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의 미스테리 크롬웰 전차






한국전의 미스테리 크롬웰 전차.


정말 아득한 2-30년 전의 일인 것 같다. 미국에서 발간 된 한국전 관련 군사 잡지를 보니 이런 구절이 있었다.

“확인 되지는 않았지만 1.4후퇴 뒤에 유엔군이 반격했던 1951년 초 한강 남안까지 진출했던 영국 센추리언 탱크가 한강 강북에 나타난 중공군의 영국제 크롬웰 전차를 격파했다는 설이 있다.”

나는 한참 동안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중공군과 영국제 전차가 아무런 관계도 없었고 한국전 초기에 참전한 중공군은 박격포나 기관총 정도의 경화기만 가져 왔을 뿐 전차 같은 중화기를 가져 왔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었기 때문이다.


 

                            영국이 만든 걸작 전차 센추리언
한국전, 월남전, 중동전에서 화려한 성능을 발휘하였다. 한국전 당시 20파운드 포[84mm]였지만 나중에 105mm 포로 바뀌였다. 장갑이 크롬웰 전차 보다 두배 더 두꺼운 6인치였다.


아울러 영국군이 단 1 개 대대 규모의 
전차 부대를 파견하면서 주력 전차인 센추리언 탱크 전차 외에 경전차인 크롬웰까지 같이 파견하여 정비와 보급을 곤란하게 만드는 결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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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은 전차대대 파견 이전 미군에게서 조언을 들었다.
미군의 조언은 한국은 도로 사정이 안좋고 기동로도 무척 좁으니 경전차도 가져 오라는 말이었다.

영국군은 크롬웰 뿐만 아니라
처칠 전차까지도 포함한 전차 대대를 구성해서 한국에 파견했다.


                                        크롬웰 전차
28톤의  경전차로서 600마력의 큰 힘을 발휘하는 엔진때문에 40마일의 쾌속을 발휘할 수있었다.75mm 포에 두 정의 기관총이 있었고 승무원 5명이 탑승했다. 가장 성공적인 영국 전차 중의 하나였지만 한국 전쟁에서는 큰 비극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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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국내 인터넷에 한국전과 관련된 사진들이
자주 목격되었다.

찾아 보니 석장인데 한 장은 북한군으로 보이는
전차병들이 승차해 있는 크롬웰 사진, 다른 한 장은 한국 해군 장교들이 조사하는 크롬웰 사진, 마지막 한 장은 차체에 한국 해병이라고 쓴 크롬웰 사진이다.

흥미가 무척 가는 사진이었지만 사진을 소개하는 글들도
추측 수준의 설명만 있었지 정확한 설명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나의 추측도 2차 세계 대전 중에 영국이 소련에 공급한
크롬웰 전차가 소련에 의해서 중공군에게 주어졌고 이를 중공군이 한반도 전장에 끌고 왔다는 것으로 짜 맞추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미국 전사에서 극히 짧게 취급 된 해피밸리 전투라는
전투가 1.4 후퇴 전야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고 여기 저기 국내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고양에서 영국군과 중공군 사이에 전투가 있었다는 짧은 수준의 기록 뿐이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나는 이 옛 전투장을 다섯 번이나 찾아가서 동네의 어르신 분들의 증언으로 전투의 전모를 알아냈고 이를 자료삼아 영국의 자료를 찾아내서 더 상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해피 밸리 전투에 대한 글은 국방부 블로그에 서 너 번 올렸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1.4 후퇴 전 정초 서울에서 철수하기로 한 유엔군은 한국군 1사단 뒤를 추격해 오는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서 영 연방 여단 소속
얼스터 대대를 고양 군과 남양주 군 접경 쟁고개로 급파했다. 고양군의 선유리와 양주군의 삼하리 사이의 고개로서 영국군 전사에는 채근현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지의 어르신들은 아무도 이름을 몰랐다.

얼스터 보병 대대에는 영국 로얄 후사 탱크 대대의 크롬웰 전차 14 대가
파견되었는데 한 중대에서 6량, 다른 중대에서 8량해서 합계 14량이 지원되었다.

