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 14연대 반란 사건의 순국 여성 경찰들





여순 14연대 반란 사건의 순국 여성 경찰들



요즘 경찰관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머리가 명석한 영재들도 2년은 준비해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선배 경찰관들이 겪었던 박봉의 시기는 이미 옛 이야기가 되었고 사회의 좋은 이미지도 있고, 위민 봉사의 보람도 있으니 실력 있는 젊은 인재들이 많이 몰리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해방 후의 여자 교통 경찰]


경찰에도 여성들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시골 지서에서도 여자 경찰을 볼 수 있으니 그들의 채용이 대단히 확대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들 여성 경찰관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일화가 있다. 한국 전쟁 중에 군과 함께 호국의 전선에 섰던 경찰들은 압록강과 제주도까지 한반도 구석구석에서 활약을 하였고 그리고 큰 희생을 겪었다.

 

한국전 전후 호국의 영령으로 산화한 전투경찰들만 일 만 명이 넘는다. 물론 대부분 남성들이다. 희생자들 중에 여성 경찰관들의 희생도 있었댜. 오늘날 잘 살게 된 한국의 모든 구석에 어려운 시절의 선배들이 놓은 주춧돌이 있었던 것처럼 이들 여성 경찰관의 먼 선배들이 놓은 피의 노력과 희생의 기초석이 있었다. 그 순국의 내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이 머금을 정도로 비극적이었다.



[해방 조금 후에 여자 경찰이 창설되었다]


 

1948년 10월 19일 밤 8시, 제주도로 공비 토벌 파견차 승선 준비 중이던 여수 주둔 14연대의 지창수, 김지회 등이 반란을 일으켜 연대를 장악하고 삽시간에 여수를 점령했다.

 

이 반란군에 지방의 남로당 조직이 움직여 좌익 부역자들과 학생들을 동원해서 발빠르게 반란에 가담하였다. 그날 밤 수많은 경찰관들과 우익 인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반란군들이 노리는 학살의 주요 타깃은 평소 군과 사이가 안 좋았던 경찰관들이었다. 다음날 10월 20일 오전 11경, 그 전 날 반란을 일으켜 경찰관들을 다수 죽인 반도들은 읍사무소 앞에서 정복 차림의 여수 경찰서 고인수 서장을 발견해서 고문하다가 학살하였다.

 

이어서 경찰서에 구금하고 있던 경찰관 9명을 벽에 세워 놓고 차로 들이 받아 죽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폭도들이 여수 여기저기에서 경찰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살인극이 벌어졌다.


[여수의 약국같은데 일족을 모두 학살했다]


무수한 경찰관 학살 중에 여수 경찰서 소속 세 명의 여성 경찰관들을 처참하게 학살한 사건이 바로 이날 있었다. 계급이 제일 높은 국말래[鞠末來] 경사는 아기가 있는 24세의 유부녀였었다. 반란이 일어난 다음 날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 아기와 함께 있었는데 반도들은 그녀의 집으로 찾아 와서 포승줄로 묶어 체포해 갔다.



[학살된 시신들을 확인하는 가족들]


그녀는 읍사무소에 끌려가서 발가벗겨지고 구타를 포함한 가혹한 린치를 당하다가 차마 눈 뜨고 볼 수없는 신체 부분에 총 두 발을 맞고 즉사했다.

 

같은 여수 경찰서 소속 여자 경찰 정헌자[鄭憲子]도 집에 있다가 붙잡혀 와서 잔인하게 학살 당하였다. 폭도들은 정순경의 옷을 갈기갈기 찢고 목에 쇠사슬을 매어 가지고 시내를 무려 한 시간 끌고 다니며 말할 수 없는

수모를 주다가 다시 경찰서로 돌아와 총탄 두 발을 쏴서 죽였다.

 

한 기록은 두 사람이 칼과 대나무로 난자당하여 피투성이가 되자 차라리 죽여달라고 계속 절규하다가 최후를 맞았다는 슬픈 뒷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두 사람을 기억하는 한 원로 참전 경찰 분은 두 사람 모두 기혼으로 무척 얼굴이 고왔고 주로 청소년 선도 업무를 담당하여 반란군들이나 폭도들이 트집잡을 일에 연관될 일이 없었다고 한다.

