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독이라 불린 장군 -끝- "전선에서 생을 마감하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의 주역인 미 10군단을 미 8군에 배속시키지 않고 별도로 분리시켰다. 내심 10군단을 휘하에 배속받기를 원했던 워커는 당황했으나 감히 맥아더에게 항명할 수는 없었다. 결국 워커는 미 1, 9군단, 국군 2군단으로 구성된 미 8군을 지휘하며 서북부인 평안도 지역으로 북진하였다. 반면 미 10군단은 국군 1군단을 배속 받아 함경도 방향으로 북진했다. 맥아더는 북진경쟁을 유도했던 것이다.

 

맥아더는 부하들의 경쟁을 유도하여 북진을 개시하였다. (인천상륙 직후 미 10군단장 알몬드와 전선을 시찰하는 모습)


반면 워커는 다른 방식으로 북진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는 미 10군단을 배속 받아 선봉대로 내세우려하였다. 낙동강에서부터 전진하던 미 1군단은 아직 수원 이남에 있었고 미 9군단은 군산까지 진출했을 뿐이었다. 그는 보급을 고려할 때 아무리 노력해도 38선에서 모든 부대를 집결시켜 진격을 개시한다면 보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게 되고 그럴 경우 적에게 탈출 및 재편성 시간을 허용하는 결과를 가져오리라 판단했다.


북진이 개시되었지만 상당수의 부대가 아직 후방에서 작전 중이었다.

 

따라서 서울 북방에 있는 미 10군단이 평양으로 진격하면 미 1군단이 돌파구를 확대하여 평양 동쪽까지 후속 병진한 후 원산으로 방향을 전환해 청천강~원산선을 제압하면서 더불어 국군 1군단이 동해축선을 따라 북진하여 원산에서 미 1군단과 합류하도록 생각하였다. 그의 계획은 대다수 지휘관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채택되지 못하였다. 맥아더가 자신의 의지대로 북진하겠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이었다.


워커의 계획이 합리적이었지만 맥아더의 의도대로 북진이 벌어졌다.

 

비록 자기 구상과 동떨어진 진격이었지만 워커에게는 적의 심장인 평양을 점령하라는 기분 좋은 임무가 부여되었다. 선봉에 나선 부대는 지금도 미군 전투서열 1위인 미 1기병사단과 국군 1사단이었다. 마침내 1019일 국군 1사단이 평양을 점령하였고 북한의 최종 방어선이라고 추정되던 청천강 선까지 유엔군이 밀고 올라갔다. 이제 북한군의 저항은 더 이상 없었고 전쟁은 쉽게 끝날 것으로 보였다.


갑자기 등장한 중공군으로 인해 전세는 다시 역전 당하였다.


하지만 1025일 초산, 운산 일대에 중공군이 등장하면서 전쟁은 전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크리스마스 종전을 목표로 하였던 유엔군은 중공군의 대대적인 역공에 막혀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이제 워커에게 부여된 임무는 단 하나, 최대한 후퇴 속도를 조절해 전선을 최대한 빨리 고착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공군에 놀라 도망치기 바쁜 일선부대들에게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어야 했다.

 

 

워커는 일선부대를 독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워커는 바닥까지 떨어진 예하부대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최전선을 찾아다녔다. 19501223일 워커는 방어전을 펼치던 미 24사단과 영국군 27여단을 표창하기 위해 운전병만 대동하고 의정부 북방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오전 11시 경 워커를 태운 지프가 현재의 서울 도봉동 596-5번지 지점을 통과할 때 마침 반대편에서 남하하던 국군 6사단 트럭과 충돌했고 이 사고로 그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지난 2010년 워커가 순직한 현장에서 벌어진 추도식

 

한마디로 아주 중요한 시기에 당한 명장의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그의 이름이 우리 가까이에서 부활한 것은 1963년 국내에 변변한 시설이 없어 휴가 때마다 일본이나 태국으로 놀러 가는 주한미군들을 유치할 목적으로 한강변에 설립된 호텔의 이름을 워커 힐(Walker Hill)로 명명하면서부터다. 전쟁 영웅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는데 그만큼 워커가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소박한 워커의 묘


비록 맥아더의 카리스마에 가려 세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고 또한 북진 시 자신의 뜻대로 작전을 펼칠 수도 없었으나 부지런한 마당쇠처럼 동분서주하며 대한민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불굴의 신념으로 극복한 워커는 한국 현대사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인물이다. 이역만리를 찾아와 낯선 남의 땅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리고 여기서 생을 다한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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