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 그 아쉬웠던 역사 -4- "북새통이 되어버린 인천항"




 

 


아군의 주력을 둘로 나누는 부분에서부터 문제가 붉어져 나왔다. 10군단이 인천상륙 후 서울을 수복하고 남진하여 낙동강교두보를 박차고 나온 미 8군과 오산에서 연결에 성공함으로써 6.25전쟁의 전세를 순식간 역전시킨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하지만 미 10군단을 그대로 회수하여 동해안에 상륙시킨다는 것은 엄청나게 잘못된 전략이었다. 한마디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던 것이었다.



서울 환도식 하지만 이후 북진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였다.



 

유엔군이 인천을 먼저 수복 한 것은 전략적으로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인천이라는 새로운 보급로가 개척 된 것만으로도 부산을 통하지 않고 작전이 수월하게 진행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경부선 철도 외에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었고 이마저도 폭격으로 많이 손상된 점을 감안한다면 한반도 중심에 물류항을 확보하였다는 것은 장차 전쟁 수행에 당연히 많은 이점이 있었다.

 

 


전쟁 중 하물을 하역하는 인천항의 모습

 

 

 

하지만 미 10군단의 원산상륙은 천신만고 끝에 확보한 인천항이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스스로 약화시켜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맥아더는 서해안의 인천에서 재미를 보자 동해의 주요항인 원산으로 또 한 번의 상륙전을 감행하여 교두보를 삼으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재미를 보았던 것처럼 평양을 동쪽에서 공략할 또 하나의 축선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 때문에 그러하였을 수도 있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은 원산에 상륙하여 평양 측면을 공격하였다.

 

 

 

그런데 군단은 재편이 유동적인 조직이었음에도 맥아더는 상황에 맞게 부대를 조직할 생각은 하지 않고 미 10군단의 예하부대인 미 해병 1사단과 미 7사단을 그대로 편제시켜 원산으로 이동시켰다. 그렇다보니 서울을 거쳐 38선 바로 밑까지 진격한 미 10군단의 병력과 장비를 빼내려 인천항은 상륙작전 당시 못지않게 북적 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북상하고 있던 미 8군을 위한 군수물자의 하역이 늦어졌다.




인천항은 북새통으로 변하였다.

 

 

 

좁은 항구에서 한쪽에서는 이미 상륙하였던 부대를 회군시켜 다시 탑승시키고 또 다른 편에서는 미 8군을 위한 군수품을 하역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낙동강으로부터 치고 올라온 미 8군은 점차 길어지는 경부가도 때문에 후속 보급에 있어 커다란 역할을 담당할 인천항에 많은 기대를 하였지만 미 10군단의 해상이동 준비로 인하여 보급량이 급격히 제한되었다.




한반도 중앙에 물류 거점을 확보하였지만 비효율의 극치를 보였다.

 

 

 

결국 38선 이북으로 북진 시 보급의 제한을 받은 미 8군은 예하부대를 동시에 진격 시키지 못하고 먼저 38선 인근에 도착한 미 1기병사단부터 공격에 나섰는데, 그때가 104일로 고 동부전선에서 아군이 북으로 내달린 지 이미 3일이 지난 후였고 나머지 후속 부대들은 보급이 완료된 후 순차적으로 북진 시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러한 지체는 북한군에게 후퇴할 수 있는 천금 같은 시간을 벌어주었다.




함경남도 이원에 상륙한 미 7사단



게다가 미 10군단이 인천으로 빠져나와 한반도를 빙 돌아서 이동한 전략은 엄청난 실책이 되었다. 원산 앞바다에 부설된 기뢰에 걸려 보름 가까이 오도 가도 못하여 하릴없이 바다 위에 떠있어야만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였고 그러한 와중에 동해축선을 따라 북진하던 국군 1군단이 원산을 점령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혼란한 북진 초기의 모습은 이후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미 10군단이 바다 위를 떠돌 때 국군 1군단이 원산을 점령하여 버렸다.

 

 

 

결론적으로 19509월말 38선까지 북진 하였을 때, 전선에 도열한 순서대로 군단을 재편하여 함경도 지역으로 진출할 부대는 추가령 구조곡을 따라 원산으로 북진시켜 동해축선을 따라 북상중인 국군 1군단과 함께 함경도 지방으로 진출시켜야 하는 것이 맞았다. 결국 인천항을 확보하였으면서도 물류난을 겪은 미 8군은 미 8군대로 작전의 차질을 가져왔고, 10군단도 결국 시간만 낭비하였기 때문에 원산상륙은 실패한 작전이 되었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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