사흘간 중공군을 저지했던 영국군은 1.4 후퇴 전날
철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철수 작전 중이던 자정 가까이 영국군의 철수를 눈치 챈 중공군이
기습을 가해 영국군 157 명이 전사했고 20 여 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크롬웰 전차 14량이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전차 중대장 쿠퍼 대위와 전차병 다수도 전사했다.]


             해피 밸리 전장에 유기 된 전차를 수복후에 영국군이 돌아와 수습하고 있다.


중전차인 센추리언 대신 경전차인 크롬웰이 파견된 것은 전투장 부근 도로가 우마차나 겨우 다니는 좁은 도로였었던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크롬웰의 큰 약점이 되었는데 기동 공간이 없는 좁은 논길에서 크롬웰은 거머리처럼 늘어붙어서 공격해대는 중공군들에게 속수무책이었고
중공군들은 좁고 약한 크롬웰 보기륜 사이에 방망이 수류탄을 집어 넣어 궤도를 쉽게 폭파할 수 있었다.

한 전차는 지금의 교외선이 통과하는 터널을 통해
빠져 나가려다가
터널 안에서 파괴되었다.

동네의 한 나이 드신 분은 중공군 공격에서 탈출하려던
크롬웰 전차 두 량이 자기 논으로 들어왔다가 공격을
받고 오일을 쏟아 버리는 바람에 3년 간이나 농사를 짓지 못했다는 말을 들려 주었었다.
[중공군이 크롬웰 전차의 엔진 실을 열고 집어넣은 수류탄이 엔진 오일 순환 시스템이나 미션을 파괴 한 듯하다.]


                           해피 밸리 전투에서 파괴 된 크롬웰 탱크


동네 분들은 중공군에게 공격당하여 전장에 방치된
전차들이 수복 후 어느 틈엔가 다 없어 졌다고 했다.

한강의 전차전이나 위의 미스테리 크롬웰 전차들은
모두 해피 밸리 전투에서 사라진 것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으리라.

해피밸리 전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여 크롬웰 전차가 어떻게 한국전쟁에 나타났는가 하는 것을 알았지만 국내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사진들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더해졌었는데
우연히 기회가 닿아 영국 아마존[온라인 서점]에서
영국군 전차 부대의 한국전 참전에 관한 책자를 발견하고 이를 주문했다.

내 기대대로 이 영국 출판의 책에는 미군 전사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한강에서 영국 전차끼리 벌인 전투'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었다.

1950년 2월 1일 한강을 건너 마포 일대에 대한 
수색 정찰을 시도하던 미군 수색대를 노량진 방향에서 지원하던
두 량의 센추리언[두 전차장들은 스트라칸 대위와 레드포드 중위였다.]은 한강 넘어 우측방 한강 철교 밑에 숨어 있는 차종 미상의 전차를 발견하고 장거리 사격으로 이를 파괴하였는데 전차전 나중에야 이 전차가 영국제 크롬웰 전차라는 것이 밝혀졌다.

현장을 직접 탐사했다.
지금은 바쁜 강변 북로가 되었지만
당시는 백사장이었다.



            공산군의 크롬웰 전차가 숨어 있던 한강 철교 교각. 아래는 이렇게 변했다.


해피밸리에서 노획한 크롬웰을 서울까지 끌고 왔던 공산군은 미군이 한강을 건널 것에 대비해서 한강 철교 교각 뒤에 숨어있으면 항공 공격과 전방 전차 공격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영국 전차들에게 당한 것이다.

나중에 알아 보니 서울 남쪽 강안(江岸)에서 크롬웰을 공격했던 센추리언들은 지금 노량진 수상 시장에서 북쪽을 향해 사격을 한 것이었다.

[공산군의 크롬웰 전차장은 잘 숨었다고 생각했지만 8시 방향에 나타난 영국군 센추리언들에게 측면을 노출당해 파괴 된 것으로 판단된다.]


         노량진에서 철교 북단에 숨은 공산군의 크롬웰 탱크를 포격하는 영국 센추리언 탱크



한강에서 벌어진 전차전의 상황을 알고 난 뒤에도 크롬웰 전차에 대한 탐사를 계속 해보았다.

다른 사진 속의 크롬웰 중 한량은 서울 재탈환 후에 인천에 상륙했던 한국 해병대가 인천 해변에 유기 된 것을 발견한 것이다.

