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의 지휘관 -3- "아쉬웠던 북진경쟁"

 

 

 

 

 

 

 

 

 

 

 

아무리 미 10군단이 별도의 작전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서부전선의 상황이 나빠질 기미가 보였다면 진격을 멈추고 전황을 확인하고 차후작전을 수립하여야 했다. 만일 그 당시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였다면 북진을 즉시 중단하고 부대를 재배치함과 동시에 주력을 원산에서 서쪽으로 이동시켜 서서히 분리되어 있던 서부전선의 미 8군과 조속히 연결을 시도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중공군의 등장은 전쟁의 성격이 바뀜을 뜻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전선을 최대한 축소시켜 적의 우회침투가 불가능하도록 조밀하게 조정하는 것이 당연히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미 10군단은 부대의 이동은 고사하고 경계를 갖추지도 않은 체 정반대방향으로 무조건 치고 나가려 하였다. 8군에게 위기가 다가옴을 뻔히 쳐다보면서도 엉뚱하게도 북진을 시도하였던 미 10군단 또한 결국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수밖에 없었다.

 

미 8군도 최전선의 이상 징후를 무시 하였다. (북진 중인 제1기병사단)

 

 

설령 분리된 지휘권에 따라 미 8군과 미 10군단이 별개의 작전을 펼친다하더라도 UN군 최고지휘부가 이를 적절히 통합관리 하여야했는데 방심하였기는 매한가지였다. 중공군의 1차 공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너무나 긍정적으로 보아온 최고지휘부는 오히려 195011월 크리스마스 공세라는 어처구니없는 작전을 실행하여 버렸고 그 결과는 스스로 패배를 촉진시켰다.

 

 

 

상황을 오판한 UN군은 중공군의 공세에 당황하였다.

 

 

어쨌든 이렇게 전황을 오판한 상태에서 195011월초 미 해병 1사단은 후속하여 원산에 상륙한 미 3사단에게 원산함흥지역의 경계임무를 인계하고 애초 수립 된 군단의 작전계획에 의거 장진호 방향으로 진격하여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와 발맞추어 미 10군단 예하 각 부대들은 경쟁하듯이 북진에 가속도를 가하였다. 이를 걱정하거나 말리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장진호로 향하여 전진하는 미 해병 1사단, 이들은 이후 신화가 되었다.

 

 

 

이원에 상륙한 미 7사단은 부전호와 혜산진으로, 동해축선을 따라 북진한 국군 수도사단과 3사단은 회령, 성진 등의 함경북도 지역으로 산개하여 들어가면서 한만국경을 향한 무제한의 레이스를 벌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서부전선의 미 8군이 밀리기 시작하였는데도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갔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전쟁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른다.

 

 

제 부대들이 서로 단절한 채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황당한 시도도중 얼마 되지 않아 UN군 최고지휘부는 중공군의 압박이 예사롭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고 미 8군과 미 10군단의 연결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만일 미 8군이 청천강에서 밀려 내려오게 되면 한반도 북부지역의 구조상 38선 부근까지 후퇴를 하여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함경도지역에 산재한 미 10군단이 순식간 고립 될 수밖에 없었다.

 

 

 


원산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면 미 10군단은 자연스럽게 고립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장진호로 북진중인 미 해병 1사단에게 북진을 더욱 서둘러 애당초 목표인 장진호를 하루빨리 점령하고 낭림산맥을 넘어서 서진하여 강계까지 진출함으로써 서부전선의 미 8군과 연결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되었다. 이때 다시 한 번 알몬드와 스미스의 의견 충돌이 발생하였다. 한마디로 상황을 무시한 무리한 명령이었기 때문이었다.

 

 

 

스미스는 무조건적인 북진에 반대하였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맥아더 원수와 함께 한 모습)

 

 

 

사실 미 해병 1사단장 스미스는 그의 사단을 넓은 지역으로 산개시켜야하는 최초의 북진계획에 대해 처음부터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였던 상태였다. 거기에다가 겨울이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동계전투용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로 그의 부대가 고원지대에 위치한 장진호까지 진출해야 한다는 점도 그가 반발한 이유였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조건 낯선 곳에 다가가는 행위는 모험이었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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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발새꺄 2017.04.05 06:45 신고

    씨발새꺄

    • 시바시키 2017.04.05 06:46 신고

      시바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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