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고려 영웅, 낭장 문대(文大)의 죽음 -제2편-







숨겨진 고려 영웅, 낭장 문대(文大)의 죽음  -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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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길어지지만 어쩔 수없이 고려의 영웅적인
대몽 항쟁부터 간단히 소개하고 지나간다.

한국 전란사에서 고구려와 조선이 상대한 적들이 중국이나 일
본 등의 아시아 급 챔피언이었다면 고려 민관군이 대결한 몽골은 세계를 휩쓴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었었다. 

몽골군은 이미 아시아 챔피언 급인 대륙의 금나라를 박살냈고
중국인 남송도 쓸어버린 무서운 기세로 고려를 덮친 슈퍼 파워의 정예군이었다.

 

 

                                                            페르시아 세밀화 - 몽골군


몽골군은 항복하지 않는 적들은 가차없이 몰살시키는 잔인한 야만성을 발휘했었다.

그러나 몽골에 무릎을 꿇은 수 많은 나라들보다도 훨씬 작고 약한 고려만이
작은 반도에 끈질기게 매달려 몽고군의 거센 침략을 열 한번이나 맞받아치며 버텨내서 민족과 국체를 보존해냈다.

이들 고려 민과 관과 군이 몽골군과 살을 깎이고
뼈를 잘려 가면서 혈투를 벌린 기간이 우리 민족사 어느 전쟁보다도 긴 장장 30년의 세월이었다.


            몽골 세계 정복의 동력을 제공했었던 몽골  말. 체구는 작지만 적게 먹고 장거리 주력이 뛰어났다.
고려에서는 군민들이 슬기롭게 성에 의지하여 방어하고 게릴라 전으로 응전하는 전술로서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한 몽골 기병군단이 제대로 맥을 못추게 했다.


만약 고려가 전쟁에서 패했더라면 고려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큰 중국과
금나라 그리고 서하와 서요까지 멸망시킨 몽고가 고려를 예외적으로 그냥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또는 그들이 지배하던 몽골 직할령이나 중국의 일개
부속 성으로 편입되어 연명하다가 나중에 들어선 명나라에 접수되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중국의 한 변방 지역으로 흡수 동화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몽 항쟁 유적지-춘천 봉의산에 있는 춘주성


끈질긴 고려의 저항에 몽골은 결국 무력 정복을 포기하고 회유와 외교술로 고려를 달랬었다. 국토가 결딴나고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고려는 결국 고개를 숙여 몽고와 강화했으나 민족의 정체성, 다시 말하면 국가와 민족은 물론 왕조까지도 유지할 수 있었다. 

숨겨진 고려 영웅 문대의 이야기는 이 몽골 침공 초기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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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 1차로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은 압록강 아래
철주 산성을 공격했다.

기고만장했었던 침공 초반 몽골군은 앞으로 이 작은 반도에서
끔찍하게 힘든 전투를 겪게 될지 모르고 철주 산성의 수비군이 자신들이 천하에 용맹을 드날린 몽고군이 아니라고 믿어서 저렇게 건방지게 저항한다고 생각했다. 

[몽골군 휘하에는 항복한 타민족들로 구성된
군대가 있었고 이들은 대부분 몽골군, 즉 정규군보다는  전투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앞서 포로로 잡은 고려 서창현(瑞昌縣)의 낭장
(郎將; 무관직의 정육품(正六品) 벼슬) 문대(文大)를 철주 산성
성문 앞으로 보내서 자신들이 진짜 몽고군이라는 사실을 말하라고 했다.

무시무시한 원조 몽골군이 왔으니 알아서 빨리 항복을
하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성 앞으로 끌려간 문대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놈들은 가짜 몽골군이다! 절대로 항복하면 안 된다!”

예상치 않았던 돌발 상황에 기가 차게 놀란 몽골군은
앞의 일본군과는 달리 문대에게 '그러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달래며' 재차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문대는 성을 향하여 꼭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외쳤다.

“ 이놈들은 가짜 몽골군이다! 절대로 항복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라!”

울화통이 터진 몽골군은 그를 즉석에서 베어 죽여 버렸다.

그의 죽음에 눈물로 감동한 철주 산성의 군과 민은 처절하게
저항하며 반 달을 버티었다. 그러나 양식도 떨어지고 병력도 소모되어 8월29일 몽골군이 성내로 난입하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상황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지휘자인 방어사 이 원정과 판관 이 희적은
자신들을 따라서 성에 들어와 있던 어린 아이들과 부녀자들이 몽골군에게 도륙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창고에 넣고 불을 질러 죽이고 자신들은 쇄도한 몽골군에게 최후의 돌격을 함으로서 스스로 호국 산화의 길로 갔다.

몽골군은 성의 군민들을 포로로 잡고 쓸 만한 사람들은
자기 부대의 노무자로 징발하고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은 남김없이 학살했다.

