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 지상군 주둔약사 [ 3 ] 제1군단





주한 미 지상군 주둔약사 [ 3 ] 제1군단


단대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1군단은 미군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지닌 군단이다. 남북전쟁 당시에 최초로 조직되었으나 직접적인 관련은 없고 현재의 1군단은 제1차 대전 중이던 1918년 프랑스의 로렌 지역에서 창설되어 실전에서 활약하였고 이후 제2차 대전에서는 태평양전선에 참전했다. 종전 직후 24사단, 25사단 및 직할부대를 두고 점령군으로 일본 교토에 주둔하다가 1950년 3월 28일 해체되었다.





[ 2차 대전 후 해체 된 1군단은 6.25전쟁이 발발하며 재창설 되었다 ]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8월 2일 제5군단이 주둔하던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주 포트 브래그(Fort Bragg)에서 긴급 재창설되었고, 부대 재건 직후인 1950년 9월 6일 직할부대를 거느리고 한국으로 사령부를 이동하여 예하에 1기병사단, 24사단, 국군 1사단, 영국군 27여단을 긴급 편제하여 9월 13일부터 낙동강 방어전에 투입되었다. 이후 전쟁기간 중 여러 번 예하부대의 예·배속 변경이 이뤄지는데 다음과 같다.



[ 참전 초기 1군단을 이끌던 밀번 소장과 작전을 협의 중인 예하 국군 1사단장 백선엽 ]


1950년 9월 ― 1기병사단, 24사단, 국군 1사단, 영국군 27여단

1951년 1월 ― 3사단, 25사단, 국군 1사단

1951년 4월 ― 1기병사단, 3사단, 25사단 

1952년 1월 ― 3사단, 25사단, 45사단

1952년 3월 ― 3사단, 45사단, 1영연방사단, 국군 1사단, 국군 8사단, 국군 9사단

1953년 1월 ― 2사단, 7사단, 25사단, 1해병사단, 국군 1사단, 국군 2사단, 국군 15사단

1957년 8월 ― 1기병사단, 7사단

1965년 7월 ― 2사단, 7사단


[ 전쟁 말기인 1953년 군단 사령부 입구 ]


1군단은 미군 사단과 국군 사단을 혼합 편성하여 운영했고, 효과적인 화력 지원을 위해 서류상으로 인가된 편제보다 많은 포병부대들을 보유했다. 전쟁 중 주로 전선의 좌익을 담당했는데 북진 시에는 평양을 점령했으며 휴전선 인근에서 전선이 고착된 이후에는 서울 서북부의 경의축선을 방어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휴전 후 북에서 서울로 내려오는 주요 양대 축선인 의정부 가도와 문산 가도를 경계하는 임무를 계속 수행하였다.


[ 1960년대 주둔하던 의정부 인근 캠프 레드크라우드 ]


1971년 미군의 아시아 주둔 병력의 재배치와 관련하여 7사단의 철수가 이뤄지는데, 이와 더불어 1군단도 워싱턴 주 포트 루이스(Fort Lewis)로 주둔지를 옮겨 한국 주둔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다. 전통의 부대답게 해체되지 않고 본토에서 명맥을 이어오다가 지난 2007년 전방 사령부가 일본 자마 기지에서 발족했는데 이는 아시아-태평양 전역에 1군단 병력을 신속하게 파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1군단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 내외 ]


그런데 당시 대북억제력이 절대 열세였던 우리 정부는 7사단은 어쩔 수 없더라도 1군단의 철수만은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다. 그 이유는 예하에 1개 사단만을 가진 1개 군단이라 해도 그냥 1개 사단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먼저 군단이 없이 단독으로 배치 된 1개 사단의 경우는 유사시 군단 직할부대의 지원을 받을 수 없고, 둘째로 전시에 군단 급 부대를 완편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 한미 1군단은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 된 편제였다 ]


이때 우리 정부는 한국에 홀로 남게 된 미 2사단과 인근의 국군 1군단을 합쳐서 군단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미국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인근 국군 5군단과 6군단을 신설될 한미 1군단이 직접 지휘하도록 하자고 제의하였고 미국이 이를 수용하여 1971년 7월 1일 한미 1군단이 창설되었다. 유래가 드문 군단이 군단들을 지휘하는 이상한 형태의 편제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 지금은 해체 된 한미연합군 사령부의 기원을 찾으면 미 1군단까지 연결 된다 ] 


이런 불안정해 보이는 구조는 이후 1980년 3월 14일 한미 1군단을 야전군 급 부대인 ‘한미연합사령부’로 확대 개편하면서 탈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한미연합군사령부도 1992년 7월 1일 해체되면서 국군 부대들은 선봉대의 통제를 받게 되었고, 미 2사단은 미 8군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교통정리 되면서, 간접적이나마 이어져 오던 미 1군단의 인연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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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2132 2018.04.25 12:23 신고

    한미1군단의 후신은 '한미야전군'입니다. 이후 해체되었죠.

    한미연합사로 오기하였기에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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