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의 지휘관 -4- "신중한 진격 그리고 위기"

 

 

 

 

 

 

 

 

 

 

 

 

스미스 사단장이 알몬드의 계획에 반기를 들었던 이유는 갈수록 험준해 지는 한반도 북부 지형과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 때문이었다. 그는 이런 변수를 고려하였을 때 확실한 보급루트를 확보하지 않고 부대를 무작정 이동 전개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작전이라 판단하였다. 그렇지만 상급지휘부의 결정에 따른 지시를 거부하지는 못하였고 결국 안전한 진격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스미스는 명을 받들어 부대를 이동시키기 시작하였다.

 

 

 

산악에 난 좁은 험로를 따라 고원지대로 진격하는 작전은 어쩔 수 없이 종대방향으로 길게 늘어져 진격하여야했고 당연히 부대 간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 주요 거점마다 확실하고 안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 길어진 진격로를 안전하게 담보하는 지름길이다. 좁은 통로를 따라 나갈 때 만일 측면에서 공격을 받으면 부대가 절단되거나 후방이 차단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산악으로의 진격은 그 이동로가 한정 될 수밖에 없다. (협궤인 장진선 철도를 따라 진군하는 해병 1사단)

 

스미스는 항구인 흥남으로부터의 병참선을 유지하며 전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신중한 소걸음 식의 진군으로 말미암아 하루에 1마일 정도밖에 전진하지 못하였지만, 스미스는 주요 거점마다 통신소와 병참기지를 만들었고 하갈우리에는 수송기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임시활주로까지 건설하였다. 따라서 미 10군단의 여타부대들과 비교하여 미 해병 1사단의 진격은 상당히 느렸다.

 

 

 

 

스미스는 주요 거점마다 병참기지를 만들고 부대를 진격시켰다.

 

 

 

이에 비한다면 미 7사단, 국군 수도사단은 앞뒤 가리지 않고 압록강가의 혜산진을 향하여 마치 대나무 가르듯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었고 국군 3사단 또한 함경북도 일대를 석권하여 두만강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었다. 따라서 알몬드 미 10군단장은 예하부대 중 진격 속도가 유독 느린 미 해병 1사단에 대해 불만을 가졌고 수시로 신속한 진격을 재촉하였다. 하지만 스미스는 자신의 뜻대로 길을 갔다.

 

 

 

혜산진으로 진격한 7사단은 이미 압록강변에 도달하였다.

 

 

결국 우려대로 10월말이었음에도 함경도 고산지대의 겨울은 이미 시작되었다. 많은 눈과 함께 북풍한설이 몰아쳤고 기온은 순식간 영하로 곤두박질 쳤다. 결국 스미스의 이러한 조심스런 전진은 차후 악조건에서 미 해병 1사단이 생존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들의 우측에서 함경도 오지 깊숙이 진격하였던 미 10군단 전체를 구원하는 밑받침이 되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부대의 이동을 어렵게 하기 시작하였다.

 

 

 

스미스는 후속보급을 철저히 확보한 상태를 유지하며 천천히 전진하였다. 진격 할수록 넓어지는 부대 간 간격 때문에 특별히 경계에 더욱 신경을 썼는데 지도에는 엄연히 길이 표시 되어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앞을 험준한 산이 가로막는 황당하고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였다. 당시 미군이 보유한 지도는 강점기에 일본이 만든 지도를 번역한 것들이어서 정확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갈수록 험준해지는 산악지대는 전진의 방해물이 되었다.


 

겨우겨우 좁은 진격로를 개척하여 장진호 인근에 그의 부대가 다가갔을 무렵 서부전선의 미 8군은 중공군의 공세에 놀라 쾌속의 후퇴를 시작하였다. 평양 철수와 흥남 철수로 상징되는 중공군의 제2차 공세였다. 동시에 뚫려있는 미 8군과 미 10군단의 간극을 통하여 침투한 대규모의 중공군이 그들 앞에 목도되기 시작하였다. 순식간 부대 간의 연결은 고사하고 스스로의 생존을 걱정하여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어느 순간 대규모의 중공군에 의해 스미스의 부대는 포위되었다.

 

 

1127, 좌측의 미 8군을 청천강 아래로 밀어내린 중공군은 미 10군단 지역에 대대적으로 출몰하여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중공군은 장진호 깊숙이 들어온 미 해병 1사단을 분쇄하면 함경도 각지로 깊숙하게 올라간 유엔군 잔여부대를 쉽게 고립 시킬 것으로 판단하고 2(서방의 군단 급 제대)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미 해병 1사단을 첩첩히 엄중 포위하였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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