 

세 번째로 학살당한 여자 경찰은 박정운[朴正雲]순경이었다. 밤새 난동이 일어났지만 집이 멀어 연유를 알 수 없었던 그녀는 아침이 되자 경찰서로 출근하다가 그녀의 얼굴을 아는 부역자에게 들켜 거리에서 바로 학살되었다.

 

  * 자료에 따라 앞의 두 분, 국말래와 정헌자 씨의 이름이 국막례와 정윤자씨로 기록되기도 한다.


여순 14연대 반란사건 때 59명의 경찰관들이 희생되었다. 이 중 확인된 37명에 대한 위령비가 현재 여수에 서있는데 3인의 여경들 명단도 여기에 들어있다.



[동료들의 학살에 분노한 경찰이 좌익 혐의자를 연행하고 있다.]



 


[여순사건 가담자들의 처형-400여명이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되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없다고 한다. 그 잔인한 좌익 반도들에게 하등 원한 살만한 일이 없었던 국말래, 정헌자, 박정운 세 명의 여자 경찰들이 불과 건국 삼 년, 시동기의 경찰사에 흘린 혈흔이 오늘날 거목으로 자란 여자 경찰 발달의 뿌리에 값진 비료가 되었다는 사실을 후배들이 상기해주었으면 한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rackbacks NO TRACKBACK / Comments 16

  • Favicon of http://kappa352.egloos.com/ 김현우 2015.02.22 21:46 신고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반란주동자 남로당 빨갱이 다카키마사오(박정희)도 빼 놓을 수 없죠~ 14연대 총 지휘관이 닭그네(박근혜) 아버지 다카키마사오(박정희)였습니다.


    그리고 5.16이 무슨 얼어 죽을 놈의 군사정변입니까~
    멀쩡한 윤보선 정권 5.16군사내란쿠데타로 정권 잡아 기회주의자가 바로 닭그네 아버지 다카키마사오입니다.




  • 노운지 2016.05.09 19:45 신고

    ㄴ 고향이 전라도? 김대중 씨발놈 해보세요

    • ㅉㅉ 2016.06.07 11:29 신고

      고향이 경상도? 박정희 씨발놈 해보렴

  • 오까모토 미노루 2016.07.16 11:50 신고

    국방부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인데도 잘못된 역사를 기술 하고 있어서 한마디 남깁니다.
    여순사건은 당시 4.3제주 항쟁에 14연대를 투입하는데 있어서 14연대내에 조선의용군 출신들의 장교들이 동족상잔보다는 반란을 택하게 되었고 그 당시 남로당에서 조차 협의 되지 않은 내용이었고 향후에 남로당에서 승인을 하게된 사건입니다. 그리고 순천지역의 경찰들은 대부분 일정떄의 순사들이었고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무시받는 사람들이14연대의 조선의용군과 연안 출신들의 장교였고, 오까모토 미노루는 친형 박상희의 친구에게 추천을 받아 남로당에 들어갔고 당시 소령계급장을 달고 제 1중대장이었습니다. 당시의 14연대 안에서 중요한 직책을 가지고있었고, 일본을 배신하고 다시 남로당에 들어갔으나 다시 배신하고 살아남아 향후에 군사반란을 다시 일의킨 사람이 바로 오까모토 미노루 입니다. 여순사건 자체가 단편적으로 말을 하기엔 복잡한 사건이었습니다. 역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후대에 제대로된 역사를 전해 줄 수 있습니다.

  • tobtob58 2016.07.17 15:07 신고

    사드배치로 나라가 시클시클하다.
    나는 사드 배치는 지역을 4군데 정도을 선정하여 그 지역 주민들께 찬반 투표하여 사드을 배치하는 지역은 그지역이 발전할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지역주민에게 많은 해택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곳 만이라도 지역을 추천 한다면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을 추천하고쉽다.

  • 바다별 2016.09.05 21:23 신고

    정부 블로그가 반공논리로만 입각해서 너무 단순하게 쓰셨네요.

    해방후 경찰엔 일본순사 출신들이 많아서 국민들과 사이가 별로 안좋았고
    창군 초기 경찰에 비해 열악한 처우의 국방경비대와도경찰은 사이가 안 좋았죠.

    그리고 직접적 원인이 된 제주 4.3사건도 친일경찰들의 무리한 강제 진압도 원인이 되었죠.
    14연대가 제주도 4.3사건 진압에 파견 되는걸 알고 같은 민족을 죽일 수 없다면서 일어난 사건이 여순 사건입니다.

