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원지간전쟁사 -7- "잔인한 전쟁"





 


6.25전쟁은 3년간 벌어졌는데 군사적으로 극적인 작전은 최초 1년간에 다 벌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1차대전 서부전선도 그러했다. 독일의 진공이 마른에서 멈춘 후, 종전까지 끔직한 참호전으로 일관하여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아니면 눈길을 주지 않는 지루한 형태의 전쟁이 되었다. 하지만 약 1,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엄청난 전사자의 90퍼센트 이상은 최전선 군인들이었을 만큼 전선은 끔찍했다.

 

 

전선의 참혹함은 그야말로 끔직하였다

 


 

이처럼 희생자가 많았던 이유는 이전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살상 무기의 비약적인 발달이 있었는데 비하여, 전술은 무조건 돌격을 훌륭한 가치로 삼았던 나폴레옹 전쟁당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후방의 지휘관들은 전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병사들을 무작정 밀어 넣었다. 그 결과 베르덩, , 이프르 전투처럼 수십 만 명이 불과 수백 미터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사상되는 비참한 결과를 불러왔다.

 

 

주검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병사의 모습

 

 

결국 고립된 상태에서 장기간 전쟁을 수행 할 수 없었던 독일의 항복으로 19181111일 종전이 되었고 그 결과 독일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비스마르크가 그렇게 회피하려던 최악의 과정을 호전적인 그의 후배들은 스스로 찾아 다녔고 그 결과 제국은 창업 47년 만에 붕괴되었다. 하지만 우스운 것은 서부전선기준으로 독일은 자국 영토에 총알한방 제대로 맞지 않고 프랑스 땅에서 대부분의 참화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제1차 대전은 독일의 항복으로 막을 내렸다. 전후 독일의 루르 지방을 점령한 프랑스군

 

 

영국과 미국의 도움으로 이기기는 했으나 프랑스는 자국영토만 망가지고 한 세대의 30퍼센트가 사라진 황당함을 겪었다. 이처럼 보불전쟁의 굴욕을 극복하고 모든 것을 받쳐서 얻은 승리였기 때문에 프랑스는 철저한 복수에 나섰다. 1919628일에 체결 된 베르사유 조약이 바로 그것이다. 프로이센이 독일제국을 선포하였던 바로 그 치욕의 장소에서 50년 만에 독일을 철저히 능멸하는 통쾌한 복수극을 프랑스는 연출한 것이다.

 

 

프랑스는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을 능멸하였다.

 


 

영국과 미국은 패전국에게 너무 가혹하다며 우려를 표하였지만 독일에게 사무친 원한이 너무 컸던 프랑스의 복수극을 말리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만신창이가 된 독일은 살아남았고 이때 당한 수모는 결국 2차대전의 빌미가 되었다.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독일에 대한 철저한 탄압만이 다시는 전쟁이 없는 지름길이라 생각했던 유럽에서 불과 20년 만에 또 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다가왔다.

 


또 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유럽을 감싸기 시작하였다.


 히틀러는 베르사유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세계를 상대로 총칼을 휘둘렀다. 1차대전이 끝난 후 불과 22년 만에 서부전선에서 어제의 주역들이 다시모여 피를 흘렸다. 독일군은 마지노선 북단을 가로질러 영국 해협으로까지 진출하여 연합군을 해협 건너로 도망가게 만들어 버린 후, 614일 파리를 점령하였다. 독일의 눈부신 전격전으로 말미암아 끔직한 참호전이 재현되지 않았던 것이 어쩌면 성과라면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독일은 복수극을 성공시켰다.

 

 

알자스, 로렌은 다시 독일 땅이 되었고, 군사적으로 점령한 프랑스 본토의 2/3는 점령지가 되었다. 나머지 지역은 비시 괴뢰정권이 통치하도록 조치하였고 프랑스의 해외 식민지들이 비시 정권 휘하에 놓이게 함으로써 프랑스 및 식민지 전체에 대한 수탈체계를 완성하였다. 물론 모든 해외 식민지가 비시 정권을 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1940년의 모습은 독불 분쟁사에 있어 승전국이 패전국에 최고의 수모를 안겨 주는 순간이었다.

 

 

프랑스는 독일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독일의 프랑스 침공은 일종의 복수극이라고도 할 수 있었겠지만 히틀러는 단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전 세계를 상대로 확전을 계속하였고 결론적으로 이런 행위는 독일의 몰락을 부채질하였다. 194466, 연합군은 노르망디에 상륙하고 이후 내륙으로 진격하였다. 연합군 진격과 함께 프랑스의 저항운동도 활발하여져 8월에는 파리가 해방되었고 동부전선에서 진격하여 온 소련과의 협공으로 독일은 패전의 나락으로 빠져 들었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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