위의 밋밋하게 쓰여 있는 낭장 문대의 영웅적 산화는 앞에서
소개한 일본 전국시대 도리이 스네에몬의 죽음보다 덜 감동적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위에 소개한 스네에몬의 일화는‘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쓰
-小說 德川 家康-’의 작가 야마오카 쇼바지[山岡莊八]에 의해서 극적으로 윤색되고 문장적으로 미화 된 것이다.

나는 이 대몽 전쟁을 보면서 항상 왜 이 전쟁은 왜 우리 현대에서
크게 평가 받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점에 의문을 가져왔었다.

고려는 중국은 물론 유럽까지 휩쓴 몽골이 무력으로 점령하지 못한 유
일한 유라시아 대륙의 국가였다. 그리고 고려는 몽골의 최다 침공 대상 국가였다.

[월남도 침공했지만 그 규모는 아주 작았다.
위협용이 아니면 협상용이었을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민족사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평가 되어야 할
그런 전쟁이 임진왜란에 비하면 비할 수없이 간단히 취급되고 있다.

지난 역사를 가공하고 비틀고 변조하여 사극이라는
인기 상품으로 팔고 있는 미디어의 상업성은 이 고려 민족의 대몽 항쟁에는 손을 대고 있지 않다.

 

 

                             대몽 항쟁 유적지-경기도 안성의 죽주성


고려의 대몽 항쟁에서 옥쇄해버리거나 격퇴에 성공했던 남한의 대몽 항쟁 유적지[춘주성, 죽주성, 충주성 등등]도 안내 표지 외에 이를 기리는 특별한 것이 없다.




재작년 11
월인가?
전쟁 기념관에서 장진호 참전 미 해병 노병들을 모시고 큰 행사를 했었는데 나는 국방부의 부탁으로 이곳에 취재를 갔다가 놀랄만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카베라타 상병이라는 미 최고 무공 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받은 장진호 전투 영웅이 왔던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를 참조, ☞ 
http://mnd-policy.tistory.com/516]

그 분을 모시는 미군 장성들의 정중함은 정말 깍듯했다.
샤프 주한 미군 사령관은 물론이고 여러 장성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깍듯이 인사를 드렸다. 너무도 감동스런 장면이었다.



이 장면과 오버 랩 된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빈곤과 절망이 넘쳐 흐르던 대
한민국은 전쟁 상이군경을 돌봐 줄 여유가  없었고 살길이 막막했던 상이군경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구걸로 살아갔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들을 귀찮은 걸인정도로 취급 했었고 이에 분노한 상이 군경들이 갈쿠리와 목발로 분풀이를 하는 일이 거리에서 비일비재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상이군경들은 자신들의 헌신을 몰라주는
사회의 냉대에 피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지금은 물론 크게 달라졌다.
글머리에서 말한 '문득 생각 난 것'은 5,60년대에 비참하게 생활했었던 상이 군인에 대해서 친척 한 분이 했던 말이었다.

그 분은 6.25 동란 때 일선 중대장을 했는데 제대후 식품점을 해서
제법 돈을 번 분이었다. 평소 상이군인들에게 잘 대해 주던 그 분의 가게에 세 명의 상이 군인이 찾아왔었는데 그때 나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그 가게를 방문하고 있었다.

상이 군인 두 명은 각각 팔다리가 없었지만 한 명은 부상의 정도가 더 해서
잘못 맞은 네이팜 탄에 얼굴 전체와 손이 뭉개진 비참한 모습이었다. 앞을 보지도 못했고 입술도 일그러져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른 두 명의 상이 군인들이 이 중증 상이 전우를
전우애로 항상 보살펴서 동행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친척 분은 이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용돈도 두둑히 주어서 떠나 보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나이에 이를 목격했었던 나는 
이들 상이 군인들이 군 복무 시 직속 상관이 아니었던 친척 분을 중대장님이라고 깍듯이 예우하던 모습과 이들을 배웅한 친척 분이 혼자 말처럼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상이 군인을 냉대하던 사회를 질타하는
말이었다.

“세상이 죄를 짓고 있다! 이 나라가 어떻게 
살아 남았는데..............“

그 배고픈 시절에 비하면 국가 유공자와 전상자에 대한
국가의 예우가 파격적으로 발전했고 제 2 연평해전이나 천안함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들이 호국의 인물들에게 보여주는 추모의 열기가 과거와는 달리 크게 변화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묻혀져 쓸쓸히 잊혀져 가는
역사 속의 영웅들이 모두 재조명되어 추모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Trackbacks 67 / Comments COMMENT ONE

  • 이경수 2018.06.12 05:20 신고

    감사 함니다 고맙습니다 호국의달 6월에 이글 읽어니 눈물이 나네요 이나라을 지탱해운것은 오로지 충성으로 나라를 지키신 호국 영령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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