    대구10월 사건도 미군정의 실패와 친일경찰들의 횡포가 원인 아닙니까?

    여순사건으로 법적 절차 없이 국군과 경찰에 고문 총살 일본도에 내리쳐맞아 죽은 민간인의 희생도 조명해 봤으면 싶습니다.

    • 가이바G 2016.09.27 11:24 신고

      같은 민족을 죽일수 없다고 반란 일으켜 놓고 그 지역 민간인들을 학살합니까?
      스스로 적어 놓고도 말이 안되는거 못느끼시나요???

    • 꽂아 2016.09.27 19:37 신고

      해괴한 논리로 좌익의 잔인한 민간인 및 죄없는 경찰들 학살을 합리화하네. 일제시대 경찰출신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럼 죽은 민간인과 경찰관 모두가 일제 부역자임을 모두 확인하고 잔인하게 죽였음? 근거 없는 주장은 변명일뿐. 어떠한 이유도 여경 3분. 일제에 부역하지 않은 경찰관 살해는 정당화 될수 없는 것이고 그 동기가 빨갱이와 닿아있다면 더욱 인정받을 수 없는 거임

    • 강희석 2017.01.29 09:22 신고

      제주도민 진압하기 싫어서
      무고한 여수사람들 죽였다는 논리?

      빨갱이 논리를 그대로 믿으시나요?

  • 바다별 2016.09.05 21:28 신고

    그리고 여순사건으로 숙군 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되고 죽어간 합리적 우파 중도파 좌파계 군인들도 조명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 quo vadis domini 2016.09.27 16:42 신고

    입은 삐뚤어도 말은 바르게 하자. 여순 14연대 반란사건은 연대 안의 남로당 소속 좌익들이 상관들을 살해하고 무지렁이 병사들을 유언비어 (경찰이 국군을 해꼬지 한다는 등)로 선동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고, 같은 민족과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는 동족애하고는 거리가 아주 먼, 빨갱이의 반란이었다. 만약 민족애가 그렇게 강했으면 그토록 참혹하게 여수 순천에서 민간인들과 경찰관들을 학살하지 않았겠지. 좌익 빨갱이들의 거짓말과 선동에 넘어가지 말자.

  • 어느날 2016.09.27 17:52 신고

    보복은 승자의 권리이고 정의의 실천이다. 저 반란도배들에게 총살은 너무 사치스럽다.

  • 2016.11.25 17:46

    비밀댓글입니다

  • FEM 2017.01.26 15:50 신고

    https://youtu.be/d3Cw3tfQodc?t=18m55s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999년에 방영한 TV프로그램입니다.

    주모자들의 이름이 숙군 명단에 올라갔다는 이야기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했던 것이 계기가 된 것입니다. 동족애때문에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는 사상무장이 되지 않은 일반 사병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명분일 뿐이죠. 그리고 평소 친일인사 몇 경찰때문에 일반주민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한몫했고요.

    박정희 관련 이야기는 해당 동영상 41:20부터 보시면 됩니다

  • 아라온 2017.03.15 22:49 신고

    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켰지만 토벌군인 정부군이 너무 잔인하게 반란군에게 밥을 해주었다는 이유로 여중생 아줌마 할머니등을 사형시킨것은 토벌군인 정부군이 100프로 잘못 한 것입니다.법을 떠나서 전시에 점령지에서 당신의 딸과 부인이 어머니가 반란군에게 밥을 해주었다는 이유로 죽여버린다면 당신은 반란군에 이적 행위를 했기때문에 당연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 하시나요?이런 역사가 반복 돼지 않키를 바랍니다

  • 기켄 2017.06.17 19:12 신고

    사실 여부에 대한 고민 없이 주어지는 정보가 전부인줄 알고 책임은 윗선이나 당신처럼 이긴자의 역사에 기대어 놓고 함부로 가늠하는것이 그 시대 스스로의 목숨 부지하려 잘못된 신념을 절대적 기준으로 알고 죽창들고 다니던 서북청년단의 그것과 무에 다르리오.

댓글 남기기

블로그 인기 키워드

Tistory Cumulus Flash tag cloud by requires Flash Player 9 or better.

링크

re_footerlink.jpg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