                      국내 인터넷에 떠돌던 미스테리 크롬웰 탱크 사진 1.
북한군이 인천 해변에 유기하고 도주한 크롬웰 전차. 뒤쪽으로 바다와 선착장이 보인다. 영국군이 방문해서 조사하고 있다.[베레모 차림]



위의 사진은 다른 미스테리한 두 크롬웰 사진에 대한 추리를 가능케 한다.

즉 인천을 방어 하던 부대는 중공군이 아니라 북한군이었다. 그러니 이 크롬웰 전차들은 북한군이 운용했다는 판단이 나온다.


                    국내 인터넷에 떠 돌던 미스테리 크롬웰 탱크 사진 2.
북한국 전차 승무원들은 소련군 전차 헬멧까지 썼다. 필자도 도저히 있을 수가 없던 일이라고 생각해서 소련군에 지원 된 영국제 크롬웰 탱크를 아시아계 소련군 전차병들이 운용했을 가능성까지 생각해 보았다.



위 크롬웰 사진에 견장이 붙은 군복의 북한군 승무원이 이를 증명한다.
중공군은 전쟁 중 견장이 붙은 군복을 입지 않았었다.

[위 사진은 아마도 포로나 죽은 북한군 전사자 몸에서
나온 사진으로 정보 부대에서 수집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한 추리가 가능하다. 중공군의 전차 부대는 아직 창설기였다.

모택동이 장개석을 대륙에서 몰아 내고 공산 정권을 수립하던 1949년도 10월 기념식에 일본군이 남긴 97식 전차가 대거 참가했었다.

중공군은 한국전쟁 중기부터 T-34 전차를 한반도에 가져와 소극적으로 운용했지만 한국전 참전 초기 중국 본토에 T-34 부대가 있었는지는 의문스럽다.

그러나 북한군은 소련군에게 다수의 T-34 전차를 받았고 소련 고문관으로부터 교육 훈련도 받았고 남한 침공에서 미군 전차들과 여러 번 교전도 했었다.

남한에서 전멸 당했지만 북한군 전차 부대는 아직 다수의 숙련 된 전차병들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중공군이 영국 크롬웰 전차를 노획했지만 본토에서 전차병을 불러오느니 일부 가동이 가능한 크롬웰 전차를 정비나 운용 등이 가능한 북한군에게 공여했을지도 모른다.

위의 북한 전차병이 탄 크롬웰 전차 사진이 이를 증명하고 북한군이 방어했던 인천에서 발견된 크롬웰 전차 사진이 이를 역시 더 뒷받침 해주고 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한강 철교 밑에서 센추리언에게 격파 된 전차에도 중공군이 아닌 북한군이 승차했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인터넷에 떠돌던 미스테리 크롬웰 사진 3.


해병대라고 쓴 크롬웰 전차도 위의 사실에서 어떤
추리가 가능해 보인다.

인천에 상륙해서 북한군을 격퇴한 병력이 한국 해병대였던만큼 이 크롬웰 전차도 한국 해병대가 노획한 것이라고 생각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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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키페디아를 보면 영국군이 한국 해병대에 크롬웰 전차를 기증했다고 되어 있다.

임진강에서 싸운 영국군과 마찬가지로 해병대도 최서부 전선에서 싸웠으니 만큼 그런 말이 나올만도하지만 크롬웰 전차 기증과 관련된 아무런 공식 기록도 찾아 볼 수가 없다.

한국군 해병 전차 중대는 미 해병대의 도움으로 1951년 12월 중순 공식으로 창설되었다. 한국군  최초의 전차 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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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을 보면 베레모를 쓴 영국군이 조사를 위해서 방문한 것으로 보이는데 전차 운행시에나 착용하는 방풍 고글을 쓴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방문 목적이 전차 회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결코 기증한 전차의 부대에 교육 훈련이나 정비 지원 목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이 크롬웰 전차는 분명 영국군이 기증했을 가능성보다도 북한군으로부터 노획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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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순관 2017.06.03 22:08 신고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5&nNewsNumb=20170323782&nidx=23783

    크롭웰 전차는 북한군에게 노획한 것 입니다.
    도움이 될까 해서 남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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