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의 미스터리 [ 5 ]








덩케르크의 미스터리 [ 5 ]


공군과 해군


히틀러가 역사에 너무나 굵고 뚜렷한 한 획을 그은 인물이지만 결코 위인이 되지 못한 이유는 그 자신도 광인이지만 그 주변에 모리배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히틀러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독일 공군 총사령관 괴링(Hermann Goering)은 덩케르크의 미스터리를 만드는데 크게 일조한 인물이다.

그는 연합군이 포위망에 갇히자 공군의 폭격만으로 포위된 적들을 섬멸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
괴링은 덩케르크의 미스터리를 만드는데 크게 일조한 인물이었다 ]


금까지 루프트바페(Luftwaffe-독일공군)는 독일 지상군의 진격로를 사전에 말끔히 청소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괴링은 이 정도 역할로 만족할 인물이 아니었다.

연합군이 포위망에 갇혀버리고 독일의 대승이 확실시 되자 괴링은 전공을 육군에게 빼앗길까봐 초조해 했고, 이제부터 공군이 포위망에 갇힌 연합군을 청소해 버리겠다며 나섰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히틀러의 명령으로 육군의 진격은 멈추었고 대신 독일 공군이 전면에 나섰다.

연일 이어지는 당대 최강 루프트바페의 공습으로 말미암아 덩케르크에 고립 된 연합군은 많은 피해를 당했다
.

더불어 해상으로 이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출동한 연합군 선박들도 엄청난 곤혹을 치렀다. 이들의 공격을 막아낼 방법이 별로 없어 보였고 괴링의 장담대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았다.

 


                                            [
됭케르크 일대를 폭격하는 루프트바페 소속 전투기 ]


그런데 독일이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다. 영국 공군 또한 가까운데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력이 열세였지만 영국 전투기들은 해협을 건너와 고립된 아군을 공격하는 독일의 폭격기들을 요격하였다.

독일 전투기들의 집요한 방해가 있었지만 영국의 전투기들은 의도적으로 공대공전투를 회피하고 독일의 폭격기들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영국 전투기들은 뒤에서 달려드는 독일 전투기의 요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하였다. 한마디로 내 목숨을 적에게 내놓고 벌인 극단적인 전투였다.

이 같은 살신성인의 노력으로 많은 영국의 함선들과 여기에 탑승한 병사들의 귀중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영국 공군이 극렬하게 저항하고 나서자 처음에 보여주었던 독일 공군의 매서움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
죽음을 각오한 영국 공군의 맹렬한 대응으로 독일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


결국 루트프바페만으로 연합군의 소탕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지게 되었고 지상군이 다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제공권의 확보 없이 전쟁을 이기기도 힘들지만 공군만으로 이길 수 없는 것 또한 전쟁이다.

괴링의 허풍을 너무 믿은 히틀러가 그의 달콤한 말에 혹하여 독일 육군의 진격을 멈추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간과되었던 것이 해군이다. 포위된 적을 요리하는 것은 순전히 공격자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포위된 적이 해상으로 나갈 방법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100퍼센트 완벽한 포위로 볼 수는 없다.

만일 오늘날 미국 같은 나라가 육지와 바다를 함께 봉쇄하였다면 이것은 완벽한 포위이며, 포위된 적들은 더 이상 탈출구가 없음을 알고 조기에 항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독일 해군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었다.

 

                                 [
해상으로의 탈출로가 남아있었는데 독일은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


2차 대전이 발발하였을 때 독일 해군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Erich Raeder) 제독이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용감하게 싸우다 죽는 것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탄하였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덩케르크에서 독일 육군이 포위를 완성하였지만 뚫려있는 바다는 세계 최강의 영국 해군이 장악한 앞마당이었다.

따라서 30여 만의 연합군이 탈출하는 동안 바다에서 독일 해군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어선처럼 조그만 목선까지 탈출 작전에 동원하였다는 사실은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한 영국의 눈물겨운 분투를 알려주는 예이기도 하지만 이런 선박조차 바다에서 손쉽게 요격하기 힘들었을 만큼 독일 해군의 상황이 열악하였고 반면 연합국 해군은 너무 강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영국의 해군력은 대 탈주의 밑거름이었다 ]


독일군이 연일 맹공을 가하였음에도 연합군의 대부분이 안전하게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국 해군의 활약 덕분이었다. 비록 독일 공군이 이를 막기 위해 투입되었지만 집요한 영국 공군의 요격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당대 최강이라는 독일 공군만으로 저지하기 힘들 만큼 바다 위의 영국 해군은 강력하였고 만일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지상군이 무턱대고 덩케르크의 해안가로 계속 진격하다가는 영국 해군의 포격에 많은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농후하였다.

이것은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프랑스 해안가 도시인 캉(Caen)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수 많은 독일군이 연합군 해군의 함상 포격에 상당히 많은 피해를 입었던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 반면 독일군은 영국 해군을 요격할 방법이 그리 많지 않았다.


 

                                     [ 1944
년 연합군 해군의 포격으로 전멸당한 독일군 기갑부대 ]


히틀러도 이런 상황이 신경에 거슬렸을 것이고 당연히 함포 사정권으로 독일의 귀중한 기갑부대가 들어가기 전에 좀 더 신중을 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의 흥남철수도 강력한 미 해군이 바다를 완전히 제해하고 탄막으로 중공군의 진격을 막은 후에 이룬 결과였는데 사실 덩케르크 철수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영국 해군의 능력은 독일 육군의 진격을 망설이게 했던 것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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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s 53 / Comments COMMENT ONE

  • 우헤헤맨 2017.07.15 08:44 신고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네요. 영화보는데 많은 도움이 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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