랐을 만큼 빨랐다.

 

그런데 적들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미군의 개입이 빨랐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미군이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로 참전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구조적으로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 한반도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 부대들은 그 동안 미군의 통치를 일본이 고분고분 받아들이다보니 편제가 대폭 축소되었다. 그래서 훈련 양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었고 어느덧 2차대전 당시의 용맹함은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휴양지 같은 주일 미군기지 주변의 모습

 

이러한 와중에 참전한 미 8군 사령관 워커에게 부여된 임무는 간단했다. 공산군을 격퇴해 38선 이북으로 몰아내고 전쟁 전 상태로 한반도를 원상 복구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참전한 미군은 스미스 특임대의 참패와 연이어 투입된 24사단 본진의 궤멸을 겪으면서 변화할 수 밖에 없었다. 초전에 심각한 패배를 맛본 워커는 전투를 멈추고 전선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작전을 숙의 중인 워커와 딘 미 24사단장 얼마 후에 패배한 딘 사단장은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다.

 

아직 일본에는 한국으로 건너오지 못한 부대들이 많았지만, 사실 이들도 감편된 형태여서 즉시 전투에 투입되기 곤란하였다. 따라서 본토로부터의 충분한 증원을 받아 부대를 재편해야 되는데 한반도의 정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자 시간이 모자랐다. 때문에 워커는 최대한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면서 시간을 버는 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714일 한국군의 작전권까지 인계받은 워커는 모든 지상군을 통합 지휘했다.

 

워커는 국군의 작전권까지 인계받았지만 자존심을 고려하여 육군본부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국군을 지휘하였다.

 

워커는 8월 말이 되어야 아군이 반격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때문에 지금 상태로 1개월 이상을 버텨내야 했는데 문제는 전선을 고착화시키기 힘들만큼 공산군의 공세가 거셌다는 것이었다. 결국 715일 금강 방어선이 우회돌파를 당했고 아군은 소백산맥을 넘어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아군의 정면에 일부 부대를 대치시키면서 주력은 측면으로 투입해 배후를 절단하는 작전을 주로 구사했다.

 

금강 방어선을 지키던 미군

 

7월 말까지 이러한 작전이 효과적으로 먹힌 이유는 미군이 투입되었음에도 아직까지 북한군의 전력이 월등하여 양면 공격이 가능했을 뿐 아니라 전선이 넓어 부대 간의 연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북한군이 우회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워커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북한군이 침투할 수 있는 간격을 먼저 메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선을 좀 더 축소시켜야 했다.

 

그는 낙동강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기로 결심하였다.

   

한반도의 지형을 분석한 워커의 눈에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는 천혜의 방어선이 들어왔다. 그는 이곳을 저항거점으로 삼기로 결심한다. 흔히 워커 라인(Walker Line)이라 불린 낙동강 방어선은 이처럼 상대보다 적은 전력으로 북한군의 우회 돌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고육책에서 시작되었다. 워커의 의지에 따라 시급히 설정 된 낙동강 방어선으로 81일부로 완전히 철수하도록 모든 예하부대들에게 명령이 내려졌다.

 

이제 낙동강은 자유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이로써 지난 7월 한 달 동안 중과부적의 상태로 많은 피해를 동반하였던 지연작전이 종식되고, 전쟁 개시이후 처음으로 아군 부대들이 완전히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90퍼센트를 적에게 내어주고 그동안 적의 진공을 둔화시키기 위해 7만 여명의 병력이 손실되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여야 했다. 대신 아군은 증원 부대의 이동에 필요한 시간을 얻었고 적에게 계속적으로 소모를 강요하여 약화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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